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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뉴스를 보니, 이라크에서 전쟁이 확실히 나기는 날 모양이다. 다른 나라에 전쟁이 터진다는데,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 전망되고 있어서 주가는 오히려 오르고 유가도 내렸다는 소식이 뒤를 잇는다.

남의 나라 불구경이 아니어야 하는데도, 결과가 이러하니 씁쓸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다. 눈이 한없이 맑고 커다란 이라크의 어린이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인류가 걸어가는 걸음은 어쩌면 이다지도 어둡기만 한 것인지….

ⓒ 우리교육
"늘큰한 감자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하나꼬는 나쁜 이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성껏 감자죽을 먹었다. 수만 마리의 이리 떼가 닥쳐와도 하나꼬는 잡아 먹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새빨간 입을 벌리고 삼켜 버린다 해도, 불덩이 같은 배 속에 들어가서도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곳엔가 나들이를 간 엄마 양이 돌아와서 살려 줄 때까지, 입술을 깨물고 살아서 기다리리라 마음먹었다."
(<슬픈 나막신> 235쪽, 우리교육, 권정생 지음)

그래도 희망을 접을 수 없는 것은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정생 선생은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는 일본 나가야에 살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서 희망을 그린다. 일본에 가서 살게 된 준이네 가족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하나꼬를 데리고 살게 되는 과정과 어른들의 전쟁으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면서 참혹함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싹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아이들은 ‘칼을 들지 않고도, 총을 겨누지 않고도,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조용히 그러나, 가장 아프게, 쓰라리게, 기도로써 눈물겹게 싸운다’고 권정생 선생은 쓰고 있다. 절대로 이리에게 잡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하나꼬처럼 말이다. 동화는 어린이를 힘없이 당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 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내려는 강인한 의지를 품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권정생 선생의 어린시절이 ‘준이’라는 아이의 맑은 심성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

ⓒ 양철북
그런가 하면 <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양철북)는 ‘후짱’이라는 명랑한 소녀가 전쟁의 참혹함을 공부하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아주 밝게 그려 내고 있다. 어른들의 치부를 감추려 하거나, 크면 알게 된다는 변명으로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서 반성하는 기성 세대의 모습을 보여 주는 동화다.

한국전쟁에 대해 아이들이 물어올 때,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죽여야 했는지, 전쟁이 남긴 것은 무엇이고 앗아간 것은 무엇인지 아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려면 이렇게 도와 주면 되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오키나와가 독립 왕국이었던 시절부터 시작해 미군의 강점을 받은 뒤 다시 일본에 반환되는 역사적인 사실을 쉽게 알려 주면서도 슬프고 처참한 전쟁 현실을 비껴 가려 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건강한 웃음을 가진 후짱이 아픈 가족사를 지닌 기요시를 가족으로 품어 내는 모습은 또한 얼마나 감동적인지….

▲ 전쟁과 소년 123쪽
ⓒ 푸른나무, 김종도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전쟁과 소년> (윤정모 지음, 푸른나무)이 있다. 작가는, 전쟁이 났는데도 박수치고 좋아라 하는 아이들에게 전쟁이 나면 가장 참혹해지는 것이 어린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단다.

전쟁이 나서 사람이 죽는데도 게임이나 영화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기는 어린이와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는 통에 피난을 못 간 필동이네 집에 아버지를 찾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 북쪽의 담선이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일들을 따스하게 그려 놓았다. 어른들을 서로를 증오하고 죽여 대느라 정신이 없는데 아이들은 다람쥐 가족을 살려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것이 아이들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고향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화가 김종도의 그림이 책에 온기를 더하는 데 크게 한몫 하고 있다. 특히 94쪽과 95쪽에 그려진 그림 앞에서는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 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세 편의 동화가 지닌 공통점은 아이들이란,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데 있다. 전쟁 속에서도 웃음이 있고, 다른 이에 대한 따스한 배려와 보살핌이 있고, 이런 세상이라도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덕분에 참혹한 전쟁에서도 희망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비감 어린 상황을 극복해내는 아이들의 힘을 확인하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만다는 점이다.

원폭이 떨어진 후, 고아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명력을 보여 주는 《맨발의 겐》(나카자와 케이지 지음, 아름드리미디어)은 또 어떤가. 10권의 만화책을 다 읽기까지 몇 번이나 울고 또 웃고 한숨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들을 읽었으면 좋겠다. 어른들도 이 책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폭력 없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 힘들이 모여서, 다음 세대가 전쟁 없는 지구를 맞이할 수 있는 데 작은 힘이라도 되면 좋겠다.
꿈 같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다.

슬픈 나막신 - 우리문고 01

, 우리교육(2007)


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오석윤 옮김, 양철북(2008)


전쟁과 소년

윤정모 지음, 김종도 그림, 푸른나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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