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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방송위원회 노조원들이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복도에서 방송위원장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12일 방송위원회 노조원들이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복도에서 방송위원장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손병관
방송위가 구성된 지 불과 나흘밖에 안됐지만, 파열음은 이미 곳곳에서 새어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 방송위원 A씨는 대통령과의 티타임 시간에 있었던 해프닝을 전했다.

"노성대 위원(방송위원장, 전 MBC 사장)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이 별로 말을 안하자 양휘부 위원(한나라당 추천, 전 KBS창원방송 총국장)에게 한 마디 하라고 권했다.

양 위원이 '한 마디가 아니라 토론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토론은 아니고....(노 대통령쪽으로 고개 짓을 하며) 여기는 다른 분이 있어야 할 자리다. 사람이 바뀐 것같다'고 말하더라."


말을 건넨 노 위원이 급히 화제를 바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지만, 양 위원의 돌출 행동은 '방송위 인선 = 정치권 나눠먹기'라는 등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A씨는 "양 위원 얘기는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돼야 하는데, 엉뚱한 사람이 됐다'는 건데... 자기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나? 노 대통령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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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의 '여야' 신경전은 같은 날 오후 서울시내 H호텔에서 열린 첫 전체회의에서 다시 표면화됐다. 노성대 위원을 방송위원장에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이 '야당 몫'을 챙기려고 한 것이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양 위원이 "방송위가 원만하게 운영되려면 국회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부위원장은 원내 다수당 추천위원중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준영 위원(한나라당 추천, 전 SBS 전무)도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비한나라당' 위원들은 "이런 자리까지 당을 찾아야 되겠는가? 정치권으로부터의 방송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사고의 틀을 바꾸자"고 이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약 4시간 가량의 논란 끝에 '표 대결' 분위기가 굳어지자 한나라당 추천위원 3명은 정회를 제안하고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남은 위원들이 이효성 위원(민주당 추천, 성균관대 교수)을 부위원장으로 뽑은 것이 '여야 경색'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양 위원은 이튿날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들에게 "청와대, 민주당, 자민련 추천 6명의 위원이 부위원장을 일방적으로 선임했다"며 "앞으로 노 위원장의 사회권을 인정할 수 없으며 당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방송법 규정(28조)상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출석(6명)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 사항이기 때문에 부위원장 선출에 법리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방송위원들이 하나같이 청와대와 여야 정당 추천으로 뽑힌 상황에서 표결을 앞세운 '수의 논리'가 지배한다면 방송위의 파행운영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한나라당은 1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 부위원장 선거의 무효를 선언했다. 하순봉 언론대책특위 위원장은 "매사를 협의 없이 수로써 밀어붙이겠다는 것이고, 권력에 의한 방송장악, 언론을 힘으로 좌지우지하겠다는 음모를 계속하겠다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규택 총무도 "국회에서 김대중식 날치기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방송위원회 날치기는 노무현식 신종 날치기"라며 민주당의 신경을 건드렸다. 민주당도 곧바로 반박 성명을 내보내는 등 방송위 사태는 여야간의 정쟁으로 치달았다.

방송위원회는 디지털TV 전송방식, 지상파 위성재송신, 방송시장 개방, 지상파 방송시간 연장 등 방송정책에 관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2기 방송위 내부의 대립 양상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방송정책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MBC 사장 인선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와 15일 임기가 끝나는 KBS 이사회 구성을 앞둔 상황에서 방송위를 통해 각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정치권의 암투가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이 적절하다.

전문성보다는 정치색에 치중한 방송위원 인선은 방송위 노조(www.kbcunion.or.kr)의 반발로 이어졌다. 노조는 12일에 이어 13일에도 방송위 정, 부위원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김도환 방송위원회 노조위원장
김도환 방송위원회 노조위원장 ⓒ 오마이뉴스 손병관
김도환 방송위 노조위원장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조에서 그나마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은 성유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민주당 추천), 유숙렬 문화일보 여성전문위원, 조용환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상 대통령 추천)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 노조가 가장 문제삼는 것은 방송위원회의 감독과 통제를 받아야 할 공중파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인사들이 방송위원에 포진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추천을 받은 노성대 위원(MBC)과 한나라당 추천을 받은 양휘부(KBS), 윤종보(MBC), 박준영(SBS) 위원(이상 한나라당 추천)이 여기에 속한다.

방송위 노조는 특히 지상파방송3사의 출신인사들을 골고루 섞어 추천한 한나라당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방송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공중파 방송3사의 눈치를 보며 방송정책을 조율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 위원은 지난 대선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언론특보를 지낸 경력이, 박 위원은 "96년부터 약 2년간 대구방송(TBC)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은행에서 60억원을 대출받아 TBC의 대주주 청구에 불법대출을 해줬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노조는 이효성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방송위의 정부기구화'라는 평소 소신과 '족벌언론 지원금 수령' 전력을, 민병준 이사(한국광고주협회장, 자민련 추천)는 "1기 방송위원을 지내는 동안 자질 부족이 확인됐다"는 것을 비토 사유로 들고있다.

일부 네티즌 "이효성 교수는 뭐가 문제죠?" 고개 갸우뚱
'족벌언론 지원금' '방송위의 정부기구화' 문제삼는 방송위 노조

▲ 이효성 방송위 부위원장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방송위 사태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방송위 노조가 이효성 부위원장의 위원직 사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그 동안 각종 기고와 저술 활동을 통해 족벌세습언론사들의 폐해를 고발하고 언론개혁에 앞장서온, 진보성향의 언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부위원장이 보여준 '선명한 노선'이 노조와의 마찰을 불러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먼저 이 부위원장이 96년 방일영 재단, 2000년 SBS 문화재단으로부터 각각 저술 지원금과 해외연구 지원금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방송위 노조는 "대통령이 비판한 족벌세습 언론의 후원을 받은 인사를 집권당에서 방송위원으로 추천할 수 없다. 더구나 SBS는 방송위의 규제대상인데, 과거에 신세를 진 SBS를 상대로 떳떳한 방송정책을 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판론자들은 양 재단의 지원사업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지식인을 육성하기 위한 보험금'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방일영 재단이 매년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저술지원을 하고 있는데,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지원금으로 펴낸 저서 '언론정책의 현실과 과제'(성균관대 출판부)는 <조선>과 같은 족벌언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SBS 문화재단 건 역시 지원을 받았다고 해서 SBS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이 연초 '방송위의 정부조직화'를 주장한 것도 노조와의 견해 차이를 불러왔다. 그는 1월8일자 <프레시안> 기고에서 "방송위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방송위도 정부조직법에 포괄하여 정부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환 위원장은 "방송위가 민간기구도 정부기구도 아닌 애매한 위상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방송위의 정부기구화를 추진한다면 정부가 다시 방송을 장악하게 된다"고 '불가'를 표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여기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지난 3년간 방송위가 심의기구에서 정책행정기구로 면모를 바꿨지만, 정부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 집행력을 갖추지 못했다. 힘이 실리려면 이런 방법도 있다고 제안한 것이지, 방송위원이 되면 꼭 관철시키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노성대 위원장과 함께 13일 오전10시 노조집행부와 면담을 갖고 입장 차이를 좁히겠다는 구상이다. / 손병관 기자

방송위원회는 13일 오후3시 2차 전체회의를 소집해 3명의 상임위원을 선출할 예정이지만, 1차 회의에서 나타났던 앙금을 털고 원만하게 회의가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정당추천 케이스의 한 방송위원은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1차 회의 분위기는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2기 방송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려면 국회처럼 되겠는가?"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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