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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박인호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 시늉을 해야 됨.
(박철. 山行法)


ⓒ 박인호
1.
나는 산에 오르는 행위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산은 절대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은 절대로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합니다. 산에 대한 감상은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신앙입니다.

산은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산은 인간의 그 어떤 오만함도 위선도 받아 주지 않습니다. 산은 모든 이세상의 이치를 포용해 주며 우리를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인도해 줍니다. 산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따스하며 향기롭습니다. 모진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언제나 산은 그대로 있습니다.

ⓒ 박인호
산은 속일 수 없습니다. 산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산 앞에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산은 자기 발로 올라가야 합니다. 산은 올라갔으면 반드시 내려와야 합니다. 산에 올라 정상에서 보면 모든 것이 작게 보입니다. 욕심이 사라집니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감격합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로 인해 감사하게 됩니다.

산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싱싱한 생명의 원천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새들의 노래 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온갖 벌레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산은 생명의 보고(寶庫)이며, 조화의 신비가 호흡하는 곳입니다. 그래요, 나는 산 애찬론자입니다.

ⓒ 박인호
그러나 내가 정작 꿈꾸는 것은 산 같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없는, 정말 산 같은 사람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사람, 이름 하여 산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성숙한 사람은 산과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목사는 산사나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넉넉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 매사에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릴 줄 아는 사람, 시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언제나 꿋꿋하게 자기의 할 바를 다 하는 사람, 언제나 삶의 향기로 인해 가까이 대하고 싶은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산사람, 산사나이의 특징입니다. 사는 동안 정말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 박인호
ⓒ 박인호
ⓒ 박인호
2.
우연한 기회에 박인호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올해 큰 결심을 하고 에베레스트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에베레스트에서 찍은 사진 7백장을 공개하면서 에베레스트의 감동을 함께 나누길 원했습니다. 그분의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40대, 할 일은 뻔하죠. 그런데 저는 에베레스트를 보고 싶어서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좀 들지만 고산증도 경험해 보고, 네팔주민들 가까이서 보고, 전 세계에서 온 트레커들과 대화도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트레킹은 60대 이후에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오신 트레커의 절반 이상이 50대 이후더라고요. 다른 나라 사람들도 평생을 기다리다 오시더라고요.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마이뉴스>에 이 사진을 인용해도 괜찮겠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영광이라면서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박인호님은 진정으로 산을 아시는 분입니다. 에베레스트의 벅찬 감동을 자기 혼자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 박인호
나는 박인호님이 디지털 카메라로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압축해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온 몸이 전율하는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박인호님의 마음이 그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한동안 머리가 띵해져 평소 안 먹던 진통제를 한 알 먹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찾던 산, 내 마음 한복판에서 끓어오르는 산이었습니다. 박인호님이 생명의 경외(敬畏)를 담아 내게 허락한 선물은 돈으로는 그 값이 계산되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인호님의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에베레스트를 꿈꾸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갈 것입니다. 돈이 될만한 모든 것을 몽땅 팔아서라도 갈 것입니다.

더욱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산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산과 같은 목사가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 산을 오르며)


ⓒ 박인호
ⓒ 박인호
ⓒ 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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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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