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한총련 합법화·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게릴라 콘서트'가 경북대 민주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콘서트에는 약 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했으며, 12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경북대 한총련 대의원 학생들은 9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해단식을 가졌다.
함께 노래하고 즐기는 '콘서트' 현장
19일부터 대동제 기간을 맞아 경북대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20일 7시부터 '한총련 합법화·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게릴라 콘서트'(이하 게릴라 콘서트)가 진행됐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각 단대 회장과 총학생회장단들이 민중가요가 아닌 대중가요를 부르며 참여한 학생들과 호흡을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사랑한 후에'를 부른 농대 회장 이하근씨는 "여기 참석하신 분들도 올해 들어 한총련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으로 안다. 한총련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단대 회장들과 여러분들 모두가 한총련이다. 더욱 열심히 하겠다. 지켜봐 달라"는 말을 전했다.
이어 인문대 회장 권혁정씨는 철학과 후배들과 함께 '당신을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른 후 "단식하는 9일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배가 고프고 힘들었지만 한총련 합법화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날 콘서트에는 군대를 다녀온 95학번 이상의 학생들로 구성된 '예비역 단식단'이 무대에 올라 이목이 집중됐다.
2002년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최광용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해야할 나이지만, 단식투쟁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지지단식을 결심했다"며 "나 역시 한총련 소속이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 후배들 또한 그렇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한총련은 영원히 깨어 있는 지식인임을 명심하고 항상 당당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통크게, 있는 그대로 한총련을 봐달라"
감춰둔 '끼'가 폭발하는 현장
법대 회장 서영훈씨는 법대 후배들 20여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훈훈한 무대를 선보였다. 서 씨는 "단식 기간 동안 40여명의 후배들과 동기들이 지지단식을 했는데 정말 고맙다"며 "분단의 세기를 뛰어넘고 남북이 화합하는 이 시기에 통크게, 있는 그대로 한총련을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총련 대의원은 아니지만 이틀 동안 지지 단식을 진행한 생과대 부회장 최지영씨는 "단식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틀을 굶었는데도 이렇게 어지러운데 9일을 단식한 대의원들은 너무 고생이 많은 것 같다. 하루빨리 한총련이 합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슴앓이'를 열창했는데, 수려한 노래 실력에 분위기가 일순 달아올랐다.
콘서트장의 분위기는 동아리연합 회장 김동욱 씨가 '흥보가 기가 막혀'를 부르면서 더욱 고조됐다. 김씨는 노래와 함께 화려한 안무를 선보이자 관객들은 일어나 환호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래를 마친 김동욱씨는 "이렇게 활발하고 신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적단체일 수 있느냐"며 흔히 특별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한총련 소속들도 '일반 대학생'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총학생회장 최성택씨는 "최근 방송을 탔더니 무대가 낯설지 않다"는 가벼운 농담으로 건넨 뒤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한총련이 정당하다는 얘기를 하기보다는, 한총련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게릴라 콘서트의 의도를 전했다. 최씨가 '타잔'을 열창하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흥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거실에 누워 창 밖 바다 바라보는 여유를 맞이하고 싶어"
하지만 이날 콘서트 현장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올해로 3년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 김기훈씨가 무대에 올라 어머니께 띄우는 편지를 읽자 분위기는 일순 숙연해졌다. 이날 콘서트장에는 김기훈씨의 어머니가 참석, 먼발치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배를 더 받더라도 단식투쟁 같은 것 하지 말라던 어머니 말씀. 집에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단식 투쟁이 어머님께 또 다른 고통을 드렸습니다. 철없는 아들의 몸짓이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세상 모두가 저를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자식에 대한 믿음 때문에 수배 3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빈말이라도 지금 자수하러 가자, 학교 밖에 나가자는 말 한번 하지 않으셨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생활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랑 등산도 다니고, 어머니랑 쇼핑도 가고, 정선이랑 술도 한 잔 하고, 거실에 누워서 창 밖 바다를 바라보며 따사로운 오후 여유롭게 맞이 해보고..."
편지를 읽는 동안 김 씨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자, 객석에서도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루 빨리 수배가 해제돼 일상적인 여유를 즐기고 싶다고 말한 김기훈씨는 "새봄, 수배 해제된 몸으로 집에 가겠다는 약속은 어느덧 여름이 되어 본의 아니게 어기게 됐다"며 "하지만 오늘 참석한 친구들의 따뜻한 눈빛이 희망"이라는 말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맺었다.
편지를 읽은 후 김씨는 "나는 2001년 여러분들이 사범대 회장으로 뽑아준 사람"이라며 단대 회장이라는 이유로 수배를 받아 3년간 수배 생활을 하고 있음을 전했다. 이어 그는 "최근 TV 토론회를 보면서 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가 분노를 느꼈다.
현재 전국에는 170여명의 수배자들이 있는데, 매년 수많은 학생들을 잡아들여야 속이 시원한가. 한총련을 '대통령 앞길이나 막는 놈'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 300만의 대중 조직으로 거듭나는 한총련, 2만 학우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억하는 총학생회가 되고 싶다. 제발 5월 안에 한총련 합법화라는 선물을 달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먼발치에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씨의 어머니를 학생들이 무대로 부르자 어머니는 "그냥 아들이 보고 싶어 왔을 뿐"이라며 작게 인사를 전했다. 이에 김기훈씨는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들이지 못했다며 '어머니 은혜'를 불렀다.
"하나도 다르지 않은 우리가 이적 단체인가!
정부, 한총련 합법화 강력한 의지 가지고 추진했으면"
이날 게릴라 콘서트는 경북대 11기 한총련 대의원들이 함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콘서트가 끝난 후 그간 단식을 진행한 학생들은 콘서트 참석자들과 함께 죽을 먹으며 9일 간의 단식을 끝냈다.
당초 총학생회측은 1천명의 학생이 참석할 경우 단식을 끝내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콘서트를 기점으로 단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총학생회장 최성택씨는 "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으면 좋았겠지만 큰 욕심은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오늘 자리에서 확인됐듯이 하나도 다르지 않은 우리가 이적 단체냐"며 반문한 뒤 "한총련은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구성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한총련을 이적 단체라 규정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한총련이 가진 친북성의 여부를 떠나서 사상의 자유를 존중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현재 한총련 합법화가 정치적으로 표류하고 있는데,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합법화를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5.18 기념식 이후 시위에 나섰던 한총련의 행위를 '난동'으로 규정하며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각계에서는 한총련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지만, 강금실 법무부장관은 21일 5·18 항쟁 23주년 기념위원회 위원장단과 면담에서 "한총련 합법화 문제를 더 이상 이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향적으로 추진되던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 해제는 이렇게 '물 건너 간'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인가.
게릴라 콘서트 무대에 오른 한총련 대의원들은 하나같이 "한총련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대중가요를 부르며 학생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흔히 떠올리는 '이적단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없이 일상과 이벤트를 즐기고 싶어하는 한총련 소속 학생들. 그들의 소박한 바람을 받아들이기에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 | 한총련 합법화! 조건없는 정치수배 전면 해제! | | | 경북대 단식단이 해단을 준비하며 학우들과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 | | | |
| | ▲ 경북대 단식단은 12일부터 9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다. | | | 바보 한총련... '바보 노짱은 어디로 갔습니까'
단식 9일째로 접어든 지금, 우리에게는 위를 찌르는 배고픔보다도 우리의 진심을 왜곡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적단체로 7년째. 그동안 우리 어머님들의 하염없는 눈물과 한숨, 한총련 수배자 친구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단식 중에도 언제나 해맑게 웃던 우리들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우리는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전대협 선배님들처럼 박수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적단체로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힘든 하루하루를 양심을 지키며 걸어왔습니다. 나이 20이 다되도록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잊지 못한 바보였기에,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도 당당하게 살수 있는 ‘민주주의’를 잊지 못한 바보였기에 지금껏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바보이고 앞으로도 바보이고 싶습니다.
이런 바보 한총련에 대한 부당한 이적규정의 굴레. 참여정부라 불리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이 굴레를 벗어버리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많은 눈물도 흘리고, 많은 학우들과 시민들도 만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과 몇몇 장관들의 한총련 합법화 이야기를 듣고 더욱 큰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18일 망월동에서 있었던 한총련의 투쟁 이후에 11기 한총련 의장에게 검거령을 내리고, 몇몇 장관들이 수구 언론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한총련 합법화 방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힌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넘어 분노로 다가옵니다.
5월 18일, 한총련은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바보 노무현.. 선거시기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런 바보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에 한총련이 왜 그렇게 투쟁했는지를 진정 모른단 말입니까. 지난 겨울, 효순이 미선이의 부모님 손을 꼭 잡던 노짱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런 노무현 후보의 모습을 믿었던 국민들이 바보입니까...
바보 노무현이 외쳤던 ‘당당한 자주외교’.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말을 벌써 잊었는지는 몰라도 안타깝게도 한총련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었는지 김두관 행자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5.18 투쟁이 한총련 합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한총련 합법화 약속’이 아니라 ‘한총련 무력화 약속’을 한 것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현실 앞에 투쟁하지 않는 학생운동을 바랬던 것입니까. 마냥 노무현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는 한총련을 바랬던 것입니까.
5월 18일 한총련의 투쟁은 탄압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한총련으로서의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한총련 합법화 조치는 지금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학생운동 무력화의 의도가 아니라 진정 민주주의를 위해 한총련 합법화를 바랬다면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합니다. 5월 18일 한총련의 투쟁을 빌미 삼아 수구 보수 세력들은 신이 나서 한총련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 한총련이 무너지면 다음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합법 한총련의 시작이 될 한국대학생 5월 축전, 우리는 민중의 희망으로서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300만 학우들과 함께 11기 한총련 출범식을 치르고 싶습니다. 새로운 학생운동, 진정 학우들과 함께하며 민중들과 함께하는 학생운동의 새출발을 가로막아서는 안됩니다.
어머님들의 눈물과 학우들의 염원, 그리고 전국의 고통받는 정치수배자와 양심수들의 절규가 헛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눈물이 헛되이 되면 분노만이 남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총련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5월안으로 한총련 합법화와 조건 없는 수배해제를 단행해야 합니다.
경북대 학생회장 단식단은 앞으로 더 많은 학우들과 시민들을 만나면서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5월 안에 국민들과 학우들로부터 한총련 합법화를 인정받을 것입니다. 진짜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2003년 5월 20일
한총련 합법화와 정치수배 전면 해제를 위한 민족 경북대 단식단
(총학생회장 최성택, 부총학생회장 김기훈, 전전컴 학생회장 김동희, 인문대 학생회장 권혁정, 사회대 학생회장 이용순, 법대 학생회장 서영훈, 농대 학생회장 이하근, 사범대 학생회장 최연행, 총동아리연합회장 김동욱)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