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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은 스스로가 말하듯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우선 자신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대한 지나친 의심으로 시작되어 타아(他我)를 비롯한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까지 이른다. 그의 시에 이러한 의심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그렇기에 나중에는 시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치밀한 의식이 넘쳐흘러 우리도 자연스레 의심을 하게끔 만든다.

산다는 것은 뭔가 바스락거리는 것인데
나도 바스락거리고 싶은데
내 손이 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시늉만 -같은 緯度 위에서

하지만 세상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러나 -活路를 찾아서


그는 낮에도 남자가 집에 있다는 혐의로 검침원과 외판원에게 문 열어줄 때마다 죽는, 아내의 피아노 레슨 받는 동네 꼬마 놈을 피해 기슭으로 유배 가는 남편이다.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는 자의식의 세계에 대한 의심과 질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애정을 밑바탕으로 하여 나아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애정으로 확대된다. 그 애정은 또 다른 무수한 의심을 낳게 된다.

이 곳의 온갖 이름과 언약을 버리고
납세고지서를 주민등록증을 버리고
오 화해할 수 없는 이 지상을
벗어나가라 -만수산 드렁칡 2

오 빨래처럼
屍身으로 떠내려가도
저 율도국으로 흘러가고 싶다 -파란만장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의심의 눈초리는 회의적이다. 80년대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의 암울함과 자연과 멀어진 현대문명, 무의식·무비판적인 인간 등은 의심 많은 그에게 탈출의 욕망과 이상향으로의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오 亡國은 아름답습니다 人間世 뒤뜰 가득히 풀과
꽃이 찾아오는데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야유회 갔습
니다 -만수산 드렁칡 1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 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草露와 같이


그래서 풀과 꽃이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버리고 야유회를 갔고, 망국(亡國)이 아름답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뒤뜰 가득한 풀과 꽃이 그의 이상향임을 토로하는 것이고 곤히 잠들고 싶은 고요한 이슬 속 또한 그의 이상향인 자연이다. 이제 그는 그 곳으로 떠나려 한다. 의심의 끝을 찾아서….

내려오고 올라갔던 제 1한강교, 철제 아치 위를 유
유히 지나 동부이촌동과 반포 아파트 쪽으로 가고
있는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는데, 나는 그것이
꼭 그의 죽음이 자기 예고의 풍향과 관계가 있다
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저도 먹고 살려고 바둥대다보니까 여기까지 왔겠
지, 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는 잘못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잘못 날아왔었다
그는 잘못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잘못 날아왔었다 -제1한강교에 날아든 갈매기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날개를 접으며 나는,
새벽 바다를 향해

날고 싶은 아침 나라로
머리를 눕혔다
日出을 몇 시간 앞둔 높은 窓을 향해 -飛火하는 불새

새들이 내 흉곽으로 기어들어와
날개짓는 소리가 소란하다
내려가고 싶다
유리 같은 땅 -이 문으로


그는 새가 되어 떠나려 한다. 병아리의 사체를 들어올리면서 그때서야 발견한 아주 작은 날개... 날개를 가진 새를 통해 그는 어디든지 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려 한다. 그러나 제1한강교에 잘못 날아든 갈매기처럼 강을 바다로 착각하고 잘못 날아갔거나 잘못 날아왔다. 그의 날개가 아직 익숙치않은 탓도 있지만 풍향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여기서 풍향은 그의 비상을 저지하는,‘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의 애국가와 상통한다. 그가 헤어날 수 없는 또 다른 시대 현실인 것이다. 그리하여 높이, 곧 다가올 새로운 일출의 세상 앞에 날개를 접으며 주저앉아 머리만 그 쪽을 향해 눕힐 뿐이다.

머리를 눕히고 자신이 떠나려 했던 세상을 발견하게 되고 유리 같은 땅이지만 다시 내려가고 싶다고 말한다. 즉, 그의 수많은 의심은 이상향인 자연으로의 귀의를 꿈꾸게 만들었지만, 그래서 그 의심의 끝을 향해 갔지만 시대는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고 결국 그는 깨닫게 된다. 끊임없는 의심으로써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 체했습니다 우리는 不眠의 잠을 잤습니다
-만수산 드렁칡1

‘느린 그림’으로 지켜보는
들뜬 회의주의자, 혼수상태의 세월이었지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시중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무도 못 보았고 못 본 체했다
잎이 지는 4월에서
눈 내리는 7월까지
앞바다에 왜 혈흔이 떠 있는가
앞바다에 왜 혈흔이 지워지지 않는가 -몬테비데오 1980년 겨울

한 시대를 감시하겠다는 사람의 외로움의 질량과
가속도와 등거리도 양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죄의식에 젖어있는 시대, 혹은 죄의식도 없는 저
뻔뻔스러운 칼라 텔레비젼과 저 돈범벅인 프로 야구
와 저 피범벅인 프로 권투와 저 땀범벅인 아시아 여
자 농구 선수권 대회와 그리고 그때마다의 화환과
카 퍼레이드 앞에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나의 유사-형재애도, 너에 대한 정치 경제 사
회 문화적 속죄는 못 된다
그걸 나는 너무 잘 안다
그걸 나는 금방 잊는다 -95 청량리-서울대


다시 의심이 시작된다. 이제는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의심의 차원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같은 의심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세속적 문학형태의 하나인 풍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우리의 무의식을 공격한다. 이렇게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하면서도 시의 서정성의 미학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그의 시들의 특징이다.

반면에 이것이 그의 시에 나타난 취약점이기도 하다. 이 두 모순점을 적절히 조화시려는 큰 목적을 달성하다보니 그의 시에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풍자의 우회적인 공격성이 무의식에 더 큰 자극을 주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그 자극을 통해 반사적인 행동의 변화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스스로 직접‘어떤 성취나 기록 갱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로 하여금 힘들어하고 지쳐 있는 자에게 시선을 준 것으로 이 상을 이해하고 싶다 -1994 제 8회 소월시문학수상 소감 中’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아 세월은 잘 간다.
눈먼 세월, 잘 간다.
나는 손 한번 못된 세월. 잘 간다.
아직 오지 않은 사고와 사건과 사태와 우발과 자
발과 불발의 세월. 속으로.
잘 간다 -活路를 찾아서


의심의 시작으로부터 끝없는 의심의 회오리 속에 황지우가 있고 그의 시가 있다. 그와 그의 시와 함께 잘 가는 눈먼 세월, 아직 손 한번 못된 세월에 이제 우리도 의심을 시작해보자. 그리고 스스로, 우리 손으로, 우리의 활로를 찾자.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지음, 문학과지성사(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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