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2월 13일 <오마이뉴스>에 '한국형 밸런타이데이를 아시나요?'라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다. 한국형 밸런타이데이 즉, '정월 대보름', '경칩', '칠월칠석' 중 하나를 우리식 연인의 날로 정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유통업체들의 상술에서 비롯되어 소비일변도로 왜곡된 밸런타이데이 대신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감어린 우리식 연인의 날이야말로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신라시대 때부터 정월 대보름에는 처녀들이 일 년 중 단 한 번 공식으로 외출을 허락 받은 날이다. 그 외출은 '탑돌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미혼의 젊은 남녀가 탑을 돌다가 눈이 맞아 마음이 통하면 사랑을 나누는 그런 날인 것이다.
경칩날 젊은 남녀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한다.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칠월칠석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칠월칠석 역시 우리 고유의 연인의 날이라 할 수 있다. 예부터 칠석날에는 시집가는 날 신랑 신부가 같이 입을 댈 표주박을 심고, 짝떡이라 부르는 반달 모양의 흰 찰떡을 먹으며 마음 맞는 짝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런 날 중 관련단체들에 의해 '토종' 연인의 날로 만드는 시도가 차츰 생기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갈골 한과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인 15일 하루 동안 연인과 가족들이 참여하는 한과만들기 체험행사를 열고, 몇몇 시민단체들은 엿이나 떡 등을 나눠먹자는 '신토불이 밸런타이데이 운동'을 펼치는 등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또 벤처농업인들은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칠월칠석을 '견우와 직녀의 날'로 정하고 3년째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칠월칠석에는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주최 그리고 농촌진흥청, 생활개선중앙회, 한국떡연구소의 주관으로 제1회 연인의 날, 떡의 날 '견우직녀의 축제'가 열린다.
2003년 7월 6일, 7일, 14일, 21일, 28일, 8월 4일 등 총 6번에 걸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1층-3층, 국악로, 국악로 인산빌딩 주차장 등에서 행사를 하게 되는데 제1회 연인의 날, 떡의 날 선포식과 관련 전시 그리고 따르는 행사가 있게 된다.
이 행사 내용에는 '떡이 좋아! 쌀이 좋아! 사랑이 좋아!' 등 각종 관련 전시, '장독대 정화수 떠놓기' 등 칠석풍습 재현, '떡과 별자리로 무료 궁합보기' 등 행사, '쌀아이스크림' 등 견우직녀 선물전이 있으며, 떡박물관과 부엌살림 박물관 무료관람, 쌀국수 등 시식, '쌀과자' 등 증정, 떡 사랑편지지 나눠주기 등이 있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이벤트 행사들이 많아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행사 중에는 '사랑의 오작교'라는 것이 있다. 미혼남녀 각 10명을 서로의 짝을 찾아주는 것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서먹함 녹이기 놀이(ice break game)'을 하며, 설기떡 케이크를 제공하고, 떡에 데코레이션을 가장 잘한 사람에게 상대방에게 먼저 프로포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이다.
또 '견우직녀 선발대회'는 예로부터 찰떡이 찰기가 있어 부부의 사이를 좋게 한다는 데 착안하여 연인들이 한 팀이 되어 일정량을 같은 시간에 끊어지지 않고 가장 길게 만드는 팀에게 상을 준다.
제1회 연인의 날 기념으로 각 선발 기준에 따라 정답고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을 지닌 연인 1쌍을 선정하여 '건강한 연인 문화 홍보대사' 역할을 하도록 한다. 이후 선발된 연인인 견우직녀는 헤어지지 않고, 사랑을 맺어주는 의미로 전통 혼례식도 올려주게 된다.
다음 '사랑이 꽃 피는 나무(연인들의 떡 만들기)'도 있게 되는데 이는 연인들이 모두 각자의 떡을 만들어 사랑을 꽃 피우는 조형나무 위에 걸어 이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도록 염원하는 잔치로 칠월칠석에 칠성신에게 장수염원과 소원을 바라는 풍습에게 재현한 행사라고 한다.
7월 7일은 '제1회 떡의 날, 연인의 날' 선포식을 한다. 그리고 세부행사로 오작교 완성식, 대형 사랑떡케잌 만들기, 견우와 직녀 국악로 가두 홍보 행진이 있다.
토종 연인의 날과 떡의 날을 제정함으로써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건전한 교제를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선물 등도 전시하게 된다. 또한 기존의 테이프 커팅식 대신 오작교 완성식으로 시작하며, 선포식 이후 대형 떡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 먹음으로써 정감있는 이벤트를 지향하게 된다.
또 '우리 사랑 새록새록'이라는 행사는 젊은 남녀 연인들이 짝을 이루어 공동으로 자신들만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가족이 참여하는 사랑의 떡 오작교 만들기는 흑미절편과 백미절편을 빚은 다음 틀로 찍어서 흑미, 백미 까치를 만들고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오작교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가족 대항전도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 행사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큐피드 떡 만들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만의 독특한 선물을 하고 싶은 연인들이 큐피드의 떡을 만들고, 예쁘게 포장하여 애인에게 선물하는 이벤트이다.
다음 '천연 염색 손수건 만들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연인들이 천연염색법을 배운 다음 예쁜 손수건을 직접 만들어 애인에게 선물하는 이벤트를 한다. 그리고 '견우 손거울 만들기'가 있는데 이는 연인들이 한지 공예를 배운 다음 여자친구에게 줄 손거울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기도 한다.
'도전! 길쌈공주!'는 무엇일까? 길쌈을 잘 하는 직녀처럼 칠석날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원했던 풍습을 응용하여 가장 예쁜 미니 조각보 만들기 체험을 한다.
이 행사를 주최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7월7일은 양수(陽數)가 겹친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날이며,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전설이 있는 칠월칠석입니다. 우리의 고유한 연인문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신세대 연인들이 상술에 물들어 서양의 초콜렛이나 캔디 등을 주고받으며, 국적불명의 기념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에 사라져가는 우리의 연인의 날을 선포하여 주체성 있는 연인 기념일을 제정하고, 나날이 개발되고 있는 고품질 우리 농산물을 주고받는 새로운 선물문화를 만들어 보고자 이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고 행사 주최의 이유를 말한다.
윤 소장은 지난 2월 1809년(순종 9년)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쓴 조선시대의 여성백과 <규합총서(閨閤叢書)> 중 주식의편을 재현한 책을 내기도 했으며, 한국전통음식연구소와 떡박물관, 부엌박물관 등을 만들어 우리 전통음식의 연구와 보급 그리고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제 상술은 밸런타이데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매달 14일을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옐로데이(로즈데이), 키스데이(레드데이), 실버데이, 그린데이, 뮤직데이(포토데이), 레드데이(와인데이), 오렌지데이(무비데이), 머니데이, 다이어리데이 까지 만들어내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있다.
자 이제라도 우리는 새롭게 '견우직녀의 축제' 행사에 동참하여 상술에 휩쓸리지 말고, 의미 있는 우리식 토종 연인의 날을 만들어나가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탰으면 한다. 이번 칠월칠석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은행과 짝떡을 먹으며, 탑돌이를 해보면 어떨까?
지금은 장마철이다. 음습한 기운이 우리의 마음까지 음울하게 만들어오지만 견우직녀 축제와 함께 환한 마음을 가져보면 좋을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숨결을 호흡하는 것은 초콜릿 같은 상술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풍속이 만들어 주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