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부터 십수년 전, 반공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던 시절,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표어가 거리마다 나부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나도 그 시절을 아무 유감없이 살았지요. 그래서 무슨 조그만 잘못 뒤에도 학교 선생님들은 회초리를 들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를 외쳤습니다. 자수하면 정상을 참작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교동에 이사 와서 실수를 거듭했는데, 앞으로도 이곳 생활에 익숙하기까지 실수를 되풀이할 것이 분명하고 그때마다 이실직고, 자수하면 정상을 참작해주리라 믿으며, 첫번 실수담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교동에 이사온 지 사흘 지난 토요일 아침, 주일예배 설교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서재로 들이닥치더니, "여보! 당신 드디어 일냈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빳빳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밖에 이도성씨가 와 있어요."
"아니 왜?"
"도둑맞은 텔레비전 안테나 찾으려구요!"
"뭐라고?"
이곳에 이사 온 다음날, 아이들의 성화에 주택 밖에 있는 삐져나온 텔레비전 안테나 선을 텔레비전에 연결했지만 화면이 나오긴 나와도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보아하니 텔레비전 안테나라는 게 꼭 수탉 꽁지 빠진 것 같이 엉성하기도 하고, 내 키만 한 걸 얼기설기 비끄러 매놓은 게 화면이 잘 나오긴 아무래도 틀린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날, 나는 창고에서 멀쩡하게 생긴 텔레비전 한 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게 웬 거냐고 장로님께 물어보았더니 교육관에서 사용하던 텔레비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 교육관 옆 내 키의 세 곱은 되는 크고 잘 생긴 안테나 하나가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 저 안테나가 교육관에서 사용했던 안테나였구나'하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날 오후 칙칙거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러면 교육관에서 사용하던 잘 생긴 안테나로 바꾸면 되겠다 싶어 곧바로 행동개시에 들어간 것입니다. 안테나에 늘어져 있는 안테나선부터 가위로 싹둑 자르고….
그러나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안테나를 움직이는 게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빨래 줄과 나뭇가지를 피해가며 옮기는데 젖 먹던 힘을 다 동원해서 '야, 나도 참 자상한 아빠구나!' 그걸 아이들에게 주지시켜가면서 드디어 문제의 안테나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도성씨는 씩씩거리며 어머니와 함께 주택 마당에 비를 맞고 서 있었습니다. 드디어 범인을 잡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나는 그 안테나가 교회 안테나인 줄 알았다고 설명부터 했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다고, 반드시 원상회복을 시켜 놓겠다고' 사정사정하면서 이도성씨의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도성씨의 말에 의하면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이 엉망이 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데,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이 제대로 안 나오니, 방송국 사정인가 싶어 하룻밤을 넘기고 그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텔레비전 화면이 잘 안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생각에는 어제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 바람에 텔레비전 안테나가 넘어졌나 싶어 이도성씨를 채근하여 밖으로 내보냈답니다. 그런데 어랍쇼? 어제까지 서 있었던 안테나가 오간 데 없이 된 것이지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그래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중에 주택 뒤 곁에 안 보이던 안테나가 서 있는 게 눈에 띄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래도 자기 집 안테나 같더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부아가 나는 일입니까? 그날 아침 하필이면 장대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저는 그 비를 다 맞아가며 텔레비전 안테나와 씨름을 했습니다. 물론 체급은 다르지만….
만약에 내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야, 목사놈아! 세상에 목사가 이사 온 지 이틀만에 남의 집 안테나를 훔쳐가? 이 나쁜 놈아!"하지 않았을는지요.
그날 아침 장대비를 맞아가며 안테나와 씨름을 하다가 그만 목을 삐꺽해서 며칠 동안 목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파스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나는 이도성씨가 내 귀싸대기라도 한 대 올려붙이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날 그 사건으로 인해서 이도성씨와 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기분이 언짢은 일이 생기면 그날 그 사건을 생각합니다. 세상에 텔레비전 안테나를 훔쳐가는 도둑도 있었나 싶은 게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