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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모퉁이에서 물건을 파시는 아주머니. 고단하시겠지만 표정이 밝으시다.
길가 모퉁이에서 물건을 파시는 아주머니. 고단하시겠지만 표정이 밝으시다. ⓒ 느릿느릿 박철
내가 강원도에서 목회 하던 때의 일입니다. 제가 목회 하던 곳에서 20여리 떨어진 선평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평교회는 한 30명쯤 모이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12월 성탄축하예배를 드리고 일년을 결산하는 당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년 교회 살림을 다하고 나니, 80만원의 돈이 남았습니다. 담임전도사는 이 돈을 어떻게 해야할지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다음해로 이월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적당하게 좋은 일에 쓸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 한분이 벌떡 일어나서 한다는 말이 며칠 전 우리 동네에 화재가 난 집이 있는데, 그 집을 도와주는데 쓰자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담임전도사 역시 놀랐습니다.

전도사님은 그런 제안을 한 그 집사님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평소에도 신앙생활을 잘 하시던 젊은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교인이 찬성을 해서 화재 난 집을 돕는 일에 80만원을 쓰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흐뭇하게 생각했습니다.

성탄예배와 당회를 마치고 저녁에는 예배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는데, 누가 전도사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밖에 나가 보니 어느 여자 집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여자 집사님은 그 교회에서, 아니 그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분이었습니다. 20년 전 남편이 광산에서 탄을 캐는 광부로 있다가 탄이 무너져 죽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고 나서 완전히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어서 받은 보상금은 그동안 여러차례 아들 수술비로 다 날려버리고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과 교인들의 도움으로, 남의 빈집을 빌어 살면서 사북 탄광지대 시장통에 나가서 조그만 보자기를 펴놓고 20살이 넘은 그 불구아들과 함께 잡곡이나 말린 고추, 나물 등을 팔면서 겨우 살아가는 집사님이셨습니다.

"아니 집사님, 어쩐 일이세요? 들어오세요?"

그랬더니 그 집사님은 한사코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한참 망설이더니,

선평리에서. 그 시절 사진이다. 선배와 손목사와 함께.
선평리에서. 그 시절 사진이다. 선배와 손목사와 함께. ⓒ 느릿느릿 박철
"전도사님, 이거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우리 동네 화재 난 그 집에 좀 이 돈을 보탰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당회를 하면서 저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 받기만 해왔는데, 제가 너무 인색했습니다. 제 맘에 오늘 성탄절을 맞아서, 화재로 집을 잃고 고생하시는 그 가정을 돕고싶은 마음이 생겨서 이 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무에게도 이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하면서 신문지로 돌돌 말은 돈뭉치를 내놓고 쏜살같이 내빼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돈뭉치를 풀어 보았습니다. 만원 권은 몇 장 안되고 거의 천 원짜리 지폐였습니다. 전도사님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세어보니 꼭 이십 만원의 돈이었습니다.

그 돈은 그 집사님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20만원은 어떻게 하든 시골에서 집이라도 한 칸 장만하기 위해서 모아둔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망설이다 그 집사님의 뜻을 받들어서 교회 돈 80만원과 이 집사님이 두고 간 20만을 합쳐 백만 원을 화재로 집을 잃어버린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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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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