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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을 주의 깊게 보는 누군가가 있다. 그냥 지나치는 길거리의 간판, 버스 정류장, 가로수, 보도 블록 등에서도 의미를 찾는다는 건 그가 뛰어난 관찰력과 사색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의 저자는 바로 그런 관찰력과 사색력을 토대로 하여 우리 시대 일상 속의 여러 문화들을 읽어내고 분석한다. 그가 분석하는 대상들이란 버스 정류장의 의자나 전봇대와 같이 정말 시시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대상들은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면서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사소한 일상 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한다.

"이제 시각 문화, 생활 속의 문화는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과 사색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그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을 뿐 어떤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책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불만이 쌓이면 언젠가 폭발해서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 기록된 불만들은 그러한 변화에의 작은 도화선 역할을 기대하고 쓴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묘사되는 대상들은 우리 사회의 고루하고 부패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쓰레기 생산을 양산하는 신문지 광고, 백화점, 할인점 광고들의 조잡함이 바로 그 단적인 증거이다. 저자는 이 광고들의 공통점을 '디자인의 하향 평준화'라고 지적한다.

"심미적인 고려나 디자인의 세련성보다는 상품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알리겠다는 욕망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많은 정보를 집어넣겠다는 욕망은 물건을 많이 팔겠다는 욕망과 같다. 그 욕망의 차이 없음이 자본 투여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디자인의 하향 평준화를 이룬다."

이와 같은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질 낮은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 수준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뜻과도 같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지적하는 '문화의 하향 평준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어 개선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취하는 문화적 차별 행동들 또한 '차별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추구하는 획일성 속에 존재한다.

"의상, 헤어 스타일, 특정한 스포츠, 취미, 오락 통신, 게임, 대중 문화에의 마니아적 몰입이 정체성을 확보하는 도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아리, 같은 취미를 가진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강화된다. 폭주족, 팬 클럽, 통신 모임, 동호회 따위의 그룹이 그 자아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인하는 일종의 또래 집단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그들 나름의 문화 정체성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그들만의 획일성이 존재한다. 그 획일성의 테두리 안에 속하지 못하는 한 개인은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획일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적 대상들을 문화적 관점에서는 '키치'라고 칭한다. 노점상에서 팔리는 곰 인형, 잠실 롯데 백화점 지하의 트레비 분수 복제품 등이 바로 이 키치에 해당한다. 저자는 키치가 우리 문화의 주류가 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키치는 적어도 바람직한 미적 취향은 아니다. 그것이 그림이 됐건 도자기가 됐건, 아니면 문학이나 음악이라 할지라도 키치는 무엇보다 상품 가치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거나 대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검증이 끝나거나 일반화된 예술의 실험 결과들을 아무런 고통 없이 받아들여 재빨리 장식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문화가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획일성이라는 늪을 피할 수 없다. 문화 현상 속에서 획일성이 나쁜 이유는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문화의 자생 능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문화 속에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군주 독재 체제 하의 획일화된 사회나 다름없을 것이다.

저자가 갖고 있는 일상 문화의 획일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우리의 주거 문화를 대표하는 아파트를 설명하는 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파트는 거대한 콘크리트로 된 텐트이다. 그것은 영구 거주지가 아니라 임시 거주지이다. 그러므로 아파트들은 크기와 높이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우라가 없다. 삶의 아우라가 없으므로 거기에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없다. 단지 금가고 물새는 퇴락과 층수를 높이기 위한 재건축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내부 장식을 통째로 바꾸어도 감출 수 없는 임시 주거지로서의 성격 때문에 아파트는 전통적 의미의 집이 아니다. 단지 교환 가치를 가진 공간일 뿐이다."

저자는 서구의 가스 가로등 형식을 본떠서 만든 우리나라 가로등의 모습 또한 '조악한 키치의 산 표본이며 시대 착오적이고 국적 불명'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우리나라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구의 오래된 가스 가로등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우리나라 가로등은 아직도 우리 거리 이곳 저곳에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책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일상 문화의 잘못된 모습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개선점이 없다는 것이다. 일말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불만과 비판을 털어놓음으로써 대안 또한 언젠가는 모색될 수 있다. 그 개선점과 대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이 다양한 관점에서 많이 생성되길 바란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 20년 후 (표지 6종 중 랜덤 발송) - 우리 시대 일상 속 시각 문화 읽기

강홍구 지음, 이안북스(IANNBOOKS)(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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