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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대학본부 앞에서 학벌없는사회 전국학생모임(http://antihakbul.org) 등 6개 학생운동단체(교육운동연대회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서울대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전국학생연대회의, 학벌없는사회 전국학생모임, 한총련)가 공동으로 정운찬 총장의 학벌 조장 발언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운찬 총장이 지난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벌철폐 운동은 포퓰리즘(대중에게 비위맞추려는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한 것은 “온 민중의 학벌타파 열망을 비아냥거린 학벌 기득권자의 망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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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장은 ' 학벌주의 망령 ' 에 사로잡혔다"


▲ 6개 학생단체들이 서울대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백철
정 총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당신은) 포퓰리스트가 아니라면 엘리트주의자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내 생활이 엘리트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가 있다. 서울대는 사회를 리드할 정예의 지도자를 키워내야 한다”고 ‘서울대 엘리트론’을 강조했다. 또 그는 정부의 ‘학벌주의 극복 방안 수립을 위한 합동기획단’에 대해서도 “좋은 취지에서 하는 것이겠지만 서울대 폐지는 힘들 것이다”라고 서울대를 지켜낼 의지를 보였다.

ⓒ 백철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성민(22) 씨는“우리교육은 일류대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으로 다 망가졌고 사회에서는 학벌차별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멸시당하고 고통 받고 있다. 이러한 학벌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은 서울대”라며 “서울대 출신들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때부터 남한사회 권력 있는 자리를 독차지하고 자기들끼리 남 배척하는 패거리를 만들어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왔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또 다른 학생은 “어떻게 학벌타파운동을 ‘포퓰리즘’이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냐”며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유학 등 순탄한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온 그가 약자의 아픔을 모르는 것은 당연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정운찬 총장이 학벌 때문에 고통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생각했다면, 학벌사회를 바꿔보자는 사람들의 외침을 ‘대중 여론에 비위맞추려는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비아냥거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학벌없는사회 전국학생모임 김신아(22)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정운찬 총장이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최고 학벌 기득권 집단인 서울대의 대표이기 때문에 더 분노하는 것이다”고 이번 기자회견을 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또 기자회견을 연 6개 단체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학벌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내뱉은 이번 말에 대해 하루빨리 공개 사과하라”고 정운찬 총장에게 요구했다. 아울러 이들은 정 총장이 시민과 함께하는 공개 토론회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

굳게 닫힌 서울대의 문

학생단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대 총장 공개 사과’'서울대 개혁 공개 토론회 참석’요구를 담은 항의 성명서를 서울대 총장실에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서울대 측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구를 두꺼운 철문으로 막아버렸다. 학생들은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들기며“철문 뒤에 숨지 말고 빨리나와 우리의 요구를 들어라”고 소리 질렀다.

서울대 측이 계속 철문을 열지 않자 학생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4층 총장실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서울대 측은 엘리베이터 입구에 청원경찰을 배치에 학생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청원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 학생들이 철문으로 막아놓은 계단이 아닌 엘레베이터를 통해 총장실로 올라가려 하자 서울대 측은 청원경찰을 동원해 학생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 백철

▲ 굳게 닫힌 철문. 학생들이 총장실로 올라가려 하자 서울대 측은 2층에서부터 철문으로 막아버렸다.
ⓒ 백철
서울대 측이 계속 총장실 진입을 막자 학생들은 1층 로비에 앉아 20여 분 동안 정리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교육운동연대회의 소속 한 학생은 “우리와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정운찬 총장의 태도가 안타깝다”며 “앞으로 더 많은 단체들과 연대해 정 총장의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다짐했다.

학생들은 “우리는 앞으로 학벌타파를 바라는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연대하여 위 요구사항이 받아들여 질 수 있도록 힘차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7월 31일(목) 늦은 2시 같은 장소에서 더 많은 시민 사회 단체들과 연대해 2차 기자회견 및 항의 집회를 갖기로 했다.

▲ 서울대 측이 계속 총장실 진입을 원천봉쇄 하자 학생들은 본관 1층 로비에 진을 치고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 백철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부터 서울대 측은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위한 갖가지 공작을 벌였다. 기자회견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는 학생들이 학생회관 식당에서 빌려온 탁자와 의자를 식당 직원들이 몰려오더니 “식당물품을 바깥으로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며 가져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쓸 책상과 의자를 다시 구하느라 꽤 애를 먹기도 했다. 학생회관 식당의 탁자와 의자는 평소 학생들이 행사를 할 때 자주 써 왔던 것이다.

또 기자회견을 시작하려고 하자 서울대 본부의 한 직원이 와서“학칙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고 학교 안에서 이런 행사를 하면 안 된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 직원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수없이 많이 행사를 했지만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며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관련 학칙을 가져오라”고 항변하자 돌아갔다.

또 서울대 본부의 한 직원은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서울대 학생이냐? 아니면 어느 대학에서 여기까지 왔느냐”고 서울대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학벌 콤플렉스 아니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이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서울대 관계자들도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생들이 어느 대학에서 왔는지 궁금해 했다.

또 서울대 한 관계자는 기자회견 전날(24일)에 “내일 학생단체들의 기자회견과 같은 시간에 서울대 당국도 (어떤 주제인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정운찬 총장 망언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할 기자들을 분산시킬 목적이었을까?

서울대 출신이 장악한 언론사 편집국
대부분 이번 기자회견 보도하지 않아


이날 기자회견에는 30여 기자들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다음날 대부분 신문에는 아주 작게 보도되거나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평소 서울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소한 것도 크게 다룬다. 그런데 이번 일 만큼은 편집국 데스크에서 기사 가치가 없다고 본 걸까? 이는 서울대 출신이 장악한 편집국에서 의도적으로 축소보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편집 행태를 보인 언론 가운데 하나인 <동아일보>는 26일 사설을 통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대학 서열 철폐는 포퓰리즘’이라고 한 발언을 놓고 학벌타파 운동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정 총장의 말대로 어느 시대든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는 필요하다”며 “각 대학은 누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느냐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마땅하다”고 정 총장을 옹호했다.

물론 학생들의 '정운찬 총장 학벌 조장 망언규탄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또 <동아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맹목적 학벌극복은 맹목적 학벌주의만큼이나 위험하다”며 학벌주의 극복정책이 개인의 실력과 상관없이 자리를 나눠 갖는 식이 되거나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아무 대학이나 진학하면 된다는 식으로 전개돼서는 곤란하다”고 학벌타파 운동을 왜곡하기도 했다.

▲ 문제의 발언과 항의 성명서
ⓒ 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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