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옛날에 비해서 우리네 의식주 생활이 많이 개선되어서 그런지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공공장소에서도 발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냄새 자체가 어디를 간 것은 아닐 것이고, 그만큼 발을 잘 씻고 양말을 자주 갈아 신기 때문이겠지요. 지금부터 20여 년 전 만해도 발 냄새가 어디를 가던지 진동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발 냄새 하니까 또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아마 중학교 시절이었지요.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습니다. 그 사춘기 촌뜨기 시절, 나는 숫기가 전혀 없는 쑥맥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 여학생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그저 볼펜 끝으로 여드름이나 꾹꾹 눌러 짜대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던 겨울 어느 날, 나는 어머니가 선물로 받은 외제 향수를 발견하고 속으로 '아, 저걸 바르고 가면 그 향기로운 냄새로 여학생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겠다' 싶어 향수를 온 몸에 뿌려댔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아이들은 여학생 남학생 가릴 것 없이 ‘이게 웬 냄새냐?’고 하면서 코를 싸쥐고 나를 잡아먹을 듯한 기색으로 모든 시선은 내게 집중되었습니다.
수업시간이 되자 별명이 '울퉁불퉁'이신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들어오시자마자 '이게 무슨 냄새냐?'면서 얼마동안 수업을 진행하지 않으시고 왔다갔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녀석들이 나를 항해 손가락을 지목하자 선생님이 무서운 표정을 하면서 내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많은 여학생 앞에서 "아니 사내 녀석이 웬 향수를 처바르고 왔냐?"고 하시며 실내화를 벗어서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갈기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냄새에 대한 추억은 고등학교를 졸업반 시절이었습니다.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들, 꼭 바람난 수캐 모양 몰려다니던 시절이었지요. 그런 겨울 어느 날, 지금 경찰공무원을 하고 있는 친구 집에 아이들이 떼거리로 몰려가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지요. 그때 친구의 어머니가 불쑥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평소 우리에게 별로 감정이 안 좋으셨습니다. 우리가 거의 매일 떼를 지어 뭉쳐 다니는 모습이 친구의 어머니는 보기 안 좋으셨나 봅니다. 우리는 너무나 놀래 너나 할 것 없이 이불 속으로 머리통을 집어넣고 숨었습니다.
일단 친구 어머니의 화난 얼굴 표정이라도 피하고 싶었던 게지요. 바로 그때, 이불 속에서 친구 중에 한 놈이 방귀를 뀐 것입니다. 얼마나 지독했던지…. 그러나 밖으로 탈출할 수도 없고 친구 어머니가 방문을 닫으실 때까지 우리는 진저리나는 방귀냄새를 견뎌야만 했지요.
우리 교회의 장로님 부인되시는 집사님이 지난 토요일 자궁근종 수술을 받으셔서 일곱 분의 교우와 함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수술을 받으신 지 나흘이 지났는데 방귀가 안 나와서 밥도 못 먹고 링거주사만 맞고 계셨습니다.
얼굴이 수척한 게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나는 승합차를 타고 오는 중, '아, 방귀도 하느님의 은총이구나!' 생각하면서 앞으로 우리 집사람이 방귀를 뀌어도 절대 호들갑을 떨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심은 무위로 돌아가고 여전히 아내가 방귀를 뀌면 성깔을 냅니다. 물론 내가 방귀를 뀌면 관대하지요. 참으로 요상한 건 아내가 방귀를 뀌면 왜 더 구리고, 내 방귀냄새는 그저 참을 만 한 것인지요? 그걸 알면 산에 가서 도닦을 필요 없을 텐데 말입니다. 도통한 분들 중에 그런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계실까요?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