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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말 <조선일보> 정치부의 한 기자가 한나라당의 열성 당원에게 자신을 '<오마이뉴스> 이회창 기자'라고 사칭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유야 어쨌든 이는 해당 매체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로, 기자윤리 차원은 물론 굳이 따지자면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당시 현장에서 이같은 발언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6월 23일 아침 한나라당 대표 경선 후보 합동연설회 마지막날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행사 취재차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은 당에서 제공한 기자단 전용버스에 승차했다.
이 때 자신을 '한나라당 상임위원이며 청년특별보좌역'이라고 밝힌 H씨 등 두 사람이 먼저 이 버스에 승차해 있는 것을 당 대변인실의 한 당직자가 발견했다. 이 당직자는 평소 당 출입기자 등록·관리, 취재 협조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당직자가 H씨 등에게 "왜 사전에 동의도 받지 않고, 출입기자를 위해 마련한 기자단 버스에 무단으로 승차했느냐"며 따졌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같이 타고 가자"며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버텼다.
이 당직자는 계속 두 사람에게 버스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양쪽간에 심한 언쟁이 오가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점차 시간이 흘러가자 버스에 승차했던 일부 기자들도 "취재 시간에 늦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조선> 기자는 두 사람에게 "시끄러우니까 빨리 내리라"고 요구했다. 실랑이 끝에 H씨 등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조선> 기자를 향해 "내가 내리기는 내리는데…. 당신, 어디 신문사야"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조선> 기자는 두 사람을 향해 "나, <오마이뉴스> 기자다, 어쩔래?"라고 대꾸했다. 이어 두 사람이 "어, <오마이뉴스>라고…. 그럼, 이름은 뭐야?"라고 되묻자 그는 "나, '이회창'이다"라고 응수했다.
취재기자단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곧바로 <오마이뉴스>에 항의 전화를 걸어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욕설 등 봉변을 당했다"고 밝히고 직접 광화문에 있는 <오마이뉴스> 사무실까지 찾아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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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H씨는 "비록 기자단 버스인지 모르고 탄 내 잘못도 있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심한 욕설과 모욕을 줄 수 있느냐"며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해서 항의하러 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고 있는 필자는 당시 별도의 교통편으로 장충체육관에 먼저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에서 벌어진 그와 같은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이날 정치부 데스크로부터 "기자단 버스 문제로 다툰 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그런 일 없다"고 짧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결국 H씨는 광화문 소재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찾아가 내 얼굴 사진을 보고는 당시 버스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이회창 기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당시 정치부나 회사 간부도 이와 같은 소동의 단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달 초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로부터 그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전해 듣게 됐다. 일부 기자들은 내가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얼굴을 본 김에 "<조선> 기자가 <오마이뉴스> 기자를 사칭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뒤 <조선>에 항의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했느냐"고 물어보는 과정에서 전말을 전해 듣게 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당직자들로부터 재차 사실 확인을 거쳐 실제 있었던 일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당시 <조선> 기자를 찾아보니 이미 한나라당에서 다른 곳으로 출입처를 옮긴 상태였다. 그 기자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알아낸 뒤 지난 4일 오전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조선> 기자는 매우 불쾌한 듯 짧게 몇 마디를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 지난 6월 23일 한나라당 출입기자단 버스 안에서 H씨에게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말한 것이 사실인가.
"그런 유치한 얘기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한참 지난 얘기를 왜 이제 와서 물어보나."
- 나는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 알게 됐다. 그런 말 한 것은 맞나?
"농담한 것 갖고…. 대변인실에 OOO 실장한테 물어봐라."
- 모두 확인했다. 그런데….
"더 이상 할 말 없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에 OOO 실장하고 얘기해라."
당사자인 <조선> 기자가 '유치한 일'이라고 치부한 이번 사건을 두고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오죽했으면 <조선> 기자가 <오마이뉴스>를 사칭했겠느냐, <오마이뉴스>가 워낙 영향력이 있으니까"라며 "이 일은 기자단 버스에 탄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고 <조선> 기자가 한 얘기는 해프닝이니 그냥 덮어두라"고 충고했다.
당시 상황이 당사자에게는 아무리 돌출적인 '농담식 해프닝'이라고 하더라도, <오마이뉴스>는 H씨 등으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강한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 또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 당시 상황을 확인하려 했던 피해자에게 <조선> 기자가 적반하장으로 불쾌감을 토로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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