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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18년 전 강원도 정선으로 첫 목회를 가면서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이 등사기였다. 철필, 철판 등사기 도구 일체를 구입했다. 교회 주보를 만들려면 필요한 도구였다. 학생 시절에 더러 만져본 경험이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철판에 등사 용지를 올려놓고 철필 꼭꼭 눌러 글씨를 썼다. 주보를 다 쓴 다음, 등사기 용지를 롤러에 잉크를 묻혀 잘 붙인 다음 한 장 한 장 주보를 인쇄한다.

아내는 언제나 조수 역할을 했다. 내가 성격이 의외로 꼼꼼하기 때문에 주보 인쇄 상태가 신통치 않게 나오면 아내한테 툴툴거렸다. 롤러를 미는 것은 나이고, 아내는 고작 인쇄가 된 용지를 빼내는 일만 하고 있었는데, 기술자가 자기 실력이 모자라는 것을 탓하지 않고 조수 탓만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뜨거운 여름날, 손에 등사 잉크를 잔뜩 묻히고 주보를 인쇄하는데 이게 마음먹은 대로 잘 나오면 기분이 좋지만, 등사 용지가 밀린다든지 인쇄 상태가 안 좋으면 보통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더러 우리 교회 주보를 보내 달라는 분들이 계서서 주보를 40-50장 밀었던 것 같다.

사실 교인들이 글씨를 잘 읽을 줄 모르니 주보가 없어도 예배 드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것도 글씨를 깨알같이 썼으니 읽을 수도 없다. 2년 동안 등사기로 열심히 주보를 만들었다. 주보 1면에는 주로 시나 짤막한 단상을 적었다. 광고도 나름대로 진지한 문구로 표현했다.

ⓒ 느릿느릿 박철
"1986년 6월 어느 주일 '알림과 소식'란을 보자.

"3, 4, 5, 6월로 이어지는 이 땅의 피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민족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혈육을 같이 하는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고,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지더라도 조금도 한이 없습니다'(로마서9.23)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문익환 목사께서 구속되었습니다. 그 분의 자유에 대한 불굴의 용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 분은 감옥에서도 자유를 누리실 분입니다."

"무더운 계절, 들려오는 소식들이 우리를 점점 우울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농촌을 경시하는 민족은 건강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고 함석헌 선생은 말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기만하고 민주화의 최첨단에 선 것처럼 떠들어대는 현 정부의 야비한 술책을 우리는 단호히 규탄합니다."

"여러 가지 교회 행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할 독자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거렁뱅이 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함으로 자립심을 가집시다."


주보 1면에 이런 기도문도 있다.

"하나님 어머니! 장가 간 지 1년 밖에 안 된 자식도 없는 못난 전도사가 감히 부모님 주일을 맞이하여 기도 올립니다. 우리 교회엔 할머니가 두 분 계시고, 이제 사십 줄에 들어선 아주머니가 세 분 계시고, 35살 애 엄마가 한 분 계십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애들입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는 한 분도 안 계십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르기 보다는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독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무뚝뚝한 아버지보다는 다정다감한 어머니가 더 친근감이 듭니다. 요즘 세상에야 아버지가 제일이어서 어머니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다정합니다. 하나님 어머니, 이렇게 불러도 화 안내시겠지요."

또 이런 시도 있다.

"그 곳에 아득히 계시는 이여
도대체 이 세대를 어찌 하시렵니까?
당신의 깊은 잠, 먹구름 하늘 밑
우리 허리 굽고
간도 쓸개도 다 녹았습니다.
오늘도 아이들 어디선가
비싸게 울고,
그 눈물로 진눈깨비로
빈 땅을 적시며
오오, 무수한 아픔이
우리를 누르오니
주여, 도대체 당신의 이 세대를 어찌하시렵니까?"


박철의 '말씀을 생각하며'라는 코너에는 이런 글도 있다.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단 한 명만 남아 있더라도 우리 성도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세상에 헐벗은 사람이 단 한 명만 남아 있더라도 우리 성도들은 모두 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시대에 암흑을 밝히러 오신 주님의 살아계심을 자각하고 순간마다 제2의 그리스도답게 살면서 그 만남이 그 사람에게 있어 복음을 전해 듣는 생애의 우일한 기회요, 마지막 기회라는 소명 의식을 지니고, 그 만남을 완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저 선택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꾼이 될 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세상 마치는 날까지 끊임없이 지속될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2년 동안 등사기로 주보를 열심히 밀다가 그 다음부터는 복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정선 읍내에 복사기 대리점이 있었는데 돈 받고 복사를 해 주었다. 참 신기했다. 등사기로 주보를 뽑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아는 선배 목사가 주보 용지를 만들어 주었다. 주보 이름이 '정선 아오라지'였다. 토요일이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정선 읍내에 나와 주보 복사해 갖고 오는 것이 큰일이었다.

ⓒ 느릿느릿 박철
주보를 더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한영 타자기를 중고로 구입했다. 펜을 쓰는 것보다 속도가 훨씬 느렸다. 오타가 나면 화이트로 지워야 되고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거의 오타 없이 정성스럽게 타자를 쳐서 주보를 만들었다. 주보에 들어가는 내용은 철필로 쓸 때나 거의 비슷했다.

정선에서 만 4년 동안 생활을 접고, 화성군 남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보만큼은 열심히 만들었다. 주보 독자가 늘어나서 주보 발송하는 작업도 큰일이었다. 타자 경력이 제법 오래되었는데도 속도가 붙질 않는다. 타자기를 사용하고 나면 레이스가 달린 예쁜 덮개로 타자기로 덮어놓고 애지중지 했다.

그렇게 타자기를 유감없이 사용하다, 컴퓨터라는 것이 나왔다. 글씨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있고 선을 그을 수도, 양식을 그릴 수도 있고, 너무 신기했다. 1994년 여름, 286 컴퓨터가 처음 나오자마자 거금을 들여 컴퓨터와 프린터를 구입했다. 신기해서 두어 달 동안은 모니터 앞에 살았다. 두꺼운 도스책을 두 번 탐독을 했다.

주보를 만드는 데 얼마나 편리한지, 틀려도 나중에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고쳐도 지저분한 자국도 남지 않고, 또 다 만든 주보를 저장해 둘 수도 있고…. 주보 페이지 수도 늘렸다. 그 때 주보가 <함께 나눔>이었는데, 교동에 이사 와서도 당분간 주보 이름을 <함께 나눔>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만든 1994년 1월 2일 주보 앞면에 이런 글을 적었다.

"새벽 기도회를 다녀와서 책상머리에 앉으니 머리가 차분해 집니다. 이런 은밀한 시간에는 녹차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차 한 잔을 하는 게 제격일 텐데 아내가 실수로 다기를 깨트린 이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달에는 사야지 하면서 벼르고 별러도 또 지나가고 맙니다.

제가 장덕 교회에 온 지가 꼭 4년이 되었습니다. 엄마 뱃 속에 있던 아딧줄이 태어나 제법 자랐다고 고집을 부리며 생떼를 쓰기도 합니다. 이렇듯 세월은 화살처럼 지나갑니다. 시나브로 한해의 꼭두에서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골똘하게 생각해 보지만 선뜻 좀 더 나은 희망을 품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강진구 집사가 지난주 제가 외출한 사이에 진도에서 구해온 난(蘭) 한 분을 선물이라고 두고 갔습니다. 이 놈의 기개(氣槪)가 씩씩한 것이 이 속절 없는 인간 세상의 곡절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청하기만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해를 맞으면서 또 아내를 증인으로 하여 약속을 합니다. 대개가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지만, 이 허허로운 심기를 그대로 두었다간 큰 병이 되겠다 싶어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결심합니다. 몇 가지를 공개하면 교회에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것과 적어도 빚을 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 등산을 열심히 하여 내면의 여유가 튼실해 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등입니다."


지금은 펜티엄 596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 복사기까지 갖추고 모든 인쇄를 교회에서 다 할 수 있다. 참으로 편리한 시대이다. 물론 교회 주보나 교회 양식은 다 컴퓨터로 만들지만, 그 나머지는 다 펜으로 기록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도구를 이용하고 홈페이지까지 운영하지만 나는 여전히 구닥다리 유물에 익숙하다. 인터넷 신문 기자 노릇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컴퓨터 자판보다 볼펜이 익숙하다.

ⓒ 느릿느릿 박철
가끔 나는 목회 초년 시절을 떠올리면 끝이 송곳 같이 뾰죽한 철필을 만져본다. 그 철필 끝에는 내 젊은 시절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 있다. 사람이 편리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또 옛 것에 대한 그리움도 잊을 수 없다. 사람이 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생각도 이따금 해본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옛것과 현재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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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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