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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소리였는데 제 목소리 같지 않았습니다. 너무 실망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어져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고 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발표하라고 하면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개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등록금이고 용돈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데 성가대 지휘를 할 수 있는 교육전도사 자리였습니다. 교육 전도사야 감지덕지 할 자리지만 성가대 지휘는 좀 그랬습니다. 틀림없이 망신당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성가 지휘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취직을 했습니다. 금방 실력이 탄로날 수밖에요. 그래도 나는 버텼습니다. 나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일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열심히 피아노로 화음을 익히고 곡을 해석하고 준비해서 갑니다. 지휘는 박자 젓는 방법이야 대충하는 것이고 그렇게 몇 군데를 옮겨 다녔습니다.
한번은 서울 독산동 어느 교회에서인가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하는데 그 곡을 반주할 반주자가 없어서 아르바이트 음대생을 불러왔는데 이 연주자가 얼마나 깐깐하고 도도한지 지휘자인 나를 한참 수준 미달로 깔보는데 상실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음악 실력으로 안 되니까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군기를 잡습니다. 지각을 한다든지, 결석을 한다든지 연습 중 딴 짓을 한다든지 막 화를 내서 내가 무서운 사람이란 걸 은연 중에 주지시킵니다.
한번은 잠실에 있는 모 교회에서 성가지휘를 할 때인데 그때도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연습할 때였습니다. 저녁 늦게 연습을 마치고 막 나오려고 하는데 반주자 집사님이 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찔끔했습니다. 반주자 집사님은 뜸을 들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지휘를 하시려면 지휘 공부 좀 하시지요.”
딱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 모멸감이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음악 실력 없는 지휘자라는 걸 내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모멸감과 수치는 교육전도 시절, 자존심은 상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이 적당하게 넘겨야 할 나의 짐이었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으니 그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는 그대로이고 가급적 분명하게 발음하려고 애를 씁니다. 목소리 때문에, 내가 기도 많이 하는 목사인줄 알아주는 것도 과히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또 어느 집사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지 모릅니다.
“목사님, 목회하려면 목회하는 것 좀 배우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