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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당골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새벽에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에 잠이 퍼뜩 깨었지요. 도둑이 들었나 보다고 잔뜩 긴장하여 문틈으로 내다보니, 마당 가운데 뒷짐을 진 마을 사람 둘이 서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게 그분들은 오히려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군요.
그 후로 나는 시골집의 마당이란 내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쓰는 공간이며, 늘 이웃집과 오가느라 오래 전부터 생긴 샛길과 마당은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서류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오래 전부터 이웃끼리 오가던 길이 어느 날, 뜬금없이 울타리로 가로막힌다면 그것도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요.
그보다 더욱 걱정스런 일은 마음의 울타리입니다. 이웃과 오가던 길이 사라지고, 울타리로 가로막아 오로지 내 가족만 드나드는 막다른 길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과 원주민 사이에는 엄연한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농사를 짓는 시골 분들과 생업이 따로 있는 외지인 사이에 생각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농사 짓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소똥이 거름이지만, 외지 입주인의 입장에서는 냄새나는 오염물질로 여겨집니다. 과일이나 곡식을 쪼아대는 새들이 농민 입장에서는 밉지만, 아침마다 상쾌한 노래를 들려주는 새들이 곱게만 보이는 외지인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골은 이러한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을 가진 분들이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시골에 들어와 사는 분들에게서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호소를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사람이야 많지만 정말 마음이 통하고, 화제가 일치하는 이웃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서로 같아야만 잘 통하는 것은 아니지요.
대체로 시골살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나가는 분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도시에 살 때는 어떠했는데, 지금 이러고 살고 있자니…" 하는 왕년형. '정말 수준이 낮아 못 살겠어…'라는 공주형. '극장도 없고, 빨래방도 없고, 너무 불편해서…' 하는 도시형. '애들이 멍청하고, 시골선생님들이라 열의도 없고…'라는 열성교육형.
이 가운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공주형입니다. 실제로 이런 분들은 자신이나 이웃들을 위해서도, 그냥 도시에서 살기를 권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못된 버릇이지만, 특히 지역이나 처지를 가지고 높낮이를 따지는 것처럼 천박한 짓도 없지요.
그런 이들은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도 자기 집 주소가 무슨 면이니, 읍이니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시골에 들어와 태어난 자기 아이들의 출생지가 시골인 것을 못 견뎌하여 반드시 출산은 서울의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소위 고급 전원주택단지를 만들어, 그들끼리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장삿꾼들도 등장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분들로 우리의 시골이 채워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골에도 길은 있었지요. 다만 예전의 길들은 이웃집끼리 오가기 위한 길이라 온 마을 집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서로 이어진 길인데 비해, 요즘의 길들은 사람보다 차가 들어가기 위해 넓혀진 길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집집마다 단절된 막다른 길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봅니다.
시골에 들어와 울타리부터 치고, 스스로 막다른 길을 만드는 도시사람이나, 낯선 이웃이 들어와 집 짓는 데 먼지 날린다고 집채만한 바위로 길을 가로막는 시골사람이나 마음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이웃이 없이 혼자 살고 싶다면, 도심의 오피스텔이나 아파트에서 안락하게 사는 편이 훨씬 올바른 선택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새 이웃이 들어오는 걸 조금 먼저 들어와 산다고 텃세를 부리는 분들도 올바른 행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서로 생업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웃이 필요하며, 울타리 없이 서로 드나드는 길, 우리들 마음에 가로 처진 울타리부터 허물어내는 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골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우리 마음에 견고하게 가로막혀 있는 울타리부터 걷어내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