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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하 <양철북>
ⓒ 시공사
“‘양철북’은 삶의 화두를 찾아 길을 떠나는 한 스님과 소년의 이야기를 수채화처럼 단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빛깔과 솜씨에 취해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정신의 키가 한 뼘쯤 자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호승, 시인·동화작가)

이산하 시인의 청소년기를 담고 있는 소설 <양철북>은 양철북이란 고등학생이 법운이란 수행승과 함께 여름방학 동안 함께 보낸 여행기다. 양철북은 외할머니 견성스님이 세운 수국사란 절에 여름 방학 동안 머물기로 한다. 그곳에서 철북은 책을 읽고 글도 쓴다. 그러던 중 묵언정진 수행 중이던 법운 스님을 만나 그의 여행에 함께 따라나서기로 한다. 법운 스님의 선문답 같은 질문과 파격적인 언행을 통해 철북은 삶과 문학의 밑거름이 될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철북은 서점 점원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그 시대의 불온서적이라 할 수 있는 오적과 페다고지 등을 몰래 읽는 조숙한 소년이기도 하다. 또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열병과도 같은 사춘기를 고민 속에서 보내고 있기고 하다.

“옷이 얇은 여름이면 그야말로 뭉클한 살과의 전쟁이었다. 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리는데다가 팔과 다리들이 등나무처럼 서로 얽혀 있는 상태라 정신이 몽롱해지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부끄러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해운대 바닷가로 달려가 마음껏 울고 싶기도 했고, 또 면도날로 내 몸을 마구 그어버리고도 싶어졌다.”

“진도가 나갈수록 권하는 책들의 강도도 점점 높아져갔다. 이른바 판매 금지된 불온서적들이었다. <페다고지>, <겨울 공화국>, <분지>, <나폴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 <미8군의 차>, <비어>, <전환시대의 논리> 등 수도 없이 많았다. 재미 들였는지 나중에는 내 스스로 보수동 뒷골목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사상계>, <씨알의 소리>, <다리>, <대화> 등의 시사 잡지까지 탐독하기에 이르렀다.”

작가 이산하?

1960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학원>이라는 월간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고 경희대 국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무시험으로 입학해 운동권 핵심인물이 됐다.

학생운동과 지하신문을 제작 배포한 혐의로 수배된 이후 5년에 가까운 긴 도피생활을 했다. 1987년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이 필화사건으로 국제적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그 해 가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3년 동안의 투옥생활이 끝난 뒤 오랜 기간 절필했다. 1999년 첫 시집 <천둥같은 그리움으로>를 내놓으며 문단에 복귀했다. 유명사찰을 돌아보고 쓴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과 체 게바라의 시집 <먼 저편>을 엮어냈다. 현재 그는 인권 월간지 <사람이 사람에게>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법운과 철북의 첫 행선지는 운문사였다. 이곳에서 수백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법고와 목어를 두드리며 산사의 새벽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철북은 삶의 경건함과 엄숙함, 자연의 순수함을 배운다.

“산사의 새벽을 열고 저녁을 닫는 것이 바로 산사의 종소리였다. 마침내 33번의 종소리가 끝나자 도열해 있던 스님들이 기러기 줄지어 가듯 대법당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신발 끄는 소리나 발자국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향 타는 냄새로 가득한 법당 안은 불상 좌우로 수천 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운문사를 떠나 두 사람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섬진강 자락의 한 간이역이다. 그곳에서 행려병자와 지체장애인을 돌보는 성 베두윈 여자 수도원이 있다. 꽃향기처럼 항상 그들의 곁에 있는 루시아 수녀의 삶을 바라보며 철북은 세상이 아직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이 여자애는 태어날 때부터 전혀 걸을 수도, 손을 쓸 수도 없어 발로 모든 일을 대신한다고 했다. 밥도 발로 먹고, 악수도 발로 하고, 또 잘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환자들에게 밥도 발로 떠먹여주고 있단다. 나는 여자애의 발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발이 따뜻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 그 애는 나한테 종이배 하나를 정성스럽게 접어 발가락으로 건네주며 수줍게 웃었다.”

불귀암이라 암자에는 법운의 도반 무불 스님과 그곳에서 애절한 사연을 가진 채 자살한 사미승의 영정이 놓여 있다. 거기에 상사화의 슬픈 운명이 흐르고 있다.

“눈만 뜨면 저 꽃이 보이니 가슴이 오죽 쓰릴까. 상사화 위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나는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래서 영정에 저 꽃 한 송이를 꽂아 놓았던 것이구나. 하지만 너무 슬펐다. 법운 스님이 얘기한 꽃말처럼 저 사미승에게도 어떤 처녀와의 애절한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간절하게 그리워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했던 것일까.”

그들은 다음 행선지인 오대산 적멸보궁에 도착한다. 법운이 적멸보궁에서 손끝을 차례차례 베어가며 써나가는 혈서경이라는 고행에 들어가기로 하자 철북도 짧고도 긴 여행을 끝내고 법운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장의사였던 술주정꾼 아버지를 떠나 끊임없이 화두를 찾아 정진하는 법운의 삶, 그와 함께 여행에 동참하게 된 철북의 시선을 통해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가 왜 양철북을 두드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소설은 끝난다. 작가 이산하의 성년식 기록이기도 한 <양철북>은 그 시절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어른들이 한 번쯤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불교적 색채가 짙은 성장 소설 <양철북>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한마디로 정돈하자면, 바로 ‘자기 이름 찾기’이다. 스님이란 무엇인가. 혈연의 이름을 버리고, 세속에서 통용되던 때 묻은 이름을 버리고, 스승으로부터 받은 새 이름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깨어 있는 존재다. 예컨대 법운이라는 법명은 얼마나 엄청난가. 구름처럼 자유로운 진리! 자기 밖에서 제 이름과 하나가 되려던 법운은 자기 몸을 통해(혈사경!) 깨달음을 이루고자 한다. 양철북도 다르지 않다. 이미 권터 그라스라는 ‘가짜 아버지(혹은 스승)’을 버린 철북이는 어느새 법운 스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다. 오대산에서 법운과 헤어지는 장면은 , 곧 권터 그라스로 대표되는 기왕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모든 아버지를 떠나 스스로 하나의 아버지가 되려는 성년식이다.”(이문재, 시인)

양철북

이산하 지음, 양철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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