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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여기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은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라고 말하고 있다. "쓸데없이 크고, 생장속도가 빠르고, 못생겼고, 쓸모가 없고, 꿀이 없고, 야생적 가치가 없고, 숫자가 많고, 쉽게 번식하고, 맛이 없고, 가시가 많고,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독성이 있고, 역겨운 냄새를 내고, 잎이 금방 무성해지고, 재배하기 까다롭고, 제초제에 내성이 강하고, 뿌리가 울퉁불퉁하다”고 (흔히 묘사되는 잡초를, 그는) 에머슨의 말을 빌어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로 다시 정의함으로써 잡초, 아니 야생초를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게 만든다.

<야생초 편지>는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가 바로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통하여 깨달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야생초에 대한 그의 본격적인 관심은 힘겨운 감옥 생활에서 얻은 만성 기관지염을 고쳐보려고 풀을 뜯어먹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는 그의 고백이 말해주듯이 그의 연구는 인간중심적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생초를 직접 키우면서 관찰하고 그것을 세밀하게 그림으로 그리고 잎을 따서 먹고 꽃향기를 맡고 씨앗을 수확하는 등 온몸으로 야생초를 탐구하는 동안, 인간이든 식물이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모두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태주의적 시각이 단지 감옥 마당에서 키우던 야생초와 감옥 좁은 방에서 친구가 되어준 작은 동물들(거미, 사마귀, 모기, 청개구리 등)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과 더 나아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세계로까지 확장되는 순간, 이 책은 더 빛나 보인다.

즉, 그는 작고 노란 꽃을 피우는 딱지꽃에서 인간의 손때가 묻은 관상용화초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교만이 아닌 소박함과 겸손을 발견하게 되고, 그 모습에서 아직도 마음속에 가득한 교만과 우월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아프게 반성하고 있다.

또한 화단 한 구석에 수줍은 듯 얌전히 피어있는 주름잎꽃에서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작은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묵묵히 그러나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정중동(靜中動)을 포착하고, 이 세상의 평화라는 것도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평형(動的平衡)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삶에 대한 사색과 세계에 대한 성찰은 일면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그러한 사유가 흘러나온 공간(채 두 평이 안 되는 그 비인간적인 감옥이라는 공간!)과 과정(무고한 간첩혐의를 풀기 위하여 감옥 안에서 5년 동안 온갖 짓을 다하고 나서야 시작한 야생초 관찰)을 생각해 보면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유 속에 녹아있는 체험의 깊이와 진정성의 무게는 감옥 바깥 편안한 서재에서 고급 장정의 원색 사진을 보고 얻은 지식이나 인터넷에서 마우스 클릭으로 불러온 지식보다도 훨씬 깊고 무거워 보인다.

3. 그러니 내가 진정으로 <야생초 편지>를 읽는 방법은 어린 시절 이후로 다시 만나보지 못하고, 아니 만났으되 그 이름을 알지 못했던 많은 야생초들, 예컨대 며느리밑씻개, 딱지꽃, 방가지똥, 여뀌, 까마중, 괭이밥, 중대가리풀, 명아주 등을 직접 우리 집 정원과 동네 공원에서 찾아보고 가능하다면 그림으로 그려보는 일이 될 터이다.

그리고 지난 겨울 동안 묵혀 놓았던 정원 한 구석 텃밭을 새로 일구면서 딸기와 상추와 고추와 깻잎만 욕심낼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피어난 야생초들도 유심히 살피면서 그것이 무슨 야생초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또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아내가 미리 씻어서 비닐 포장된 상태로 사온 야채샐러드에서 토끼풀처럼 생긴 잎들은 잡초라면서 모두 골라낼 때, 그것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니 버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시범 삼아 한 입 먼저 먹어보는 일이 될 터이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깎은 지 5일밖에 안 되었는데 잔디밭에 벌써 잡초, 아니 야생초의 하얀 꽃들이 군데군데 별처럼 돋아나 있다. 그 꽃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즐겁다.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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