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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숲
시인 롱펠로우는 ‘화살과 노래’라는 유명한 시에서, 하늘을 향해 쏜 화살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한 느티나무에서 발견하였노라고 노래하고 있다. 아직 꺾이지 않은 채 박혀 있는 그 화살은 ‘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상징이다.

시간은 화살처럼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러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우리는 ‘그 때 그 시간’을 문득 기억하게 된다. 우리 무의식의 지층에 묻혀 있던 ‘그 때 그 시간’이 어떤 심적 충격의 도움을 받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우리가 놓쳐버린 시간의 화살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새 천년 맞이 행사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1999년 10월부터 1년 간 열린 <시간 이야기 특별전>의 도록으로 출간된 책 <시간 박물관(The Story of Time)>이 겨냥하고 있는 지점도 여기서 멀지 않다.

그러나 <시간 박물관>은 훨씬 더 야심만만하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시간’이 아니라 인류가 시간을 처음으로 인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 이야기’라는 평범해 보이는 영문 표제로 오히려 부각시키고 있는,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는 현세 인류의 자신만만한 야심―“이제 우리는 시간을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을 수 있다”―은 실현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우주가 생성된 뒤 첫 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에 도전하고 있는 첨단의 현대우주론으로도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그것이 빛처럼 유형의 물질인지 아닌지, 그 기원이 언제부터 또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솔직하게 이 패배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 박물관’이라는 국문 표제가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야심을 접고, <시간 박물관>에서 지나간 시간의 유물들을 둘러보는 일이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그 시간은 유익했다. ‘제1장 시간의 창조’에 이어지는 ‘제2장 시간의 측정’에서 마주친 달력 이야기들과 세계의 문화와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온갖 시간 측정 도구와 갖가지 시계들의 도판으로 허비된 50여쪽이 넘는 지면에 대한 안타까움을 위로해 주었다.

또한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미술작품들에 묘사된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 시간에 대한 인류의 인식과 사유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제3장 시간의 묘사’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다.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 이를테면 문학과 음악도 함께 분석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도서관이 아닌 그리고 콘서트홀이 아닌 ‘박물관’에 와 있다는 사실을 바로 상기했다.

그러나 단순히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확장을 위해서라면 굳이 박물관에 갈 필요가 없듯이, 내가 <시간 박물관>을 읽으면서 기대한 것도 ‘지식’이 아니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항상 기대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지식’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얼마든지 나의 것이 될 수 있지만 ‘깨달음’은 그렇지 않다.

<시간 박물관>에서 내가 마주 친 ‘깨달음’의 순간은 인간의 육체와 삶에 깃든 시간의 의미를 묻고 있는 ‘제4장 시간의 체험’을 읽을 때 다가왔다. 시간은 달력에서 읽는 날짜와 요일, 그리고 시계의 문자반을 회전하는 시침과 분침과 초침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순환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은 것이다.

정상적인 어른의 심장은 1분에 75번씩 뛰고(60번이 아니라), 인간의 수면은 24.8시간 주기에 따르며(1일, 즉 24시간이 아니라), 여성의 생리주기는 평균 29.5일이라는(1달, 즉 30일이나 31일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의 육체 속에 깃든 생물학적 리듬이야말로 시간의 진정한 기원일 수 있음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면 ‘제5장 시간의 종말’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끝은 다름 아닌 개별적인 인간의 죽음이 될 터인데, 인간은 그 죽음의 개별성을 역사라는 보편성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시간의 종말을 한없이 유예시킨다. 그래서 시간은 인간 삶의 기록인 역사의 주제가 되고, 역사는 시간을 먹여 살리는 식량이 된다.

결국 날마다 늙어가는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시계인 셈이다. 그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의 화살은 매순간마다 역사를 향하여 날아간다. 그리고 롱펠로우가 자신의 화살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한 느티나무에서 발견하였듯이, 역사는 그 역사가 간직하고 있는 과거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끌어내는 원천이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답은 과거에 있다. 우주 전체가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겨우 보일 만큼 작은 크기로 수축해 있었을 때 일어난 놀라운 사건 속에 우주의 미래에 대한 답이 담겨있는 것처럼. 만발한 꽃과 향기로운 열매의 비밀이 그 꽃과 열매를 가져다 준 한 알의 씨앗 속에 이미 깃들어 있었던 것처럼.

이렇듯 <시간 박물관>을 거닐며 내가 얻은 소중한 깨달음은 4만9000원이라는 비싼 입장료가 결코 아깝지 않게 해주었다. 그대도 한번 거닐어 볼 일이다.

째깍째깍 시간 박물관 -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간과 시계 이야기

권재원 글.그림, 창비(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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