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모두 탐구심에 불타는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어른들에게 던진다. 어떤 질문들은 매우 쉬워서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친절하게 정답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때로는 참으로 대답하기 힘든,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들을 받고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그러한 당황스러운 질문들의 부류에 속할 터인데, 당신은 이 질문들에 몇 개나 올바른 정답(막연한 추측이나 경험에 의한 추론이 아닌 과학적인 지식에 입각한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가?
① “아빠, 버스의 핸들은 왜 택시의 핸들보다 크지?”
② “엄마, 코끼리의 귀는 왜 이렇게 커?”
③ “삼촌, 호수 물은 왜 속에서부터 얼지 않고 겉에서부터 얼어?”
④ “고모, 비행기 안에서는 왜 덥지도 않은데 항상 에어컨을 틀어?”
⑤ “이모, 왜 새들은 전깃줄에 앉아 있어도 감전되지 않아?”
⑥ “형, 왜 하늘은 낮에는 파랗다가 저녁이 되면 빨갛게 변해?”
⑦ “누나, 무지개는 어떻게 생기는 거야, 그리고 왜 항상 반원형으로만 보이는 거야?”
짐작컨대, 당신이 물리학을 제법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위 질문 중의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된 정답을 말해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 <수학없는 물리>를 읽고 나서는 위의 질문들이 나에게는 더 이상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다른 액체들과는 달리 물의 밀도는 어는 점 즉, 섭씨 0도에서가 아니라 섭씨 4도에서 가장 밀도가 높다는 사실을 이제 알기에 쉽게 ③번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져 공기의 온도가 호수의 물보다 차가워지면 호수면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수면의 물이 더욱 차지면 밀도가 점점 증가하여 섭씨 4도에 다다른 물은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고 이보다 덜 무거운 물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위치가 바뀐 물이 수면에서 섭씨 4도로 차가워지면 다시 가라앉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호수 전체가 모두 섭씨 4도의 물로 바뀌게 되면 수면의 물이 떠있는 상태에서 점차적으로 섭씨 3도, 2도, 1도 및 0도로 변하게 되고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따라서 호수의 물은 표면부터 얼면서 점차 수면 아래로 얼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위 다른 질문들에 대한 정답이 궁금한가? 그럼 <수학없는 물리>를 사서 펼쳐보라.)
<수학없는 물리>는 ‘물리학이 화학이나 생물학 등 모든 자연과학의 기본이기 때문에 자연과학도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도에게도 필수교양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에 의해서 출판된 책이다. 따라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물리학의 갖가지 수학공식들이 배제되어 있어서 비교적 쉽게 읽힌다.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는 이 책이 ‘수학없는’ 물리학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물리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수를 준다면 나는 오히려 후자 쪽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해하기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물리학의 여러 개념들과 현상들을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접하는 익숙한 사물과 현상 속에서 이끌어내는 저자의 탁월한 솜씨야말로 이 책을 쉽게 그리고 즐겁게 읽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빛’과 ‘원자와 원자핵’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집중해서 재독, 삼독을 하지 않으면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 수록된 연습문제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쉽게 넘기 어려운 산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예로든 ‘어른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어린이들의 질문들’에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물리학 지식은 이 책을 통하여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로부터 “에이 아빠는(엄마는, 삼촌은, 고모는, 이모는, 형은, 누나는) 그것도 몰라?” 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물리학 지식을 얻는 데에는 이 책은 안성맞춤이라 할 것이다.
나는 물리학을 공부함으로써 얻게 되는 실제적인 효용 가치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사물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과 통찰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저 무한공간인 우주와 초미시세계인 원자의 세계로까지 우리의 관심을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그러한 세계들이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별개의 세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 이 대자연과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철학을 공부하기 이전에, 시를 노래하기 이전에, 음악과 미술을 감상하기 이전에 물리학을 공부할 일이다. 물리학은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기본을 제공해주는 학문이라고 감히 나는 믿는다. <수학없는 물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한 그 기본을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