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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 셋은 모두 식습관이 좋습니다. 너무 잘 먹어서 탈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툴 일이 없는데 식사시간 종종 큰소리가 납니다. 그 이유는 '왜 자기 밥이 작냐?'는 것입니다. 아내가 밥상을 차리면 아이들은 밥이 제일 많이 담겼다 싶은 그릇 앞에 선착순으로 자리를 차지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은빈이가 오빠들에게 먹는 것은 지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애들 밥 먹이느라고 한번도 속 썩은 적이 없었습니다.
‘주는 대로 먹는다.’는 군대 용어가 우리 집에서는 그대로 통합니다. 아이들이 아파도 ‘밥이 보약’이라고 한번도 끼니를 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식사하는 풍경은 대단히 전투적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습니다.
요 며칠 전, 내가 아침에 글 한 꼭지를 쓰고 거실에 나갔더니 은빈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저 혼자 밥을 먹고 있습니다. 내가 대뜸,
“은빈아, 너는 아빠보고 아침인사도 안하니?”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모기만한 목소리로)
“은빈아, 무슨 인사를 앉아서 하니? 아빠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랬더니 은빈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큰소리로)
그런데 밥그릇을 손에 쥐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은빈아, 밥그릇은 상에 놔두고 인사를 해야지. 무슨 인사를 밥그릇을 손에 쥐고 하냐?”
“아빠가 내가 인사하는 사이에 뺏어 먹을까봐 걱정이 돼서 그래!”
'앗, 녀석! 암만 그래도 그렇지. 내가 밥 한 숟갈 뺏어 먹을까봐 걱정이 돼서 밥그릇을 들고 인사를 한단 말인가?' 은빈이는 밥 한 끼만 굶어도 죽는 줄 압니다. 한번은 통통하게 나온 자기 사진을 보고는 이제 오늘 저녁부터 사흘 동안 굶겠다고 합니다. 자기도 적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엄마, 나 오늘 저녁부터 사흘 동안 밥을 안 먹고 굶을 거야! 그러니까 나보고 밥 먹으라고 그러지 마세요. 엄마 정말이니까 부탁해요.”
저녁 식사 때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청국장 찌개에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이 청국장 찌개를 무척 좋아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청국장 찌개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국장 찌개가 자주 상에 오르지요. 은빈이는 저만치 풀이 죽어 앉아있습니다. 약속은 지켜야겠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는 나고. 그러나 자기가 엄마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것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밥상을 치우고 아내와 아이들이 TV앞에 앉아 있습니다. 은빈이가 냉장고문을 자꾸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배가 고파 죽겠다고 합니다. 도무지 못 참겠던지 엄마 보고 밥을 달라고 합니다.
“야! 약속을 했으면 지킬 줄 알아야지!”
아내가 핀잔을 하며 밥을 퍼주자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밥 한 공기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고, 또 한 공기를 먹습니다. 엊그제 아내와 세 아이들이 서울 잠실 외갓집에 갔습니다. 어제 저녁 나 혼자 집에 남아 찬밥에 김치를 넣고 김치볶음 밥을 해먹었습니다. 방바닥에 엎드려 신문을 읽고 있는데 은빈이 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아빠가 보고 싶어서 미치겠다.”
“정말? 그렇게 아빠가 보고 싶어? 너 아빠 듣기 좋으라고 괜히 하는 말이지?”
“아니에요. 정말로 아빠가 보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아빠, 오늘 외할머니가 피자하고 햄버거 사주셨는데 내가 아빠 잡수실 것 따로 떼놓았어. 오빠들이 마저 먹겠다고 하는 걸 내가 목숨 걸고 지켰어. 내일 갖고 갈게.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오후 2시경 배 터에서 배를 탔다고 큰 아들 아딧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차를 몰고 배터로 향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배에서 내리고 은빈이가 나를 보고 좋아서 팔을 벌리고 달려옵니다. 은빈이가 나를 보자 첫마디가
“아빠, 피자랑 햄버거 빨리 먹고 싶지? 내가 오빠들한테 얻어터지면서 지킨 거야. 내가 아빠 준다고 챙겼는데 오빠들이 먹겠다고 나를 막 때리는 거야. 큰 오빠가 내 머리를 쥐어박는데 얼마나 아프던지 한 3분쯤은 울었을 거야.”
“야, 우리 은빈이가 독립투사처럼 목숨 걸고 지킨 햄버거랑 피자 빨리 먹고 싶다.”
은빈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장갑을 끼고 눈사람을 만든다고 밖엘 나갔습니다. 아내가 은빈이가 나 주려고 챙긴 거라면서 햄버거 하나와 피자 한 조각을 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내 두 녀석이 코를 벌름거리며 입맛을 다십니다. 내가 한입만 먹고 두 녀석에게 주었더니 입이 벌어집니다.
은빈이에게는 비밀입니다. 아이들이 아무 거나 잘 먹어서 좋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딧줄은 거의 내 키에 육박할 정도로 자랐습니다. 내 속옷을 입습니다. 큰 병치레 한번 안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습니다. 옛날 어느 광고 카피가 생각납니다.
“개구장이어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