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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독립자금'이라 일컬어지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모금운동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지난 17일 두 일본인이 광주를 찾았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한국 사회 내부에서 민족정기를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라면 이들의 '광주행'은 일본 정부을 상대로 한 과거청산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지원회)' 5명의 공동대표단 중 한 명인 다까하시 마꼬도(61)씨와 사무국 총무 꼬이데 유타까(62)씨. 이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할머니들의 지난한 싸움에 동행하고 있다.
마꼬도씨는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과목 강의하다 지난해 퇴직했다. 교단에서 강의를 하던 중 86년 '일제 당시 나고야에 정신근로대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 후 그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피해실태에 대한 연구·조사활동을 벌이면서 굴절된 역사를 치유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86년부터 시작된 피해 실태조사가 지원회 결성으로
그는 1944년 일본 나고야 미쯔비시중공업에서 일하던 중 지진으로 사망한 한국인 6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88년 위령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그는 위령비 건립하면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일본 이름'으로 새겨진 한 사망자의 '한국 이름'을 찾기 위해 12여년 동안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강제동원된 이들의 피해를 조사하고 화해하기 위한 활동이 지금의 소송 지원회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지원회는 지난 99년 3월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에서 일본 정부와 미쯔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소해 4년여 동안 계속되고 있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 지원회는 지난 98년 10월에 결성돼 현재 회원은 900여명에 이른다. 지원회에서는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해 무료 변료를 하고 있으며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방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특히 이 지원회는 미쯔비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을 소재로 한 '봉선화'라는 연극공연을 통해 일제가 자행한 죄악을 고발해 일본 사회에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또 미쯔비시사 사장과 재판부 그리고 일본 정부에 '피해배상과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엽서와 요청서 2만여장을 만들어 서명운동을 벌이며 여론을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유타까씨와 마꼬도씨는 지난해 11월 이금주(84) 태평양전쟁광주유족회 회장 등 피해자들의 증언 이후에 진척된 상황을 설명하고 의논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지난해 피해 증언으로 미쯔비시에 큰 영향"..."꼭 승리하자"
이들은 광주 한 식당에서 이금주 유족회장과 김혜옥(73) 할머니 등 6명의 소송 당사자들과 만나 결심 공판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꼬도씨와 유타까씨는 이 할머니들과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신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재판에서 꼭 승리하자"고 다짐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이들의 존재가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지만 할머니들이 500여장의 서명 엽서를 건네주자 마꼬도씨는 "이 엽서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바꾸고 미쯔비시의 생각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타까씨는 재판 상황에 대해 "애초 올 3월에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었는데 9월쯤에나 가능할 것 같다"면서 "작년 이금주 회장과 김혜옥씨 등의 증언으로 재판이 확연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그 동안 미쯔비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증언 이후에 자신들이 변론할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해서 재판이 연장됐다"면서 "100개의 변명 보다 하나의 진실이 더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성과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변호인단은 여러분들의 건강상태를 걱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이상 판결이 미뤄지면 안된다고 요청하고 있다"면서 "싸움하다가 실패 할 수도 있지만 승소할 때까지 열심히 하자. 우리들도 긴장된 가운데 3월에 있을 공동변론을 준비하고 있다"고 힘을 돋웠다.
이들에게서 기대할 만한 상황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과 "꼭 승리하자"는 다짐을 들은 6명의 피해 할머니들은 연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무되기도 했으며 "이렇게 힘을 보태주니 정말 고맙고 힘이 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금주 태평양전쟁광주유족회 회장은 "고이즈미가 연초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고 독도망언을 했다"면서 "아직도 일본은 과거 강제동원에 대해서 사과하기는커녕 전쟁 범법자들을 참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 또한 일제강제동원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으려 한다"면서 "나고야 지원회에서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있어 힘도 생기고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7일 광주를 방문한 유타까씨와 마꼬도씨는 18일 서울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과 간담회를 갖고 일본으로 떠났다.
이날 <오마이뉴스>는 다까하시 마꼬도씨, 코이데 유타까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답변 내용은 공동 답변으로 처리함)
- 한국 방문목적은.
"(마토도)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애초 3월에 결심공판이 예정됐는데 연기된 이유 등 재판 진행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왔다. 무엇보다 원고들과의 마음을 하나로 하기위해서 왔다. 서울에서는 학자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만나서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다."
- 지난해 증언이 이후 미쯔비시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는데. 어떤 반응인가.
"(유타카)강제 동원되고 징용된 원고들의 피해 실태와 해방 후 일본 정부가 정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을 하지 않아서 받은 피해 등을 원고들이 다 토해냈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재판장과 방청객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쯔비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동안 미쯔비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변론을 하기위해 공판 연기를 요청했다."
- 지원회는 어떻게 결성됐나.
"(마토도)98년 10월에 결성됐다. 소송은 99년 3월 1일 제기했다. 86년에 나고야에서 정신근로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시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는데 '일본의 피해만 있는 것'으로 알았다. (일본)교육은 원폭 등 일본이 받은 피해만 부각시켜왔다. 정신근로대를 알면서 '왜 이런 피해가 왔는지',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한 것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연구하는 도중에 정신대에 대해서 알게됐다.
88년에 희생자 위령비를 나고야에 건립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소송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있었는데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지 못했다. 95년 해방 50주기에 재판을 미루기에는 할머니들의 건강문제(나이)로 한을 못 풀기 때문에 재판을 소송을 제기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재판을 올바로 하는 것이 한일관계에 도움될 것으로 생각한다. 원고들이 잘못해서 어두운 과거를 보낸 것이 아니다. 99년에는 5명, 2000년 12월 6일에는 3명이 추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중 한 명이 2001년 2월에 사망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의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지원회 활동은 변론이외에 어떤 활동을 하나.
"(마토도)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다. 그래서 변론을 하고 재판 방청한다. '봉선화' 공연, 미쯔비시와 일본 정부에 보낼 '요청서 서명운동' 등 활동을 하고 있다. 미쯔비시에 대한 소송은 나가사끼, 히로시마, 나고야, 동경 등 각 지역에서도 진행되는데 네트워크를 형성해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2002년에 재판을 위해서 서명운동을 하면서 900여단체가 협력해 주었다."
- 원고들의 주요 요구사항과 쟁점은 무엇인가.
"재판이 진행된 후 현재까지 18번 공동변론을 했다. 원고들은 미쯔비시와 일본 정부에 공개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사죄는 한국 신문과 일본 신문에 사과문을 동시에 게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이에 대한 대가가 없었다는 것, 전후(해방 후) 원고들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 여기에 가정의 해체 같은 피해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미쯔비시는 '한국에 가서 기다리면 나머지 급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미쯔비시는 전쟁 전 미쯔비시와 지금의 미쯔비시는 다른 회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 또한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을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다."
-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
"변호인단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 시작한 증인 심문에서 의해서 미쯔비시와 일본 정부에 대해 많은 부분을 정식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은 시간이 정해져서는 안된다. 원고들의 피해는 그 때(일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피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기간을 정할 수 없다.
예를들면, 할머니들이 '엽서를 들고 주위사람에게 (서명을)받는데, 아는 사람들에게 가면 너 정신대냐고 말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피해다. 자기의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는 것도 피해다."
- 유족회에서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국적포기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정부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국민이 얼마나 자각하느냐, 국민이 힘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냉전시대에 얼렁뚱땅 맺은 한일협정 때문에 서로 회피하고 있다. 용기를 갖고 다시 모자란 것을 보충하면서 더 바람직한 협정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야스쿠니신사에는 (태평양)전쟁 최고 범법자들의 위배가 있는 곳인데, 그 곳을 참배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참배를 한다는 것은 '그 전쟁이 옳았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아무 의식없이 하는 행동이다. (일본에서)비난을 크게 받고 있다. 여론에는 보도가 잘 안되지만 그 이상으로 비난받고 있다. 고이즈미의 야쿠스니참배는 일본 국민을 다시 전쟁터로 내몰겠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 한일관계 개선에 주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적당히 맺어진 한일협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다시 제기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또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문화교류가 필요하다. 여기에 역사를 (일본)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일본은)모든 것이 미국 중심인데 미국이 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잡고 주체적인 입장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 통역을 맡아준 고려여행사 양금옥씨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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