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에서는 이들을 추방하기보다는 그들의 주거를 안정시키는 쪽을 택해 ‘준천’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들은 공사에 참여해 품삯을 받았고, 공사가 끝나자 천변 곳곳에 마련된 택지에서 살게 되었다. 또 천변에 새로 거주지를 마련한 사람들에게도 장사할 권리를 주어 천변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워낙 대공사라서 벼슬아치들과 하천 주변 주민의 의견을 묻기를 수십 차례, 졸속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이처럼 공을 들였기에 두 달이나 걸린 공사기간에도 주민과 말썽을 빚지 않고, 착착 진행될 수 있었다. 말썽을 빚기는커녕 자원봉사자만도 만 명이 넘는 순조로운 공사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생활관2>에서-
윗글은 요즈음 시행되는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공사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의 영조임금이 벌인 ‘청계천 준천공사’를 얘기한 것이다.
요즘 서울은 ‘청계천복원사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점상은 물론 문화재 전문가들과도 마찰이 심각하다.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노점상들은 투쟁하다가 쫓겨났고, 복원과정에서 속속 발굴되는 문화재들을 보고 제대로 복원하기를 요구하는 전문가들은 서울시와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 현 시장의 임기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려는 시청 쪽의 조급함이 빚어낸 결과다.
하지만 200여 년 전 영조 임금은 백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도왔으며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다. 최근 사계절출판사에서 펴낸 <한국생활사박물관> 제10권 <조선생활관2>를 보면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은 영조임금의 이런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배웠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 속에 자리한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모두 12권을 계획한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가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10권이 선을 보임으로써 완성하기까지 2권만 남았다.
역시 이번에도 ‘야외전시’, ‘조선실’, ‘특별전시실’, ‘가상체험실’, ‘특강실’, ‘국제실’ 등으로 구성해 박물관 모습으로 꾸미고 있다. 그러나 여기 박물관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절정에 이른 조선문화'다. 그 절정을 이 책에선 수원의 '화성'에서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성을 ‘전통시대 성곽 건축의 꽃’으로 본다. 즉 조선문화가 절정기에 이른 18세기, 조선의 사회 문화 역량을 총동원한 성곽 건축의 백미자 건설의 성공사례로 화성을 꼽고 있는 것이다.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책은 화성 건축과정을 상세한 그림으로 묘사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건축의 백미보다는 영조임금을 이은 정조임금의 또 다른 백성사랑을 본다. 그것은 화성 낙성(落成) 잔치 장면을 그린 <낙성연도(落成宴圖)>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화성 종합 건축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나와 있는데 임시로 설치된 무대에서는 북춤, ‘포구락’ 등 궁중무용이 펼쳐지고, 그 아래에서는 일반 주민이 구경하는 가운데 사자춤이 펼쳐지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위아래의 구분이 엄격한 조선사회에서 이렇게 임금과 백성이 같은 자리에서 즐기는 ‘여민락(與民樂)’은 무엇을 말할까? 또 정조임금이 자신의 행차 때 많은 백성들을 데려와 그들의 고충을 들으려 노력한 것을 <시흥환어행렬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의 임금은 창덕궁의 북쪽에 있는 춘당지라는 연못 주변의 논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라 일컫는 현대의 위정자들보다는 봉건시대인 조선의 임금들이 백성을 더 사랑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는 이 책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란다. 그것은 아직껏 국내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병풍 때문이다. 이 병풍은 프랑스인 루이마랭이 서울에 잠깐 머물렀을 때 구입한 8폭짜리 병풍으로 그가 죽은 뒤 1962년 파리 기메 박물관에 기증된 것이라 한다.
"기방 난투 끝에 손님 물갈이(기방풍정도:妓房風情圖)”, “눈 내린 달밤, 숯불구이에 술 한 잔 어떠하리(설중난로도:雪中煖爐圖)” 등의 이름이 붙은 이 병풍은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18세기판 인간 극장이라 할 수 있는 이 그림은 조선후기 한양이나 향촌을 무대로 꾸미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양반, 기생, 포교, 여러 장인들, 양반집 부녀자 그밖에 다수다.
여기에 우리는 또 하나의 명화세계를 탐닉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정선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태극으로 그린 기막힌 그림 <금강전도>와 극사실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린 이를 알 수 없는 <이채초상>이다. 조선후기의 문화가 어디까지에 이르렀는지 이 그림들을 통해서도 우린 짐작할 수 있다.
이 책 편찬의 총책임자인 강응천 주간과 몇마디 나누어보았다.
- ‘절정에 이른 조선문화’에는 한복을 비롯해서 차문화, 음식문화, 판소리, 전통의학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빠진 것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문화 중에는 왜곡된 것들도 적지 않아서 이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아쉬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한복특별전>을 9권에 넣으려다 빠졌는데 그 부분이 더욱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인 책의 방향에 따라 그런 것들을 제대로 녹아내야 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다만 전통문화 중 왜곡된 부분들은 다음 제11권에서 다뤄질 것입니다. 근대로 이어지면서 잘못된 것들을 지적하려고 하는데 기대해 주십시오.”
- 이 책을 펴내면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종류의 책은 각종 문화재의 보고인 박물관의 협조가 아주 중요합니다. 많은 박물관들의 협조가 이 책이 나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일부 박물관은 자료제공에 경직성을 보이고, 자료사용료를 좀 부담스럽게 요구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많은 이가 볼 수 없다면 그 의미는 줄 것이다. 그런 문화유산이 있음을 널리 알리고, 그래서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주어야 박물관의 존재의미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강 주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저희 책은 가장 훌륭한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을 징검다리로 해서 더 좋은 책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출판사는 그저 남의 책을 베끼거나 모방하고, 약간 수정해 아류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힘든 과정에 찬물을 끼얹는 아류 책은 이제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시리즈의 다음 계획은 7월쯤 마지막 11권, 12권을 같이 펴낼 계획이라고 하는데 11권은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라는 가제로 작업 중에 있으며 12권은 해방 이후 현대편으로 북한 문화도 아우를 것이라고 한다. 남한문화 만으로는 절름발이가 될 것이며 통일을 대비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담배이야기를 듣거나 “산통 깨지 맙시다, 경을 친 놈, 깍쟁이, 땅꾼”이란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임금의 화장실을 “매우틀”이라고 한 연유에 가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또 조선후기를 왜 '관능미의 시대'라 하는지도 아울러 더듬어보면 좋을 듯하다.
갈수록 <한국생활사박물관>은 완성도를 더해간다는 생각이 든다. 100여 쪽 정도의 크지 않은 책에 이렇게 조선 후기의 문화를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움이다. 나는 이 책이 각급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이길 기대해 본다. 살아있는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이 시대의 위정자들과 정치인들은 봉건 왕조시대인 조선시대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에게, 집권 1돌을 맞은 참여정부에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