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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포교

"도대체 장성일인가 하는 포교는 어딜 갔단 말이냐! 사헌부에서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어찌할 뻔 했느냐! 이래서야 어디 내가 마음놓고 자리를 비울 수나 있겠느냐!"

우포도대장 박기풍은 서슬 퍼렇게 세 명의 종사관들을 닦달하며 펄펄 뛰었다. 종사관 중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사실대로 아뢰옵자면 도둑을 잡겠다고 나선 후 소식이 없사옵니다."

"도둑을 잡으러 어디까지 갔기에?"

"…그게… 강원도로 갔사옵니다."

"뭐라?"

박기풍은 크게 소리치며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규정에 따르면 한양의 포교가 도둑을 잡는다고 사대문 밖 백리를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걸 알면서도 눈을 감아줬단 말이냐? 다시 말하지만 사헌부에서 이 사실을 알면 주상전하에게 고하게 되느니라. 그러면 어찌 되는 줄 아느냐?"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옵니다."

박기풍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종사관들에게 명했다.

"그 포교는 자리를 박탈함은 물론 돌아오면 중벌을 내릴 것이니라. 아무 말 없이 포도청을 이탈했기 때문이다. 내 말뜻을 알겠느냐?"

"예."

"포도청의 업무는 한시도 사람이 비어서는 안 되는 것인즉, 군관 직을 가진 자들 중에 잽싸고 눈치 빠른 자를 골라 포교로 임명하라."

종사관들은 박기풍 앞에서 물러 나와 한숨을 쉬었다.

"눈치 빠른 자들이야 여럿 있지 않나.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포교자리 하나 잡으려 눈에 핏발 세우고 알랑방귀 뀌는 자들이 있던데."

세 종사관 중 가장 연배와 경륜이 많은 심지일이 걱정 말고 간단히 생각하라는 듯 웃었다.

"하지만 장성일이의 통부(通符 : 단단한 나무에 몸체는 둥글며 한 쪽 면에는 차례가, 또 한 면에는 '통부'라고 쓰여있다. 포도대장의 수결,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자필사인이라 할 수 있는 자형이 새겨져 있으며 범인을 찾는 증표로 이것을 포교들은 반드시 이를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다)도 회수하지 못했는데…."

미끈한 생김새로 여러 여인을 울렸다는 박교선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역시 옆에서 종사관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상원이 어찌해야겠냐는 얼굴로 심지일을 바라보았다.

"그야 간단하지 않은가. 이럴 때를 대비해 내가 챙겨놓은 통부가 있으니 그걸 사용하면 될 것이네 수결 정도야 포도대장 나리께서 충분히 이해하시고 처리하실 것이니 신경 쓸 거 없네. 하여간 사람은 내가 알아서 구할 테니 염려들 놓으시게나."

심지일이 자리를 뜨자 박교선이 냉큼 심지일의 흉을 보았다.

"하여간 저 자가 종사관 욕은 다 보이는구만! 심지일 저 치가 저 나이 먹도록 왜 한사코 종사관직에 머무르려 하는지 아는가? 우포도청에 앉아 있으면 뜯어먹을 건수가 많다 이거야. 저 놈은 여자도 관심 없어. 오직 돈뿐이지."

한상원으로서는 아직까지 우포도청의 모든 일을 배우는 중이라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박교선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 놈은 분명 뒷구멍으로 돈을 받아먹고 포교를 받아들일 걸세. 하지만 자네와 내가 뜻만 맞추면 그런 꼬락서니는 안보면서 그 인간을 골탕 먹일 수 있다 이 말이야.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예?"

한상원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멀뚱히 있었다.

"아 이 사람아! 포교를 뽑을 때 종사관 세 명이 배석해서 포도대장에게 보고하니 자네와 내가 뜻만 맞추면 된다 이 말이야! 심지일 그 자가 추천하는 이는 면전에서는 알겠다고만 하고 실제로는 다른 이를 뽑아 올리자 이걸세. 그렇게 되면 심지일 그 자의 얼굴이 어떻게 될까?"

한상원으로는 이런 일에 휩싸이기 싫었지만 노골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교선은 자기 말이 재미있다는 듯 연실 웃으며 포도청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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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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