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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위길은 아침 일찍 시전에다 가져다 팔 놋그릇을 가지러 여칠량의 집에 들렀다. 놋그릇을 두드려 만드는 늙은 장인 여칠량은 다리가 불편해 몇 년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래도 그가 만드는 놋그릇은 매우 질이 좋았으며 백위길은 다리가 불편해 발 품을 팔 수 없는 여칠량 대신 재료를 구해주고 시전을 통해 물건도 팔아주며 그 이문을 남기며 생활하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가 많군. 이거 자네 덕분에 내가 쉴 틈도 없네 그려."

여칠량은 백위길을 반기며 놋그릇들을 챙겨주었다. 묵직한 놋그릇을 짊어지며 백위길은 싱긋이 웃었다.

"저야말로 아저씨 덕분에 매번 한밑천 잡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거 시전 무뢰배들이나 포교들 등쌀 조심하고 잘 다녀오게나."

백위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서 숭례문을 지나 들어가 자신이 시전 유기상을 찾아 물건을 쌓아 놓기 시작했다. 그 때 웬 포교 하나가 군졸들과 함께 백위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거 여기는 개시부터 재수 옴 붙었구먼.'

평소 돈을 뜯어 가는 모습을 자주 본 터라 백위길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포교의 태도를 살폈지만 포교는 백위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그 자리 뒤에 방을 붙이기 시작했다.

"우포도청에서 새로 포교를 뽑는다...... 허! 내 여기서 새로 포교를 뽑겠다고 방을 붙이는 경우는 처음 보겠구먼. 가솔군관(비상시에만 군관으로 활동하는 군역)중에서도 뽑겠다니. 이런 건 처음일세. 이보게 백씨! 자네도 군관포만 내는 가솔군관이지 않나?"

유기상인의 말에 백위길은 씩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포교 따위를 해서 뭘 하겠습니까?"

유기상인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포교는 자네같이 번듯한 사람이 해야지! 별 무뢰배 같은 놈들이 포교랍시고 깝죽대니 꼴불견 아닌가? 세월이 남아돌면 난전이나 다스려야 할 터인데 파먹을 것이 많은 시전에 와서 아예 죽치고 사는 놈도 있으니 원...... 농이 아니고 진심이니 한번 포교를 해보게나! 내가 알기로 이런 기회는 잘 없네."

"그런 일은 떠 맡겨도 싫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지요."

백위길은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음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하긴 백씨가 포교노릇을 하기에는 너무 뻣뻣하지."

옆에서 다른 상인이 한마디 거들자 유기상인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위길이 정신없이 시전을 돌며 일을 보는 동안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떴다. 시장기를 느낀 백위길은 국밥으로 요기나 할 겸 피맛골로 발걸음을 돌렸다.

"휘! 물렀거라! 김 대감님 행차시니라! 물렀거라!"

고위관직에 있는 대감들의 행차는 시전을 가로지르는 큰 길가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양민들은 뒷길인 피맛골을 애용하였고 그 주위로 국밥집과 술집이 번성하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피맛골로 들어서기 전에 대감의 행차와 마주쳤으니 백위길로서는 시장기로 인해 귀찮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며 허리를 굽힌 가운데 백위길도 머리를 조아리며 행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행차는 느릿느릿 다가왔고 잠시 실눈을 치켜 뜨며 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백위길은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한 사내가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사람들과 툭툭 부딪치고 있었다.

'저 놈! 틀림없이 소매치기구나! 행차 중임을 노려 저 짓을 하는 것이렸다!'

행차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소매치기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눈앞에서 도둑을 놓치겠다 싶은 백위길은 재빨리 달려 나가 소매치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내 이놈! 감히 어디서 도둑질이냐!"

도둑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순식간에 주위가 어수선해지며 사람들이 둘을 에워쌌다. 심지어는 앞서가던 대감의 행차마저도 멈춰서고 말았다. 그럼에도 소매치기는 백위길에게 멱살을 잡힌 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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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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