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월요일인 뱅크홀리데이가 되면 런던의 노팅힐에는 상상초월의 일들이 일어난다. 평소 하얀 건물들과 잘 정돈된 거리로 깔끔한 인상을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음식을 만들어 내는 간이 천막들과 이를 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쉴새없이 맥주를 마셔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로 거리가 빼곡히 채워진다.
여기에 마시고 버린 맥주 캔과 음식을 담았던 1회용 접시들이 산처럼 쌓여,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뿐인가? 거리 곳곳에서는 DJ 들이 음악을 틀어주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군중들에 밀려 지나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스텝을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이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아마추어 공연자들의 즉석 묘기는 좁은 공간을 비집고 자리를 잡는다. 이 기간동안 노팅힐역에서 포토벨로 마켓을 향하는 전 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인도로 사용되지만, 참여한 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내가 보았던 지난 39회 노팅힐 카니발의 주제는 ‘peace on the streets’였다. 유럽 최대의 거리 축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6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예년 평균 100만으로 추정하나 이번에는 다소 참여인원이 줄었다 한다) 하지만 내 느낌엔 최고의 난장이라는 악명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민망할 지경의 희한한 복장을 한 사람, 베란다에 매달려 소리를 지르는 젊은이 등등 아랑곳없이 땅이 울릴 정도의 쿵쿵대는 음악소리에 취해 흥청망청 마시고 떠든다. 평소 엄격하고 보수적이던 영국인들이 이곳 노팅힐에서 그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해방감을 맛보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일까?
행사 막바지 저녁, 축제 내내 이어지던 8㎞에 이르는 가장행렬의 끝에 사람들이 더해졌다. 서로서로 어깨를 잡고 몸을 흔들며 긴 행렬을 만든다. 마치,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듯 거리를 꽉 채운 사람의 물결이 장단에 맞춰 출렁인다. 이 순간만큼은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빈부도 모두 사라지고 허락되어진 방종을 맘껏 누리는 "자유인"으로서의 인간만이 존재했다.
원래 노동자와 이주민들의 결속을 위한 행사로 ‘해방, 저항, 승리’를 내세웠다는데, 다른 건 몰라도 결속과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물론 보거나 즐길 거리가 굉장한 행사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이 안에서만 허락되어지는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확인하여 발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 순간의 노팅힐을 ‘런던의 해방구’라 부르고 싶었다.
다시 우리의 광화문으로 돌아와 보자! 몇 년에 한번 치르는 선거 참여로 민주주의 실천을 대신하지만, 그 투표로 뽑힌 대리인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보다 못한 국민들이 직접적 의사표명을 목말라하며 참여한 촛불행사는 엄청난 원동력의 축제가 되었다.
자유와 열정을 바탕으로 한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대동단결은 축제의 기본요소라 할 수 있는 자유와 즐거움, 불만 해소를 위한 창구의 역할은 물론 흩어진 사회결속까지 이루었다.
언제 이처럼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만들어 보았는가? 물론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위의 노팅힐 카니발만 하더라도 지역의 교통 혼잡과 젊은이들의 과도함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필요성이 크면 존재의 가치는 있다.
그래서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매 해마다 일년에 한 번씩 촛불행사를 하는 것은 어떨는지? 한 해의 이슈를 갖고 국민적 대 토론회를 하는 겁니다. 물론 형식은 지금처럼 자발적 참여를 기본으로 하며 의사표현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그 내용이 꼭 정치에 국한 될 필요도 없습니다.
자유와 평화와 나눔의 정신에 위배만 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족간에, 이웃간에 단절된 세상에서 일년에 한번쯤 온 국민이 얼굴 맞대고 툭 터놓고 소통하는 기회가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막힌 곳이 있으면 뚫어야 합니다. 복잡하고 기막힌 세상 ‘서울의 해방구’ 광화문에서 속 시원히 뚫어봅시다. 진정한 축제의 싹은 그 곳에서 틔어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