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보도과정에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친노·반노’이다. 그러나 정국구도는 ‘친노’ 대 ‘반노’의 구도가 아니다. ‘탄핵반대’ 대 ‘탄핵지지’의 구도이다. ‘탄핵 지지’가 ‘반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탄핵반대’에는 노무현 지지자는 물론 노무현 반대자들도 섞여 있다. 그런데도 탄핵반대를 한사코 ‘친노’로 모는 것은 ‘반노’의 결집을 꾀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집회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다음날부터 서울의 광화문을 비롯해서 3월 27일까지 온 나라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린 촛불집회는 탄핵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 같은 촛불집회의 의미를 짚어보지는 않고 촛불집회가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촛불집회 성격 제대로 알아챈 신문, <경향신문>과 <한겨레>
유권자의 입장에서 촛불집회의 성격을 제대로 알아챈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이다. 경향신문은 촛불집회를 ‘민주주의 축제’(3월 27일자 사설 ‘촛불집회 영장기각 당연하다’)로 규정하면서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민주의 염원을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으로 구현해 나가는 데 슬기”를 모으자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촛불이 ‘탄핵무효’와 ‘민주수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3월 22일자 사설 ‘민주의 힘 보여준 촛불 축제’). “촛불 집회가 형식과 내용에서 두루 한국의 민주주의 역량을...입증해주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간부 4명의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한겨레는 “불필요한 과잉대응”(3월 27일자 사설 ‘촛불집회, 강경대응만이 능사인가’)이라고 비판한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평화로운 의사표시를 무작정 막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 문제는 총선과는 별개 사안”이므로 정부는 “촛불집회가 선거운동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경찰 주장에 근거해 촛불집회 불법으로 본 '조선, 동아'
촛불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신문들이 '촛불'을 불법이라 단정하는 근거는 경찰의 입장이다. 경찰은 촛불집회가 해가 진 뒤에 열리므로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경찰이 야간집회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 집회신고를 접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야간집회 자체가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를 ‘불법상태’로 규정한 <동아일보>(3월 26일자 사설 ‘호루라기만 부는 정부’)는 촛불집회라는 용어조차 피하고 ‘대통령 탄핵 및 총선 관련 집회’라고 부른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서 주위를 밝힌다. 촛불은 부패와 반유권자적 정치로 일관하는 낡은 정치를 깨끗한 새정치로 바꾸자는 염원을 상징한다.
이 같은 촛불의 의미를 자꾸 축소시키려는 동아일보는 촛불집회의 “위법 행위에 대해 정부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이중성을 보인 탓에 법의 권위가 더욱 무너지고 불법이 조장되고 있다"면서 정부의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탄핵정국에서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 사건을 주로 다루었다.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불법 강행, 탈법 방치의 무법사회”이며 “촛불 집회의 정치적 성격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3월 22일자 사설 ‘탄핵 찬반은 선거법을 비켜가는가’)이라고 주장할 뿐 촛불집회 성격 자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경찰과 선관위가 촛불시위를 법적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촛불집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손성진 사회교육부 차장은 3월 24일자 '데스크 시각-촛불집회와 강장관’에서 촛불집회의 성격을 “봉오리 속에 숨어 있던 민중의 힘이 위기의 찰나를 맞아 개화한 것"으로 규정한다.
촛불집회를 통해 “선동과 파괴가 아니라 비폭력 평화적인 수단으로도 의사를 전달하고 역사를 돌릴 수 있음을 국민 스스로 깨우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다. 이어서 그는 ‘민심은 천심’‘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면서 “정치인들은 정쟁으로 얼룩진 의사당을 박차고 광화문으로 나와 민심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야간집회 자체가 금지된 게 아니다"
이런 시각은 외부 기고자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김의영 경희대 교수는 3월 22일자 시론 ‘촛불집회, 일탈이냐 일상이냐’에서 촛불시위가 “제도권 정치를 우회해 이뤄지는 거리의 정치로서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인 것이 아니다"며 “취약한 대의정치와 왜곡된 정당정치로 대표되는 현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참여민주주의의 정당한 개입”이라고 본다.
따라서 “촛불집회를 특정 정치집단 및 일부 급진세력에 의해 조직된 비민주적 여론몰이로 폄훼하는 보수세력의 일부 견해는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대의민주주의와의 충돌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 민주주의의 절차와 규범을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또 다른 외부 기고자는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준다.
유한태 숙명여대 교수는 3월 26일자 칼럼 '촛불만 들면 모두 문화행사인가’에서 촛불시위가 ‘명백한 불법’이며 ‘골칫거리’라고 주장한다. “광화문 대로는 우리 모두의 것이지 특정 시민단체의 앞마당이 될 수 없다”고 불특정 다수를 끌어들여 촛불집회의 참가자들을 특정시민단체 구성원들로 규정하는 것은 촛불집회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 교수의 글은 논리적 비약을 거듭한다. “시위 내용이 친노, 반노의 수위를 넘어 민주냐 반민주냐로 확대하더니 급기야 '죽기 살기'식의 살벌하고 불길한 방향으로 번져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촛불집회 현장에 직접 가보았으면 없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