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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월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매도했다며 조순형 민주당 대표와 당직자 70여명이 15일 청와대 앞에서 발언 취소와 사과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매도했다며 조순형 민주당 대표와 당직자 70여명이 15일 청와대 앞에서 발언 취소와 사과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순형 대표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11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한 패널리스트가 "내년 총선에서 비호남권의 필패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열린우리당과 합당, 정책연합, 연합공천 등의 가능성과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지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놀랍게도 민주당-열린우리당 '공동 심판론'과 '공멸론'으로 답변했다. 현실 정치인의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인 원칙론이다.

"최근에 연합공천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칙적으로 반대입니다. 열린우리당하고 연합공천을 한다면 우리 국민들께서 당신들 연합공천을 하려면 왜 분당했는가, 그렇게 물으면 저는 정말 대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 경우에 공멸의 위기라고 질문자께서 말씀하셨지만 사실입니다. 공멸의 위기, 공멸해야 됩니다. 만약 우리 국민들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 다 같이 공멸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살아남는 사람들끼리 다시 재통합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가 선의의 경쟁을 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닌가 생각하고, 이것까지 말씀드리면 제 답변이 좀 길어집니다만, 어쨌든 우리 헌정이 이제까지 양당 구도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중간중간 3당체제가 되고 다당체제가 있었습니다만 거의 다 양당 체제로 굳어갑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께서 양당구도로 총선에서 만들어주시지 않을까 저는 굳게 믿고, 그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저희 당이 양당 구도를 형성하도록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 뒤늦은 고백의 진짜 의미

그런 점에서 조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한 수 아래'였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자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민주당이 분당을 놓고 진통을 겪을 때 대통령이 배후에서 작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대통령의 진짜 생각은 뭐였나?"라는 질문을 받고 "민주당 재창당이 내 희망이었다"고 뒤늦게 '본심'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민주당 재창당이 내 희망이었다. 즉 민주당의 구주류 세력이 주도하지 않고 새로운 세력이 주도하는 정당을 원했다.… 추미애, 조순형 의원도 민주당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함께 선언하지 않았나. 그게 나중에 안 되니까 결국 저렇게 (열린우리당 창당 같은) 위험한 결단을 한 것 아닌가.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결단을 하더니 잘하더라. 대통령이 별 도움이 안된 게 미안할 뿐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대통령이 인기가 높았더라면 분당이 아닌 다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대통령이 강력하게 개입해 구주류에 메시지를 보냈더라면, 분당하지 않고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볼 순 있다. 그러나 내가 국민들 앞에 약속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요컨대 노 대통령 자신의 본심은 분당이 아니라 재창당이었는데 여러 정치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에는 더러, 즉 대선 때 자신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뒤흔든 '후단협'과는 달리 자신을 지원했던 조순형·추미애 의원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도 실려 있는 듯하다. 국민에게 약속한 '당정분리 원칙' 때문에 "대통령이 강력하게 개입해 구주류에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는 뒤늦은 고백이다.

그러나 나는 노 대통령의 뒤늦은 고백, 그 자체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런 고백은 자신을 지원했던 정치세력과 지지자들에게 등을 돌린 것에 대한 '마음 한 구석의 빚' 때문에 나온 것이지, 실제로 노 대통령이 머리속에 분당 및 신당 창당을 그리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지난 대선 직후부터 시작된 '신장개업론 대 신당창당론'과 '통합신당론 대 개혁신당론'까지 민주당의 신당 창당 논의는 지리멸렬한 느낌을 줄 만큼 8개월 이상을 끌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일절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강준만 교수, 노 대통령 초청 청와대 만찬에서 분당 의지 처음 인지한 듯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진작부터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지난해 3월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의 비공식 일정으로 마련된 대선 '일등공신' 초청 만찬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청와대의 노대통령 측근은 노 대통령 취임 후 외부인 초청 만찬으로 '뜻깊은 행사' 하나를 기획했다. 정치인 노무현의 흔들리지 않는 열혈 지지세력인 '노사모'와 '노풍'의 논리적 기반이 된 책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2001년 4월 발간)을 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를 청와대로 초청해 노 대통령이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강준만 교수 말고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다른 인사들도 참석했다. 대통령의 비공식 일정인 만큼 이외에 비서실 공식 라인에서는 일절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찬의 화제는 노 대통령의 의례적인 '당선사례'에 이어 곧바로 정치개혁 쪽으로 흘러갔다. 강준만 교수는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측의 민주당 분당 의지를 그때 처음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분당은 성공 가능성이 없고, 성공한다더라도 정의롭지 못하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참석자 중에서 분당을 반대한 사람은 강 교수가 유일했다.

그러나 강 교수는 한 번도 노 대통령의 이런 '내심'을 가지고 문제삼지는 않았다. 강 교수는 그 뒤에 신당 창당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서도 <노무현 죽이기>(2003년 7월)와 <노무현 살리기>(2003년 8월)를 잇달아 발행해 조·중·동과 수구 정당을 위시해 극우에서 진보까지 '범국민적 취미생활이 돼버린 듯한 노무현 죽이기' 행태 속에 담긴 위선과 기만을 폭로하면서 '노무현 살리기'에 나섰다.

물론 거기에는 노 대통령에 대한 '주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 교수는 특히 신당문제에 대해서 이른바 구주류 인사들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인간'(인적 청산) 중심이 아닌 정치개혁이라는 '의제' 중심의 정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무렵 노 대통령의 정치 사부(師父)인 김원기 의원은 "민주당 분당(탈당) 형식으로 신당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정동영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본심이었는지 아니면 여론 떠보기였는지 몰라도 두 사람의 발언은 얼마 안가 '없던 일'로 돼 버렸다.

강준만은 <노무현은 배신자인가>에서 개혁 비용보다 큰 분열 비용을 걱정

ⓒ 중앙 joins
강 교수가 분당을 반대한 것은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윈-윈게임이 아니라 제로섬게임인 현실정치에서 분당으로 인한 '공멸'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교수는 비로소 <노무현은 배신자인가>(2003년 12월)라는 자신의 책에서 비판적 지지자의 입장에서 개혁의 비용보다 큰 분열의 비용을 걱정한 것이다.

"그들은 민주당을 지키면서, 즉 분열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내부에서 개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불가능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내부 개혁의 비용은 귀신같이 꿰뚫어 보면서도 그것보다 훨씬 큰 분열의 비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분열을 하면 자기들이 패권을 잡기 때문에 그 비용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우려는 비단 강준만 교수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지난 3월 19일 한국정치학회가 '17대 총선과 정치개혁-한국정치의 대전환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춘계 학술회의에서도 발제를 맡은 강명세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탄핵 사태는 지역주의 정당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오래 전부터 잠복해 있던 것"이라며 "호남을 놓고 경쟁하게 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극한 대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호남 민심 잡기 경쟁'이 탄핵을 불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당 창당은 성공했다. 극단적 성공 덕분에 분열 비용도 최소화되었다. 아니 성공 정도가 아니라 창당 때의 목표인 개헌 저지선(100석)에서 재적 과반수가 넘는 200석에 육박하는 '대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대박'은 야당의 탄핵 강행이라는 결정적 패착 때문에 '노회찬 어록'대로 '지갑을 주운 것'이지 열린우리당의 부단한 개혁과 노력의 결실은 아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기사회생할 길은 없는가. 길이 없다. 지금은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조 대표는 불과 네 달 전만 해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다 같이 공멸해야 된다"면서 "그래 가지고 살아남는 사람들끼리 다시 재통합을 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이제 민주당에 남은 것은 어쩌면 '자멸'의 길밖에 없다.

DJ 아니라 'DJ 할아버지'가 나선다고 해도 안될 일

사실 탄핵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분당을 아쉬워하고 수도권에서의 '공멸'을 걱정하면서도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제2당이 될 열린우리당과 제3당이 될 민주당이 서로 협력하거나 합당의 길을 가기를 바랐다. 비록 분당을 했지만 17대 국회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컸던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수구세력과 맞설 노 대통령에게 일단 힘을 실어주는 것보다 우선하는 개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탄핵 강행으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앞으로 협력하려고 해도 협력할 원내의 인적 자산(교섭단체)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탄핵 이전까지만 해도 수도권에서 공멸할지도 모를 민주당-열리우리당의 호남민심을 볼모로 한 골육상쟁에서 전국 단위의 선거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변수는 이른바 '김심', 즉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속내였다. 그래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서로 DJ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면서 김홍일 의원의 민주당 탈당과 복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미 국내정치 불개입 원칙을 천명한 DJ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3월 30일 선대위 출범식을 분단의 한과 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임진각에서 가진 것도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정통야당임을 내세워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의 민심을 돌리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국면은, DJ가 나설 리도 없지만, DJ 아니라 'DJ 할아버지'가 나선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니다.

이성적 판단과 토론이 배제된 채 탄핵이 총선에서 논의되어야 할 다양한 정책 이슈에 대한 모든 담론을 압도하고 있는 지금, 16대 국회에서의 모든 의정활동과 심지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기준마저도 사장된 채 '탄핵 표결에 찬성한 193명은 무조건 국회에 발을 못붙이도록 해야 한다'는 선전선동과 '탄핵 찬성=악, 반대=선'이라는 선악의 이분법에 갇혀 있는 지금, 민주당은 장렬하게 죽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다시 사는 길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다시 사는 길

흔히 '민심은 천심'이라고 말하지만 여론조사는 천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의 차이를 확인하는 장치일 뿐이다. 여론조사 결과 70%가 탄핵을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탄핵에 찬성하는 나머지 사람이 악의 편에 선 것은 아니듯이,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고 야당이 참패하더라도,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되더라도,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이 악이나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탄핵 정국을 87년 6월항쟁의 미완성을 완성한다는 측면에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내세운다. 그러나 제도로서의 민주화가 이미 이행기에 접어든 지금 민주 대 반민주,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합법을 가장해 다수의 힘으로 탄핵을 밀어붙인 것처럼 다수가 곧 진리가 되어 소수를 억압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낡은 정치(질서) 대 새정치(질서)' 구도가 더 설득력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민주당=낡은 정치, 열린우리당=새정치'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아니다. 새정치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러나 검찰권의 독립과 불법 정치자금 관행의 개선 등으로 새정치의 물적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처럼 부도덕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에서 패한 것이다. 증오와 배신의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민주당은 그 물적 토대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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