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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김종필씨의 '자유민주연합'에 의한 이른바 '신지역감정' 바람이 충청도 지방을 휩쓸던 시절, 나는 황당한 비감 속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의 이 몰이성적인 충청도 지역감정 바람은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특정 정파와 거기에 편승 기생한 정치인들은 망국적인 지역감정 조장으로 충청도인들을 농락한 죄값을 받게 될 것이며, 당대에서는 용케 살아남더라도 기어코 역사의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예언을 논설주간으로 봉사했던 서산·태안 지역신문 <새너울>의 지면에 '사설'과 기명 칼럼으로 적시하기도 했다.

자민련의 출현은 한마디로 '돌출'이었다. 아울러 충청도의 지역감정 역시 돌발적인 현상이었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 사이에서 '파생'을 한 것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김종필씨가 김영삼씨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한 사정에다가 당시 신한국당의 실력자 김윤환씨의 '핫바지론'이 불에 기름을 부은 식으로 묘하게 작용을 한 탓이었다.

자민련의 태동에는 진정한 정치철학이나 이념이 없었다.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발판삼아 정치 생명을 유지하려는 노회한 정객의 정략과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해 타산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한 시대의 산물이기는 하되 절대 당위는 아니었다. 역사 발전의 도정에서 한가지 경험적 가치로 존재할 수는 있을지언정 명예로움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망국적 지역주의에 기반한 자민련의 명줄이 길면 길수록 충청도의 명예도 더욱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고, 10년 안에 충청도인 다수가 지역주의의 미망을 깨닫는 반성적 성찰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역에서나마 적극적으로 그런 발언을 처음 한 때는 1995년이었다. 그 당시는 내 쪽이 세상을 모르는 부류였고 뚱딴지같은 위인이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고, 지역신문들과 지역잡지에 쓴 글들 때문에 몹시 전화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충청도의 지역감정이, 더불어 자민련의 위세가 10년을 넘긴다면 내 두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내 예언은 1995년부터 시작해서 채 10년이 안된 시점인 2004년 오늘 거의 적중되고 있다. 아니, 적중되었다. 나는 그것을 오늘 의심 없이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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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나는 우리나라 지역주의의 성격을 진단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경상도는 차별적 또는 패권적 지역감정이고, 전라도는 상대적 또는 반발적 지역감정이며, 충청도는 김종필이라는 한 정치인의 정치판 사정에서 연유한 파생적 지역감정이다."

시대적 당위성과 필연성이 가장 약한 파생적 지역감정이기 때문에 시대 상황의 한 고비만 넘기면 충청도인들은 쉽게 반성적 성찰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논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충청도 다음에는, 또는 충청도와 동시에 전라도가 지역감정을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 나름대로 호남 지역감정의 성격을 파악한 것으로부터 연유하는 논법이고 예언이었다.

전라도인들은 충청도인들의 도움에 힘입어 김대중이라는 수난과 지역 열세의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꿈을 이루었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반발적인 지역감정이었으므로 그것을 계속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반발적인 지역감정이란 애초부터 열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계속 고수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역감정의 극복을 염원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주의가 똑같이 극복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것이 시대적 당위임을 깨달았다. 우선 자신들부터 앞장서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들은 호남인이 아닌, 더구나 영남 출신인 노무현을 선택했다. 부산 출신인 노무현이 광주에서부터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승기를 잡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며, 참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은 호남을 절대적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당이었다. 민주당을 굳이 '호남당'이라고 일컬으며 한사코 그런 방향으로만 몰아가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현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영남 출신임에도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한 지역당의 굴레를 벗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몰표 현상 자체를 호남 지역감정의 결과로 파악하는 사람들, 영남 출신인 그가 호남 사람들에게 붙어서 '호남당'을 정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 자체를 고깝게 여기는 영남 사람들도 많은 상황에서는 현재의 지역구도를 깨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민주당의 분당 상황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많은 의구심을 가졌다. 민주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국정당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았다. 왜 굳이 또 하나의 적을 만들고, 거대 야당의 힘을 곱으로 키워주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곧 지역구도를 깨는 일이 우리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민주당을 버리는 것이 기본이고 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달에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 나는 호남인들의 선택을 흥미로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남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당을 선택한 것에서부터 배신감마저 지닌 채 그를 더욱 증오의 눈으로 보는 일부 영남인들과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인들에게 큰 배신자였다.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은혜를 야박하게 저버린 의리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호남인들은 또 한번 큰 슬기를 발휘했다. 먼저 정치지형상의 지역구도를 깨는 일이 시급함을 그들은 알았다. 우선 지역구도를 깸으로서 영·호남의 지역주의를 함께 극복해 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생각했다. 민족의 화합과 바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감정 극복이 필수적이고,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지역구도를 깨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명제라는 사실을 그들은 깊이 인식한 것이었다.

나는 이미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씨가 당선된 직후부터 호남인들의 높은 향후 정치의식의 조짐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지 않아 전라도인들도 충청도인 다음으로, 또는 충청도인과 함께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역사적인 계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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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지역감정은 차별적 패권적 성격이 강하다. 나는 일찍이 경상도 지역감정의 성격을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그리고 우리나라가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상도사람들이 먼저 반성을 해야 한다는 논법을 폄으로써(그것을 웹상에서 분명하게 설파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았다. 무수한 비난들 속에서는 "삼족을 멸할 놈"이라는 무시무시한 욕설도 있었다.

또 나는 일찍부터 경상도의 지역주의가 가장 오래 갈 것이라고 했다. 경상도의 지역주의가 맨 먼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상도의 차별적이고 패권적인 지역주의는 그대로 기득권과 결부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박정희에 의해 조장되고 고착화된 경상도의 지역주의는 어느 지역보다도 '박정희 향수'라는 것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장 오래 갈 것이라는 논법이었다.

아버지 박정희를 그리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눈물을 보면서, 그리고 그의 눈물이 '박정희 향수'를 고조시키는 현상을 보면서 과거 18년 동안 박정희로부터 무수히 핍박받고 고통받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떠올리며 가슴 저려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는 박정희의 죄악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지역주의를 유발시키고 조장한 죄라고 생각한다.

경상도의 지역주의는 시초적인 것이고 차별적이고 패권적이며 기득권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박정희 향수'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명이 길 것이라고 했던 내 과거의 예언은 오늘 현재도 유효하다.

하지만 예상을 한 것이면서도 오늘의 현재진행형은 한결 난해하다. 좀더 난감함을 안겨준다는 얘기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나는 경상도의 오늘의 지역주의 현상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영남을 거의 석권하다시피 했지만, 그리고 정형근 김용갑 등의 당선이 더욱 난해함을 안겨주지만, 지역주의와 구시대적 요소들을 극복하려는 표심의 작용이 현저하게 높아졌음을 읽는다.

경상도도 언젠가는 필연코 지역주의를 극복할 것이며, 우선은 정치지형상의 지역구도를 깨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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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 결과와 관련하여 전국 각지의 여러 지인들로부터 전화와 메일을 받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 고장의 개표 결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이 존경스럽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는 우리 고장이 자랑스럽다. 과거에도 두어 번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이번은 정말로 가슴 뿌듯하다.

어느 후보가 연설 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빨갱이의 사위"라는 말을 했을 때는 오히려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 "충청도의 자존심을 세우자"는 말에는 코웃음을 쳤다. "태안에서 서울까지 철도를 놓겠다"는 말에도 실소를 했다.

김종필씨가 자민련을 일컬어 "진짜 보수 정당"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 말을 옳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보수, 보수할 만한 보수'는 없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반민족 친일세력의 잔존, 그것으로부터 유래한 해묵은 반민주 독재세력의 엄존, 몰염치한 지역주의 조장, 대통령을 탄핵하는 짓과 같은 몰상식적인 일들이 진정한 보수일 리는 없다.

오늘날 진정으로 진보와 개혁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보수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철학적인 보수가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들은 진정한 보수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민족적이고 비민주적이며 불의하고 부정한 것들, 민주 시민의 상식과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나쁜 관행들과 싸우는 것이다.

이제는 그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국민 화합을 이루도록 다같이 노력하는 가운데서도, 진정한 개혁의 발걸음을 더욱 힘차게 내딛어야 한다. '국민 화합'이라는 그럴싸한 미명으로 개혁의 발걸음이 지체되거나 호도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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