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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폐관 위기에 처한 여성생활사 박물관
ⓒ 여성생활사 박물관
국내 유일의 여성 생활용품 전시관인 여성생활사 박물관(관장 이민정)이 만성 적자 등의 이유로 폐관 위기에 처했다.

천연 염색가 이민정 관장이 2001년 6월 여주군 강천면 굴암리의 폐교를 개조해 만든 여성생활사 박물관은 식기와 전통 의상, 장신구 등 3천여점의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관장이 직접 모은 전시품들은 과거 의식주 생활을 보여줌으로써 사라져가는 전통을 되살리고 발전시키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별도의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유물을 감상할 수 있어 관람객과 박물관의 거리를 한층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예절 교실과 천연염색체험 등의 부대행사도 상시적으로 진행해 관람객들이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박물관은 만성적자로 지난 2002년과 2003년 폐교 임대료 5천3백여만원을 내지 못해 여주교육청으로부터 전시물품 가압류 처분을 받은 상태다. 여기에다 여주교육청은 박물관을 임대 이전의 학교 시설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사립박물관이니 알아서 해라?

이같은 여성생활사 박물관의 상황은 사립박물관이 처한 척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설립과 운영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받는 국·공립 박물관과는 달리 사립박물관은 거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학예연구사 등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시설 개선에 투자를 하기 어려워 관람객이 줄어두는 결과는 낳는다. 이러한 관람객의 감소는 또 다시 재정 부족으로 이어져 그야말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실제로 사립박물관의 90% 이상이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문을 닫는 박물관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사립등록박물관 1호 홍산박물관을 비롯한 18개의 사립박물관이 문을 닫거나 수년째 휴관 상태다.

폐관 후 박물관의 유물 처리도 문제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폐관 박물관을 공립박물관으로 전환시켜 문화재의 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 나라는 폐관 신고를 해도 회수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갈 곳을 잃은 유물들은 유럽이나 일본 등지로 팔려나가거나 사장되어 버린다.

폐교 활성화는 결국 임대료 납부의 문제?

▲ 유물들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어있다
ⓒ 송민성
여성생활사 박물관은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좋은 사례 중 하나다. 전국 480여개의 폐교가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폐교를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주 유용해 보인다.

이미 문화관광부에서는 폐교를 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예술활동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올 4월로 예정되었던 감사원의 폐교활용사업 감사에서 임대료 납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는 등 폐교 활용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지원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의 감사가 폐교재산관리를 제대로 했느냐를 중점적으로 따지기 때문에 실제로 폐교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보기엔 거리가 있다"며 어려움을 표했다.

여성생활사 박물관, 살아날 수 있을까?

여성생활사 박물관 역시 폐관될 경우 이러한 절차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가처분 신청을 내린 여주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3년간의 폐교 대부 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무단 점유 상태"이며 "이미 두해 동안 임대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조건에 따라 해약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임대료를 내지 않을 경우 대부료 납부 청구와 더불어 재산 반환 명도이전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사회·문화단체가 폐관 조치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여성생활사박물관의 회생 가능성이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박물관을 살리기 위한 2004 여성문화예술제가 5월 1일부터 열릴 예정이다.

이민정 관장은 "우리의 전통을 보여 주는 3천여점의 유물들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며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여성생활사 박물관은 지켜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름뿐인 문화관광부 박물관 등록증 반납하겠다”
[인터뷰] 이민정 관장

▲ 여성생활사박물관 이민정 관장
ⓒ여성생활사박물관
- 유물을 어떻게 모으게 되었나?
"외국인 친구들이 자기네 전통 유물을 소중하게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에 반해 우리의 유물들은 여기저기 팔려다니며 훼손되고 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모은 유물이 3천여 점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때 일본인이 가져간 유물을 도로 받아온 것들도 많다. 애초에는 여성과 사회 공익을 위해 관에 기부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세웠다."

- 그렇게 세운 박물관이 적자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는데.
"정말 안타깝다. 교육청에 다녀오면서 눈물이 다 났다. 내가 들인 노력이 헛된 것같아 이게 뭔가 싶었고, 아무리 그래도 유물에 압류 딱지를 붙일 수 있는지 화가 났다. 그렇게 한참 앉아 있자니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하늘은 알겠지 하니까 힘이 솟았다. 그래 나는 원래 하늘 보고 살던 사람이니까 잘 될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나를 아끼는 한 지인은 혼자 속태우지 말고 유물 팔고 편하게 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물론 유물들을 다 팔면 적잖은 돈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화는 돈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없다면 뭐가 답답해서 혼자 이 고생을 하고 있겠는가?"

-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교육청에서는 운동장의 풀 안뽑는다고 야단이다. 제초제 뿌리면 되는 걸 내버려둔다는 거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나 제초제 뿌리면 그게 다 어디로 가나? 땅으로 스며들어 지역 사람들이 마시는 물로 간다.

이번에도 유물에 압류 딱지를 붙였다. 진정한 문화공무원이라면 목이 달아나도 유물에 압류 딱지 붙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원도 해주지 않는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등록증을 반납할 계획이다."

-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나는 30여 년간 모은 유물들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나는 그저 우리의 전통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 주고 싶을 뿐이다." / 송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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