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유럽여행은 특별히 구속되어진 일정이 없고 혼자인 탓에 무작정 숙소를 나서 거리를 배회하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차창 밖 구경을 하거나, 하염없이 길을 따라 걷곤 했다. 그러다 다다른 번화가에서 만나게 되는 거리 예술가들은 마치 청량제처럼 톡 쏘는 느낌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아가씨,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 정교한 분장에 끈질긴 인내심을 요구하는 마임이스트들까지 다양한 모습이다. 그 중에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있고, 프로라 보아도 무방할 만큼 잘 다듬어진 예술가들도 많다. 그래도 난 색다른 풋내기 공연자의 출연에 늘 관심이 더 쏠렸다.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홈리스 아저씨, 음정? 박자는 잘 안 맞지만 유쾌하게 노래를 불러대는 트리오, 불 쇼를 하며 불방망이가 무서워 자꾸 떨어뜨리지만, 계속 석유를 뿌려대며 도전하는 연인들 등, 지금 주어진 시간자체를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
물론,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 생계를 위해 나선 이들도 있겠지만, 그 대체방법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와 분명 다른 점이다.
특히, 동유럽의 거리예술가들은 생활고로 인한 궁여지책으로 거리로 나선 경우가 꽤 있는 듯 했다. 어린 꼬마의 손에 아코디언을 들려주며 노래하기를 종용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낡은 풍금을 집 앞에 꺼내놓고 노래 부르는 노부부의 멜로디에선 꿈틀대는 생기가 없다.
더구나 개방에 의한 자유화의 바람은 사람들의 취향을 바꿔 놓았다. 평범한 팝송과 힙합 춤에 열광하며 모여드는 반면, 꽤 괜찮은 실력의 연주가나 성악가의 거리공연엔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이가 없다. 나 같은 관광객이나 가끔 기웃거릴 뿐…. 덕분에 홀로 감상하고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 꼬박꼬박 관람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들의 생활에 예술은 특별함이 아닌 일상이었다.
그리고, 두 달만에 돌아간 런던에서 예전에 보았던 거리예술가를 또 보게 되었다. 내용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지만, 그냥 구경했다. 참여하는 관중이 다르고 이에 대한 반응이 다르니 이미 공연은 예전과 달라져 있는 셈이다.
거리의 화가들 역시 같은 장소에 다른 사람이 되었건 아니건 간에 매일매일 새로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거리를 배회하는 나는 새로운 볼거리에 정신을 뺏기며 여름 해가 길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예전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할 때면, 대학로로 자주 나갔다. 집과 연결되는 4호선이란 이점도 있었지만, 그 곳에 가면 뭔가 조금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마로니에 공원에서 작은 공연들을 볼 수도 있고, 공연을 홍보하는 이색 아이템도 볼 수 있다. 요 몇 년 전엔 “청춘예찬” 공연을 마친 박해일과 지하철을 기다리며 같은 줄에 서 있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엔 이 마저도 뜸한 듯 하다. 늘어나는 식당과 술집으로 번화해진 대학로이지만, 정작 예술인들은 소극장 운영은 물론 극단 유지에도 숨을 헐떡이며 집값 싼 곳으로의 이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처지이다. 치솟는 대학로의 물가와 대중들의 외면으로 인한 소외감을 더 이상 버텨 낼 수가 없다.
오늘도 거리 곳곳에선 유행가 볼륨을 높이 올리고 춤을 추는 도우미언니들에게 힐끔거리는 시선을 던지며 지나가는 이들만이 무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