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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으로 향하는 사마귀 사내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한 때 한양색주가를 주름잡던 한량이었던 그의 본명은 이응길이었다. 글읽기보다는 칼쓰기와 활쏘기에 취미를 붙였던 그는 5년 전만 해도 매일 매일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과 함께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의 옴 땡추를 만난 후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이 나라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나?"

옴 땡추, 정확한 이름을 서로 잊곤 하는 그들 사이에서는 일승(一僧)형님이라고만 불리는 그가 느닷없이 던진 말이었다. 이응길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언젠가는 끝나지 않겠소. 정감록을 보니 이씨 다음에는 정씨라 하더이다."

"그놈의 정감록...... 홍경래도 입에 담곤 했지."

마치 홍경래를 옆에서 보기라도 한 것 같은 그의 말에 이응길은 호기심을 느꼈고 그와 함께 행동하며 많은 것을 느껴갔다.

"지금 이 나라는 다 쓰려져 가는 고목을 몇몇 이들이 부여잡고 있는 형상이네. 즉, 비뚤어진 쉴 휴(休)와 같은 형상일세. 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일세. 나무를 부여잡고 있는 놈을 밀어 버리고서는 누군가 대신 부여잡는 길이 있네. 한편으로는 옆에서 묘목을 키워 가꾸며 말 그대로 정말 편안히 쉬어 가는 길도 있네. 하지만 누군가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 낯선 이가 도끼를 들고서 나무고 사람이고 찍어 버리고선 그루터기에 앉아 웃음을 지을지도 모르네."

이응길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옴 땡추는 술도 마다하고 그렇게 진지하게 말했었다.

"홍경래는 쓰러지는 나무를 대신 부여잡으려 했을 뿐이네...... 허나 난 새로 묘목을 가꾸어 길러 볼 참이네. 날 돕지 않겠나?"

그러나 이응길이 생각하기에 묘목은 너무나 더디게만 자라고 있었다. 옴 땡추는 더욱 많은 퇴비와 물을 줘야 한다고 하며 어쩌면 자기 대에 끝장볼 일이 아니라고까지 말하곤 했다.

'답답하다!'

자금을 모아오는 일이 중요하긴 하나 기껏 술도가나 관리하는 일은 너무나 무료했다. 지금까지 그보다 더한 일도 해온 이응길이었지만 갈수록 뒤숭숭해지는 세상과 맞물려 그의 속도 들끓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용인의 술도가에 도달한 이응길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곁으로 보아서는 그저 평범한 가옥이었지만 교묘하게 숨겨진 헛간에서는 술이 익고 있었다.

"이곳 아전들에게 적절히 물을 먹여놓았으니 안심하십시오. 게다가 이곳은 한양의 포도청과는 떨어진 곳이라 돌보기에 까다로운 점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저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보며 섣불리 쓰이는 것은 없는가 봐주시면 되옵니다."

술도가의 책임자인 털보 김덕칠의 말을 들으며 이응길은 술지게미를 한 움큼 들어 냄새를 맡았다. 시큼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이응길은 쌀의 질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많은 쌀은 어디서 들여오나?"

"충주에서 세곡을 다루는 조창에 모영하란 자가 있사옵니다. 그 자가 적당히 세곡을 물에 불려 빼돌리고 있는데 그 쌀이 여기 오는 것이옵니다."

"그렇군."

이응길은 곁으로는 허름해 보이는 술도가에서 다루는 곡식과 돈의 양이 뜻밖에 풍족하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보게 덕칠이."

"예."

"아무래도 모아놓은 돈과 곡식을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네."

김덕칠의 눈이 동그래지며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옵니까?"

이응길은 대답대신 한동안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사람과 무기를 모아 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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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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