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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내 군사법원 청사.
ⓒ 오마이뉴스 김병기

"벌금 2000만원, 1억769만원 추징."

24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정수성 1군사령관)이 업무상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대해 내린 판결 내용이다.

신 대장은 이날 오후 재판이 끝난 뒤 석방됐다. 그는 현재 서울 한남동 공관에 머물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군 이래 육군 대장에 대한 첫 군사재판이어서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그 결과는 미미했다. 이를 둘러싸고 '군검찰의 무리한 수사냐, 아니면 군사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냐'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이번 재판은 현역 대장에 대한 첫 군사재판 이외에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례적이었다. ①구속 보름만에 선고결정까지 이어진 속전속결 재판이라는 점 ②1억원대의 횡령 혐의를 인정하고도 벌금형에 그쳤다는 점 ③ㄷ그룹 회장이 건넨 1000여만원의 '전별금'(군검찰은 뇌물로 기소)을 무죄로 선고했다는 점 등이 일반 재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점이다.

신 대장을 상관으로 모신 현역 장교의 신조

▲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 대장을 모시고 난 뒤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돈을 사용하는 데 신조로 삼고있는게 있다고 군검찰 진술과정에서 밝혔다. 그게 뭔가." (최강욱 수석검찰관)

"부대 돈을 집행할 때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떳떳하게 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회식할 때에도 내 주머니에서 (개인) 돈을 꺼내 사용하고 있다." (K중령)


신 대장의 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한 중령(신 대장 3군단장 재직시설 비서실장)의 진술 내용이다.

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혈세라고 할 수 있는 군 예산을 마치 '사금고'처럼 사용한 신 대장을 반면교사 삼아 그가 얻은 교훈이다.

공판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신 대장의 횡령 혐의, 즉 신 대장은 매월 공금에서 외박비를 타가는가하면 아들의 콘도이용료, 음료수값, 피자값, 레저비용 등으로 수십만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또 친지의 경조사에 최소한 5만원 이상의 돈으로 부조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용한 돈이 1억여원에 달한다.

군사법원조차도 군검찰이 기소했던 이같은 횡령 혐의를 거의 전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신 대장은 공판 기간 내내 이를 '공무'에 사용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포괄적으로 군의 발전에 사용된 돈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군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부에선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음모 또는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 대장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한 사실 여부이다. 대한민국에 8명밖에 없는 '대장'이다. 그가 국고를 이 지경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관행'으로 치부하고 덮어둘 수 있는 일인가. 결국 군 일각에서 음모설을 제기하는 것은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1심 선고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보름

우선 신 대장의 구속기소에서부터 선고에 이른 시간이 불과 보름이다. 신 대장은 지난 9일 새벽 12시10분에 구속됐고, 19일 첫 공판에 이어 21일 2차 공판, 24일 선고 공판 등 불과 2∼3일 간격으로 공판이 신속하게 진행됐다.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이 제출한 기록을 제대로 훑어볼 시간이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구속으로 인한 4성 장군의 고충을 헤아린 재판"이라면서 "군 수뇌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신속재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신 대장은 공판 과정에서 사단장 때부터 정식 경리 절차를 밟지 않고 비서실장에 관리참모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그렇다면 그가 사단장으로 재임하다가 교육사훈련부장을 거쳐 군단장을 역임했고, 이후 교육사령관과 육군참모차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1억원대 횡령혐의 인정하고도 벌금형 처한 군사법원

1억원대의 횡령 혐의를 인정하고도 보통군사법원이 2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 것도 다소 의아스럽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1억원대의 추징금을 결정하긴 했지만, 신 대장이 횡령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처를 베푼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공금횡령 1억원 이상이면 그것을 반납하지 않는 한 1심에서 실형, 2심에서 만약 횡령한 돈을 토해낸다면 집행유예로 나올 수도 있다"면서 "회사 공금도 아니고 국가 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을 횡령한 것에 대해 이같은 판결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법무관 출신인 이규행 변호사도 "징역형에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판결이 나면 군인사법상 전역시 퇴직금 2분의 1이 감액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다, 신 대장의 군 복부 상황을 고려해 이런 점도 반영됐을 것"이라며 "민간 법원에서 1억원 횡령이라면 징역형이 선고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0만원은 전별금으로 받아도 된다?

ㄷ그룹 회장이 건넨 1000여만원에 대한 군사법원의 무죄 판결도 논쟁거리다. 군검찰은 제3군단장 이임식 한달전에 받은 이 돈을 뇌물로 해석했다. 당시 ㄷ그룹 회장의 아들이 3군단 예하부대에 근무하고 있었고, 신 대장에게 돈을 건넸던 날 예하부대에 연락해 '특별 면회'를 허락했다. 따라서 군검찰은 이를 '포괄적 대가관계'로 해석했다.

하지만 신 대장측은 "ㄷ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라고 줬다"면서 '전별금'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군사법원은 신 대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한 기업의 회장이 당시 예하부대에 자신의 아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한 관계(변호인측은 3군단과 자매결연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지만)도 아닌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거액의 돈을 주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신 대장은 이 돈을 기부금으로 '허위 영수처리'하라고 지시까지 했고, 부하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 돈이 장부에 기재된대로 기부금이라면 신 대장은 횡령 혐의를 벗기 어렵고, 기부금이 아니라면 1000만원은 뇌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계 불구 현역 대장 첫 사법 처벌

한편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판의 의미는 크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대장을 구속기소하고, 군사법정에 세워 사법처벌했다는 점이다. 이는 군의 성역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군 장성 등 고위급 인사들이 '관행'이라고 주장해왔던 횡령 등 불법에 대해 사법처벌했다는 것도 향후 군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행규 변호사는 "지금까지 군의 자금집행은 밀실에서 이뤄져왔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집행되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예산 집행에서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관행이 재조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검찰의 항소 여부, 지휘부에 달려있다
국방부장관 재가 받아야 항소 가능

이제 공은 군의 지휘부로 넘어갔다.

군사재판에서는 '관할관확인조치권'이라는 게 있는데 지휘관이 그 재판에 대해 확인도장을 찍어야만 재판이 마무리된 것으로 간주한다. 즉, 국방부장관이 신 대장 재판에 대해 아직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검찰은 항소할 의사가 있더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군검찰의 항소 역시 국방부장관의 재가를 받아야만 한다.

일부에서는 국방부장관이 '확인조치권'을 발동하면서 신 대장을 보직해임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신 대장은 자동적으로 민간인 신분이 되고, 군검찰은 사실상 항소할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 있다. 군 장성의 경우 보직해임되면 전역조치되는 군인사법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군검찰이 항소를 하고 싶어도 항소 주체도 불분명하고, 항소 법원도 군사법원인지 민간법원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는 군사법제도가 일반 사법제도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사법권의 공백'이다.

결국 신 대장 사건의 군사법정 재판 여부는 국방부장관의 의지에 달린 셈이다. 신 대장의 횡령 혐의에 대해 이날 징역 5년을 구형한 군검찰은 항소의 뜻을 강하게 갖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방부장관이 신 대장의 보직해임을 선택한다면 신 대장 횡령 혐의에 대한 사법처리는 보통군사법원의 '벌금' 선고로 사실상 마무리된다.

군검찰은 항소할 수 있을 것인가. 군 지휘부가 이에 답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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