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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라면 애초부터 자네에게 왜 부탁을 하겠나! 내 그놈이 설치고 다니던 어쩌던 아무 상관 없네만 단지 불편하다는 것뿐일세! 자신 없으면 다 필요 없으니 못한다고 하고 여기서 당장 나가게나!"
심지일로서는 괜히 옴 땡추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려다가 두 번 씩이나 낭패를 본 격이라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건 아니옵고…. 아무려면 포도청에서 그런 자 하나 못 잡아들이겠사옵니까?"
옴 땡추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다시 술잔을 심지일에게 건내었다.
"시전 어물전에 내가 아는 이가 있으니 일단 그를 통해 좋게 일을 꾸미게나. 내일 사람을 시켜 일에 도움이 될 은자를 보내도록 하겠네."
심지일은 은자라는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옴 땡추가 건네어준 술잔을 처음으로 단숨에 쭉 들이켰다.
"하지만 저도 청이 있사온데…. 지금 선달남과 저만 있으니 솔직히 말하려 합니다."
심지일의 말에 옴 땡추는 눈을 번들거리며 노려보았다.
'참으로 욕심 많은 놈이로다.'
옴 땡추는 그래도 무슨 부탁을 할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심지일의 말을 기다렸다.
"별 다른 것은 아니옵고…. 기방의 애향이 말입니다. 그 애를 제 첩으로 들려 앉혔으면 합니다."
옴 땡추는 뭔 청이었는가 했다는 듯 크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아! 그걸 청이라고 한 겐가! 내가 뭐라 말린 일도 없거니와 그런 기생이야 자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나!"
"그렇긴 하오나. 그 계집이 나이가 들도록 첩살이도 마다할 정도로 워낙 고집불통인데다가 선달님께선 이 기방과 긴밀한 관계가 아니옵니까? 조금만 신경을 써주시옵소서."
옴 땡추는 이마에 주름을 잡더니 아무려면 어떻겠냐는 심정으로 선심 쓰듯 말했다.
"기생이라 할 지라도 어찌 그 마음마저 넘겨줄 수 있겠냐마는…. 알겠네! 하지만 그 놈은 꼭 잡아서 내게 데려오게나!"
옴 땡추와 심지일 사이에 이런 얘기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백위길과 애향이는 기방을 뒤로 한 채 초승달 아래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백포교님."
애향이는 백위길을 바라보았다. 백위길의 눈은 애향이가 아닌 달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미 정신은 온통 애향이에게 쏠려 있었다.
"그 옴 투성이 선달. 그리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옵니다."
"알고 있소만."
백위길은 애향이의 진실 어린 걱정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둘은 잠시동안 달만을 쳐다보았다.
"애향아! 넌 날 어찌 생각하느냐?"
백위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애향이는 슬며시 백위길의 어깨에 기대었다.
"백포교님. 미천한 절 거두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위길은 속으로 당혹스러웠다. 백위길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기실 어색한 분위기를 흩어보고자 한 엉뚱한 소리였으나 애향이의 말에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절 거두어 주실 수 있사옵니까?"
백위길이 애향이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하룻밤 정분을 나누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거나 기생과 혼인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애향이의 말은 급작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저도 님의 품에서 쉬고 싶사옵니다."
고백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애향이의 말에 백위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총각인 그로서는 애향이의 이런 말을 냉정히 생각하기엔 힘들었다.
"그저 평안하옵니다."
애향이는 백위길의 어깨에 기대어 천천히 잠들었다. 어스름 구름이 다가와 초승달을 조용히 가렸고 백위길도 애향이를 안은 채 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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