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등학교 때 배운 이양하의 <신록 예찬>이 그랬다. 이양하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라는 토를 달고 있다.
박용하의 세 번째 시집 <영혼의 북쪽>도 대부분 나무를 찬양하는 데 바쳐진다. 그의 시집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무리 볼품 없고 하찮은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어떤 위대한 인간보다 낫다."
따지고 보면 나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인 셈이다. 자신의 성장 이외엔 관심이 없다. 결코 다른 쪽으로 한눈 팔지 않는다. 열심히 개체의 보존과 향상을 위해서만 분주하다.
게다가 이 녀석은 철저히 수동적이고 철저히 보수적이다. 한 자리에 완강하게 뿌리를 박고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릴 줄 모른다. 나무의 관심은 오직 수직 상승에만 있어서 한국전력직원들을 무던히 괴롭히기도 한다. 나무들은 결코 비켜가지 않는다. 한번 진로가 정해지면 양보란 없다. 전선줄이 제 머리 위에 있건 없건 관심이 없다. 오직 하늘을 향해 키자람을 계속한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싶다>의 저자 우종영, 그는 나무의사다. 그는 이 책에서 자살을 철회했던 과거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자살을 말린 것은 나무였다. 그는 말한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가 말이다. 순간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우리는 지나치게 말이 많았다.
우종영은 나무를 통해서 우리네 삶을 말한다. 나무를 잘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무를 관심 있게 지켜보되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분재는 주인이 어느 순간 잠시 손을 놓으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는 사실에서 그는 사람살이의 지혜를 이끌어낸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감싸고 돌거나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무에서 삶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우종영의 예지는 나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찰의 결과다. 그는 말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꼭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서 상처주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서로간에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 절실하다. 나무 두 그루가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며 위로만 치닫게 된다. 조금이라도 높이 자라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서로를 망치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가지를 뻗고 잎을 내어 몸체 구석구석을 튼튼히 다져야 할 시기에, 위로만 자라다 보니 비정상적으로 가느다란 몸통만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나무로부터 삶을 이끌어내는 그의 유추는 적절하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종영이 전해주는 감나무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 대강은 이렇다. 감나무도 어느 해가 되면 갑자기 열매 맺기를 중단한다고 한다. 병충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토양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꼭 삐친 사람들처럼 꽃도 제대로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열매 하나를 맺는 데에는 최소한 수십 개의 잎사귀에 해당하는 영양분이 필요하고, 광합성 등 나무의 모든 생명활동이 잎사귀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잎을 희생한 열매의 가치는 다른 것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무의 열매는 나무에게 있어서 최고의 재산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열매 맺는 데만 온힘을 다 쏟으면 결국 나무 안의 자생력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의 상태가 나빠지면 나무는 과감히 열매맺기를 포기함으로써 오로지 재충전에만 전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우종영이 감나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눈치채셨으리라. 쉬라는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삶에 대한 반성과 도약의 시간이니 휴식을 마다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무를 혹독하게 몰아세우는 비평가는 일찍이 없었다. 한결같이 나무는 칭송의 대상이 되어왔다. <나무처럼 산처럼>의 저자 이오덕은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나무가 있어서라고 말한다. 감나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아주 각별한 것이어서 이오덕은 감나무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 위해 특별한 페이지를 마련했을 정도다.
"감나무 가지를 살펴보면 쭉 곧게만 뻗어 있는 가지가 없다. 죄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해서 뻗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답게 하늘을 채우고 있는 나무가 또 있겠는가. 감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면 나무의 성자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감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나무는 추억이 깃드는 장소가 된다. 시인 고은은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할 일을 시시콜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커다란 나무를 보여주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여주고, 장엄한 일몰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묵묵히 침묵으로만 그것들을 보여주어라. 그러면 그 나무와 강과 황혼은 그 아이의 마음 속에 살아남아서 언젠가 훗날 그 아이가 성장해서 힘든 일을 겪게 될 때 그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고 고은은 말하고 있었다. 영혼의 깊숙한 곳에 심어진 한 그루 나무는 한 사람의 인격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리라.
나무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책이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그것. 지오노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사막에 나무를 심는 알제아르 부피에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나무를 심은 사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었던가. 인상파 화가 모네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은 그 환상적 분위기, 식목일날 우연히 보았던 그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져 결국 원작을 찾아서 읽게 되었던 <나무를 심은 사람>, 책은 가벼웠지만 그 감동은 묵직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던가, 한 사람의 침묵과 고독이 파스텔 빛 낙원을 만들 수도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