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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임대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형리는 그간 매를 들지 못해서 몸이 근질거렸다는 듯이 채수영의 다리춤을 쑥 걷어올려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구 후려쳤다. 채수영은 아픔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질러대었다.
오히려 장 백 여대를 맞기로 되어 있던 옴 땡추는 나졸들에게 뇌물을 써 매를 맞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귀양길에 올랐고 그나마 귀양길 삼천리를 다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떠도는 것조차 모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처사에 화가 난 이은 다름 아닌 우포청 포도대장 서영보였다.
"그 도적놈들이 모반을 저지르기 위해 살인에 대동미와 방납물을 가로채었으며 몇몇 대신들과 결탁한 사실까지 드러나고 있는데 어찌 이리 허술히 한단 말인가!"
기가 막히기로는 백위길이 휠씬 더했다. 옴 땡추 일행이 끝장난 줄로만 안 백위길은 자기가 아는 얘기를 모두 얘기한 바였다. 이는 옴 땡추와 교분이 있었던 포도청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포장 박춘호가 김언로와 함께 옴 땡추 일당이 포교 장성일의 살해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를 해 왔다. 혹 땡추의 수급을 가지고 겨우 용서를 받은 심지일은 옴 땡추 일당이 자기마저 죽이려 했다는 얘기를 했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포교 이순보의 말이었다.
"제가 그간 그 자들의 뒤를 캐어 본 즉, 포도청에 갇힌 싸전 상인이 비밀스런 말을 발설할까 두려워 독살한 바가 있으며 이는 제가 의원을 데리고 가 남 몰래 확인해 보았습니다. 분명 이는 포도청 내에 놈들과 결탁한 자가 있다는 얘기옵니다."
당연히 서영보는 크게 역정을 내며 이를 사헌부에 알리겠노라 소리를 쳤다. 종사관 박교선이 이를 만류했다.
"이 포교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아직은 포도청의 누가 관련이 되어 있는지는 물증이 없사옵니다. 역적들과 관련된 놈들을 잡아 실토하게 하면 자연히 풀릴 일이옵니다."
서영보는 혼란스럽다는 역정을 내다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아침 조회를 파했고 포교들은 뒤숭숭한 채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이보게나."
백위길을 불러 세우는 이는 다름 아닌 별감 강석배였다. 백위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백위길을 맞이했다.
"지금 포도청에 승정원 하속들과 별감 등이 갇혀 있다고 들었네만......"
"그렇긴 하온데......"
"속히 그들을 풀어 주지 않았으니 큰일이 날걸세. 지금 궁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네. 포교들의 버릇을 고쳐 주겠노라고 벼르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누군가 뒤에서 몰래 이를 부추기는 모양일세."
"예? 허나 그렇다고 제가 어찌 그들을 속히 풀어줄 수 있겠소이까?"
백위길은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라 여겨 강석배의 말을 가볍게 듣고선 제 갈 길로 가려 했다.
"이 사람아! 이건 흘려 들을 말이 아닐세! 목숨이 오가는 일이네! 포도청 사람들에게 필히 알리게나!"
백위길은 강석배의 말에 다급함이 배어 있음을 깨닫고선 오후 무렵에 마주친 박춘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뭐라? 그까짓 잡놈들이라도 족쳐야 포도대장의 심기가 풀릴 터인데 어찌 내게 그런 말을 하는가? 강가 놈은 별감이 아니더래냐? 괜한 말로 협잡을 늘어놓으니 그 놈도 잡아 들여야 겠구나!"
박춘호는 어딘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었고 백위길은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내친 김에 백위길은 종사관 중에서 믿을 만한 한상원을 찾아가 그 일을 말해 보았지만 미적지근한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모반과 관련되어 잡아온 이들이고 의금부에서도 공초에 적혀 있는 이들이 아니라며 하찮게 여겨 포도청에 일임한 일이 아닌가? 포도대장께서 판단할 문제이니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자야말로 물고를 내야 할 것이네."
아무도 백위길의 말에 신경은 쓰지 않았으나 저녁 무렵에 모반 혐의로 인해 옥에 갇힌 사람들은 무고하니 풀어주라는 명이 포도대장에게서 자연스레 떨어졌고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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