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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어찌 지냈는가? 혜천스님은 잘 계시는가?"

"혜천스님은 강녕하십니다. 그나저나 제 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백위길이 끔적이의 옆에 있는 여인을 보니 알 듯 말 듯한 얼굴이었다.

"예전에 사당패에 있던 막순이올시다."

백위길은 그제 서야 무릎을 탁 치며 막순이를 알아보았다. 12년 전, 옴 땡추의 사주를 받은 사당패들이 애향이와 끔적이를 납치했던 일들이 백위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나저나 이제는 한양에 터를 잡느라 내려온 것인가?"

백위길의 말에 끔적이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긴박한 일이 생겨 제가 돕기 위해 온 것이옵니다. 모반을 일으킨 박충준이 두 해전에 유배지에서 벗어났사옵니다."

"박충준이!"

백위길은 나지막하게 탄식을 했다.

"그 자가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했음에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옵니다. 허나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이렇게 포교님을 찾아 의논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옆구리에 책을 낀 청년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끔적이와 백위길을 번갈아 보았다. 끔적이는 웃으며 청년을 맞이했다.

"허허 이제 왔는가?"

백위길은 누군가 하는 눈으로 청년을 보았고 청년 역시 포교 복색을 한 백위길이 의외라는 눈으로 마주 쳐다보았다.

"인사 올리거라. 백 포교님이시다."

그제야 청년은 얼굴에 띠고있던 의심의 빛을 거두고 넙죽 절을 올렸다. 백위길은 당황해하며 느닷없는 절을 받지 않으려 했고 끔적이는 크게 웃으며 백위길에게 청년의 절을 받도록 권했다.

"이 아이를 기억 못하십니까? 스님이 데리고 다니던 동자승이 이렇게 컸습니다."

백위길은 반색을 하며 청년을 반겼고 이름을 물어보았다.

"미천한 제게 별 이름이 있사옵니까 그냥 개똥이라 부르옵소서."

"어허...... 그래도 이렇게 장성했는데 아명(兒名)으로 부르라니. 게다가 귀한......"

순간 끔적이가 그 말은 말라며 손을 강하게 흔들었고 눈치를 챈 백위길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서는 큰 소리로 청년의 말을 확인시켜주겠다는 듯 끔적이가 한 마디를 보태었다.

"정말 개똥이란 이름 외에는 없사옵니다. 그런데 넌 어딜 그리 급하게 다녀오는 길이냐?"

"말씀하신 대로 박충준이라는 자의 뒤를 밟았사옵니다. 짧지만 모른 척 얘기도 나누어 보았지요."

백위길과 끔적이는 뜻밖이라는 듯 개똥이를 바라보았다.

"그자가 처음에는 강상(경강상인)의 행수를 만나더니 여객으로 가 그 주인과 커다란 창고를 둘러보더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 했습니다."

끔적이는 자문을 구한다는 듯 백위길을 쳐다보았지만 백위길로서도 가만히 앉아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경강상인의 행수라면 배수도라는 자라오. 허나 단도직입적으로 찾아가 이를 물어보면 발뺌을 하거나 자리를 피할 것인즉 뭔가 옭아 매어둘 구실이 필요하외다. 아!"

백위길이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요사이 곡식 값이 폭등하고 있는데 어찌된 셈인지 창고를 한번 보자고 해야겠소. 구실은 약하지만 박충준이 드나들 때를 노려 밀어붙이면 될 듯하오. 이를 위해서는 경강상인들의 동태를 계속 지켜봐야 할 터인데 허나 아랫것들이 변변치 않아서......"

"그야 걱정할 것 없소. 형님. 제가 있지 않소!"

박팔득이 자신 있게 나섰고 끔적이와 그의 처 막순이, 그리고 개똥이도 힘을 다해 도와 줄 것을 다짐했다.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소이다. 그때도 그러하거니와 지금까지 박충준을 주시하며 날 도와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백위길의 질문에 끔적이는 미미하게 웃으며 짧지만 자신 있게 대답했다.

"될 수 있으면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모두를 위해......?"

"박충준이 바라는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는 차차 말하기로 하고 오늘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나 나누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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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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