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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어찌 이리 일을 빠르게 처리하셨단 말이오? 그 정도 크기의 창고라면 지금 있는 곡식을 다 옮겨 놓아도 넉넉하게 남을 지경이외다."

경강상인 행수 배수도는 옴 땡추 박충준을 맞이하며 크게 기뻐했다.

"이젠 부르는 것이 값인데…. 값을 어느 정도 받느냐가 문제입니다."
"팔지 마시오."
"예?"

옴 땡추의 말에 배수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팔지 말고 쌀을 창고에 실어만 놓으시오."
"그리하면 값이야 천정부지로 치솟겠지만 한양에 큰 소동이 일어날 터인데 뒷감당을 어찌 하시려 함이오?"
"그것이오. 난 소동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오. 그대는 장사로 이윤을 남기면 되고 난 뒷감당을 하면 되는 것이외다."

이 때 한 사람이 뛰어와 배수도에게 고했다.

"행수님. 포교 하나가 느닷없이 우리 창고를 보자고 왔는데 어찌 하오리까?"

배수도는 귀찮다는 듯 소매를 저으며 소리쳤다.

"그런 건 무엇 하러 굳이 얘기하느냐? 몇 푼 쥐어 줘서 보내거라!"
"그것이 꼬장꼬장한 백포교라서 말입니다."
"백포교?"

옴 땡추의 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배수도는 옴 땡추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다.

"아는 자인 듯 한데 여기서 마주치면 좋을 것 없으니 뒷문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옴 땡추는 인상을 다시 펴고서는 배수도를 보며 웃었다.

"아무려면 포교 따위를 내가 피하겠소? 무엇 때문에 왔는지 한번 같이 나가 봅시다."

옴 땡추는 자신 있게 밖으로 나가 박팔득을 옆에 대동한 백위길을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맞이했다.

"어이쿠! 이게 누구인가! 백포교 아니신가!"

옴 땡추가 몰래 달아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백위길은 미리 뒷문을 파악해 끔적이와 개똥이를 대기시켜 놓은 터였다. 그런 판국에 옴 땡추가 눈앞에 나타나니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선달께서 여기는 웬일이시오?"

당황함을 뒤로 감추고 백위길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위엄 있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옴 땡추는 한바탕 웃어젖히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입 꼬리를 올려 보았다.

"유배가 끝나니 먹고 살 일이 막막해 크게 장사나 해 볼까 해서 그러내. 자네는 여기 어인 일인가?"

이렇게 된 거 둘러대며 서로 신경전을 벌일 것도 없다고 여긴 백위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유배지에서 풀려난 땡추가 상인들과 결탁해 흉계를 꾸민다기에 왔소이다!"

옴 땡추는 다시 한번 웃어젖혔다. 그 웃음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웃는다기보다는 정말로 우스워서 참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자, 그럼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밝혀 보시게나! 포교라는 족속들이야 일단 잡아 가둔 후 개가 사람으로 보인다고 할 때까지 후려치는 재주밖에 없는데 어찌 할꼬? 으하하하하하!"

백위길은 기고만장한 옴 땡추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사실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 창고나 좀 봅시다."

배수도는 백위길을 곡식을 쌓아두는 창고로 안내했다. 백위길은 대부분의 창고가 비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팔고 싶어도 곡식이 없으니 값이 오르는 것이외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 당연한 이치를 두고 그것이 대체 무슨 문제가 되기라도 하는 것인지 원."

배수도는 시치미를 떼며 옆에서 중얼거렸고 백위길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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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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