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우드의 장난감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북서쪽으로 30분을 달려 우리는 뉴 플리머쓰(New Plymouth)에 도착했다. 뉴 플리머쓰는 타라나키 지역에서는 가장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는 겨우 5만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다. 그 작은 도시가 드넓은 태즈만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7킬로미터에 달하는 아름다운 해변 산책로를 45미터 높이의 길고 가느다란 ‘바람 지팡이’가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길 건너 맞은편에는 하얀색의 현대적인 건물 ‘푸케 아리키’가 막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양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바람 지팡이와 푸케 아리키. 우리는 2시간을 머물기로 한 뉴 플리머쓰에서 인상적이고 현대적인 이 두 기념물을 우리의 여행 앨범에 담아 가기로 했다.
춤추는 무용수, 윈드 원드
원래 ‘바람 지팡이(Wind Wand)’는 영화 제작과 키네틱 조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예술가 렌 라이(Len Lye)가 생전에 여러 차례 만든 바 있는 움직이는 조각품의 이름이다.
그가 만들었던 바람 지팡이들은 작은 크기의 것들이었지만 그는 언젠가는 45미터의 대형 바람 지팡이를 만들어 보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는 1980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의 사후 20년이 지나서 생전에 이루지 못한 그의 꿈이 마침내 뉴 플리머쓰의 바닷가에 현실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뉴 플리머쓰 지역의회에서 새 천년맞이 기념조형물로 생전에 렌 라이가 꿈꾸었던 45미터 높이의 바람 지팡이를 제작하기로 하고, 렌 라이 재단에 작품 제작 위촉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 길고 유연한 바람 지팡이의 끝에 매달린 둥근 유리구 안의 붉은 전등이 1999년 12월 31일 자정, 새 천년을 맞이하는 바로 그 순간에 첫 등불을 밝혔다고 한다. 렌 라이가 살아서 그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감격했을까.
생전에 렌 라이는 자신이 만든 바람 지팡이들을 춤추는 무용수에 자주 비유했다. 그런데 뉴 플리머쓰의 바닷가에 세워질 45미터의 철제 기둥이 춤추는 무용수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소재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철제에 유리와 탄소 섬유를 함께 사용하여 이 45미터 높이의 춤추는 바람 지팡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우리가 뉴 플리머쓰에 도착한 그날 오전은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었지만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아서, 멀리서 바라본 바람 지팡이는 거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자니 정말 바람을 타고 좌우로 흔들거리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어두워지면 저 붉은 눈동자에 불이 들어오리라. 어둠 속에서 그렇게 뜬눈으로 태즈만해를 밤새 지켜보면서 저 날씬하기 짝이 없는 외눈박이 붉은 거인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고 부드러운 춤을 추리라.
그러나 우리는 어둠 속에 불 환히 밝히고 춤을 추는 바람 지팡이의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는 순간은 후일을 기약하고, 길을 건너 푸케 아리키로 향했다.
날아오르는 하얀 배, 푸케 아리키
윈드 원드가 서 있는 해변 광장의 길 건너편에 하얀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는 현대적인 건물 ‘푸케 아리키(Puke Ariki)’는 마오리 말로 ‘족장들의 언덕(Hill of Chiefs)’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푸케 아리키가 자리 잡고 있는 그 나지막한 언덕은 그 옛날 마오리족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긴 땅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그 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다보고 있자니 정말 그런 이름이 붙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이 그렇게 좋으니 호텔을 세우기에 정말 딱 알맞은 자리로 보였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거기에 매우 독특하고 자부심어린 문화공간을 세워 놓았다.
박물관과 도서관과 여행자 정보 센터를 한 자리에 모은 독특한 개념의 이 문화공간을 그들은 ‘지식 센터(Knowledge Centre)’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문화공간에 대한 이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은 ‘이것이 우리다(This is Us)’라는 푸케 아리키의 슬로건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타라나키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푸케 아리키’를 먼저 들러야 하리라. 타라나키 지역의 역사와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계단에 이어지는 북쪽 전시장(North Wing)의 입구로 들어가 약 3천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타라나키 지역의 자연사 박물관을 먼저 둘러보았다. 딸아이는 첨단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타라나키 화산의 폭발과 그에 따른 주변 땅의 변화 모습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가장 인상적인 모양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 옛날 마오리족들이 사용했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마오리 유물 전시장과 1841년 영국에서 첫 유럽 이민자들이 건너오고 나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더듬고 있는 타라나키 역사박물관을 흥미롭게 둘러보았다.
규모가 작은 남쪽 전시장(South Wing)에는 타라나키 지역의 풍광을 담은 그림들과 사진들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와 도서실 및 리서치 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북쪽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려서 우리는 남쪽 전시장은 갤러리만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밖으로 나와 다시 바라본 푸케 아리키는 한 척의 거대한 배처럼 보였다. 2003년 6월에 진수한 이 거대한 배는 과거에서 솟아올라 미래를 향해 그 하얀 돛폭을 펄럭이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인 길 건너 맞은편의 윈드 원드가 거대한 마스트가 되어 푸케 아리키 호에 겹쳐졌다. 순서가 바뀌어 마스트를 먼저 세우고 배를 나중에 건조한 셈이 되긴 했지만 윈드 원드를 마스트 삼아 푸케 아리키는 하얀 돛폭을 양 날개처럼 퍼덕이며 막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 인상적인 느낌 앞에서 나는 사람들이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 붙여준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을 오히려 뉴 플리머쓰에게 붙여주기로 했다. 뉴 플리머쓰는 그렇게 바람의 도움을 얻어 막 날아오르려는 바람의 도시처럼 내게 느껴졌다.
훗날 내가 뉴 플리머쓰를 다시 찾게 될 때에도 윈드 원드와 푸케 아리키는 분명 그 자리에 남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말해지지 않은 그들의 항해일지를 그 때에도 내가 판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나의 바람이 훗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여행객의 한낱 여수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뉴 플리머쓰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를 빌어주면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오후 1시를 훌쩍 넘어섰는데도 태양은 좀처럼 두터운 구름장 속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