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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플리머쓰와 하웨라를 잇는 두 개의 도로 3번과 45번 고속도로
뉴 플리머쓰와 하웨라를 잇는 두 개의 도로 3번과 45번 고속도로 ⓒ taranakinz
타라나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북쪽의 뉴 플리머쓰(New Plymouth)와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남쪽의 하웨라(Hawera)를 잇는 도로는 두 개가 있다.

타라나키 산의 동쪽 내륙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3번 고속도로와 반원을 이루며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45번 고속도로. 서두를 필요가 없는 우리는 해안도로인 45번 고속도로를 선택했다. 드넓은 태즈만해를 옆에 두고 달리는 드라이브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가 45번 고속도로를 선택한 이유는 이 도로가 '파도타기 고속도로(Surf Highway)'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는 여행 안내책자의 설명이 더 결정적이었다.

그 별명을 애써 증명이라도 하듯이 '파도타기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첫 마을인 오아쿠라(Oakura)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서핑보드가 서 있다고 한다. 그 서핑보드를 보기 위하여 우리는 뉴 플리머쓰에서 출발한 지 10여분 만에 차를 멈추었다.

그런데 웬걸, 세계 최대라는 그 서핑보드는 실제로 도착해서 보니 고작 5미터 남짓한 크기가 아닌가!

"에계계, 겨우 요만한 크기밖에 안되는데, 이게 세계 최대라고?”

아내와 딸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하지만 세계 최대라는 말은 신빙성이 없어 보였어도, 이 서핑보드는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세계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서핑보드 하나에 가장 많은 사람 올라타기' 부문에서 이 서핑보드는 열 세 사람을 동시에 태워 세계 기록을 세운 것.

오아쿠라의 앞바다에서 이 진기록을 세우고 난 후, 당시 사용했던 이 서핑보드를 서핑기구 전문점이 있는 마을의 중심도로변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이 서핑보드의 제작자 데이브 스미더즈에게 사람들은 '큰놈(biggie)'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세계 최대의 서핑보드

오아쿠라의 대로변에 서 있는 세계 최대(?)의 서핑보드
오아쿠라의 대로변에 서 있는 세계 최대(?)의 서핑보드 ⓒ 정철용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슈퍼 사이즈' 서핑보드는 세계 기록을 기념하기 위한 의도보다는 자신의 가게를 선전하기 위한 상업적 의도가 더 짙게 느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파도타기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첫 마을에 이 서핑보드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징물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많은 파도타기 애호가들과 전문가들이 태즈만 해에서 밀어닥치는 거대한 파도를 타기 위하여 이곳에 온다고 한다. 그러니 여행 안내책자에 소개된 '세계 최대의 서핑보드'가 서 있는 곳이라는 말이 설령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 실수를 용서해주자.

이 곳에서는 파도타기에 전혀 경험이 없는 초보자라도 겁낼 필요가 없다. 파도타기 전문가가 고객과 함께 넓은 서핑보드에 직접 올라타서 파도타기를 가르쳐 주는 레저스포츠 상품이 있기 때문이다. 오아쿠라에 그 사업체를 두고 있는 이 특별한 관광상품은 하와이를 제외하고는 오직 이 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오아쿠라가 오직 파도타기꾼들의 천국만은 아니다. 타라나키 지역의 이름난 화가, 도예가, 보석 디자이너, 유리 공예가들이 이 작은 마을에 터를 잡고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예술가들이 직접 만들어낸 작품들은 작업실에 딸린 전시실 겸 매장에서 전시ㆍ판매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대로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두 곳을 방문했다. '교활한 여우(Crafty Fox)'와 '도둑고양이(AlleyCat)'. 서핑기구 전문점 바로 옆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특이한 이름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는 구경만 하기로 하고 우선 '교활한 여우'의 집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목조 교회 건물을 매장으로 꾸민 이 건물은 그 이름이 말해주고 있듯이 아름다운 '공예품들이 가득 찬(Crafty)' 곳이었다. 온갖 앙증맞은 공예품, 도예품, 보석 및 기념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예술가들이 교활한 여우와 도둑고양이라고?

오래된 목조 교회를 매장으로 꾸며 놓은 공예품 가게 '교활한 여우'의 내부
오래된 목조 교회를 매장으로 꾸며 놓은 공예품 가게 '교활한 여우'의 내부 ⓒ windwand
그리고 넓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그 공예품들에 반사되어, 스무 평 남짓한 그 내부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을 높은 천정에 고인 깊은 어둠과 윤기 나는 바닥마루의 은은한 나무질감이 부드럽게 흡수하고 있어서 눈이 피로하지 않았다.

도시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서 자주 느끼게 되는, 눈을 찌르는 그런 금속성의 매끈하고 차가운 빛과는 달랐다. 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에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도 이것저것 오래도록 만지작거리면서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러다가 별로 소용도 없는 것을 여행 기념품 삼아 충동구매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른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그 ‘교활한 여우’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어서 방문한 ‘도둑고양이’의 집은 도예가 수잔의 작업실인데, 그녀가 직접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주로 도예 작품들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매장은 ‘여우의 집’보다는 작았지만 작품들의 가격은 훨씬 고가품들이었다.

그 가격에 지레 놀라 대충 둘러만 보았더니, 우리가 들어섰을 때는 친근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건네던 수잔은 이내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고 만다.

'그렇구나. 이들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관람객이 아니라 고객이구나. 그들도 돈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될 터이니, 이렇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단순히 구경만 하고 돌아간다면 힘이 빠지겠구나.'

근대 이후 성립된 자본주의는 예술품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었고, 예술가들의 창조행위에도 이제는 비싼 가격을 매겨 놓았다. 마치 미다스 왕의 손처럼 부르주아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들에는 가격표가 매겨지고 말았다. 예술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담은 창조성은 이내 화폐 가치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활한 여우'와 '도둑고양이'라는 저 매장과 전시실의 이름은 얼마나 적확한 상호(商號)인가! 그것이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었음을 내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총연장 105킬로미터에 달하는 ‘파도타기 고속도로’를 달렸다. 도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내륙 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어서, 바다는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낼 뿐 잘 보이지 않았다.

목걸이의 구슬처럼 도로가 꿰뚫고 통과하고 있는 작은 마을 몇을 지나, 서쪽 끝에 있는 에그몬트 곶(Cape Egmont)의 등대를 구경하고 나왔다(이번 여행에서 내가 만난 등대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니 등대 이야기는 여기서는 생략하자).

파도타기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다

오푸나케의  검은 모래 사장 해변
오푸나케의 검은 모래 사장 해변 ⓒ 정철용
그리고 파도타기 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기 위하여 우리는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 오푸나케(Opunake)에서 차를 우회전하여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검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오푸나케의 해변은 비어 있었다.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은커녕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바람이 자서 파도가 높지 않아, 파도타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날씨였다. 더군다나 주말도 아니고 목요일이었으니….

'파도타기 고속도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파도타기의 최적지라는 그 곳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는 파도타기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일 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는 기어코 파도타기 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삶은 정말 너무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닌 모양이다.

웰링턴을 들러 뉴질랜드 북섬의 최남단에 자리한 팰리서 곶(Cape Palliser)의 등대를 향해 달리던 우리는 그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는 한 떼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 ⓒ 정철용
흰 거품을 내며 달려오는 옥색 파도의 고개를 솜씨 좋게 타고 넘어가는 그들의 자세는 위태로워 보였지만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이 가벼워 보였다. 더러 중심을 잃고 바다 속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금세 떠올라 서핑보드에 배를 깔고 다가오는 파도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절묘하게 몸을 솟구쳐 서핑보드에 올라탔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들의 작은 서핑보드는 우리가 오아쿠라에서 만났던 그 커다란 서핑보드가 지닌 세계 기록이나 상징과는 무관하게 오직 그들 자신만의 몸을 받아주고 있었다. 밀착된 몸과 서핑보드는 한 배가 되어 파도를 올라타고, 미끄러지고, 빠지고, 솟구치고, 다시 올라타는 일련의 동작을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그 반복이 힘에 겨우면 그들은 바닷가로 나와 모래밭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을 잤다. 가을이라고 해도 햇볕이 뜨거워서, 한 젊은이는 자신의 낡은 차가 만들어 주는 손바닥만한 작은 그림자 그늘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자세가 이제 막 태어난 태아의 자세를 닮아 있었다.

서핑보드와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한 몸이 되어 나아간다
서핑보드와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한 몸이 되어 나아간다 ⓒ 정철용
그렇게 바닷가에서 잠이 든 몸들과 바다 속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몸들은 얼마나 싱싱한가! 그 몸들에서는 화폐의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오직 주어진 이 세계에 열중하여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그리고 그렇게 즐기다가 지쳐 곤하게 잠이 들어 있는 이 젊음에는 그 아무리 뛰어난 미다스의 손도 결코 가격표를 붙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타기를 하는 한 떼의 젊은 육체들 앞에서 한 번도 파도타기를 한 적이 없는 오래된 나의 몸은 많이 부끄러웠다. 내 몸에서 나는 화폐 냄새를 그들은 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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