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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보와의 짧은 언쟁 후 다시 한번 생각의 차이를 확인한 백위길은 문득 끔적이를 혼자 남겨두기에는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팔득이 이를 눈치 채고서는 걱정 말라며 백위길을 위로했다.

"저와 제 동생놈들이 여길 지키고 있으면 꼼짝도 못할 것이니 걱정 놓으십시오."

"허… 이거 그래도 될까?"

"백포교 형님이나 끔적이 형님이 하는 일은 분명 사리에 맞는 일이니 미천한 저라도 발 벗고 나서야죠."

백위길은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기찰이나 순라를 돌시 유 의원의 집을 잘 감시하도록 포교들에게 일러두었다. 피곤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백위길은 아내 애향이가 사색(死色)이 된 채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밖에서 서성이는 모양을 보고서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무슨 일이오?"

"이… 이런 게 왔사오이다!"

백위길이 펼쳐보니 언문(諺文 : 한글)으로 쓴 편지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이 글을 보는 즉시 기방으로 오라. 하루가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내 칼을 들고 집으로 찾아가겠노라 - 박선달'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옵니까?"

백위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향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 짐을 꾸렸다.

"집은 위험 하니 당분간은 유 의원 집으로 가 있으시오. 그곳에는 포교들이 수시로 순시를 돌고 있거니와 아우들과 끔적이 내외가 있을 터이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오."

"당신은…?"

백위길은 웃으며 애향이를 달래었다.

"어떻게든지 그 놈과 담판을 지을 터이니 염려 마시오."

"아니되옵니다! 가지 마옵소서!"

백위길은 차마 애향이를 두고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지만 속으로 맺은 결심은 확고했다.

"박선달이 나타났다면 반드시 결판 지어야 할 문제요."

"가지 마옵소서! 뱃속의 아기를 생각한다면…."

백위길은 깜짝 놀라 애향이를 쳐다보았다. 백위길과 애향이 혼인을 한지 십 여 년이 넘었고 부부간의 금슬도 좋았지만 자식이 없었던 통에 이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아니? 그게 정말이오?"

"…… 지난달부터 몸에 이상이 있었사온데…. 마을의 할미가 태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발 가지 마옵소서."

백위길의 마음은 잠시 흔들렸지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애향이에게 쥐어 주며 유 의원의 집에서 진맥을 받아볼 것을 당부한 뒤 기방으로 뛰어갔다. 애향이는 그런 백위길이 조금은 원망스럽다는 눈길을 보내며 유 의원의 집으로 향했다.

초저녁, 백위길이 정신 없이 달려간 기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오직 한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백위길은 그 방으로 들어서야 되는 것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훗! 왔는가?"

방안에는 아무도 없이 옴 땡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백위길은 다소 안도하며 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말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흥! 그건 내가 해야 되는 말 아닌가?"

옴 땡추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백위길에게 술잔을 권했다. 백위길은 술잔을 거부하며 옴 땡추의 대답만을 바란다는 듯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백 포교… 너 같은 멍청이는 다시없을 거야! 돈을 준다고 해도 거부하고 혜천과 같이 뜬구름만 쫓아다니는 멍청이의 말을 믿고, 노류장화(路柳墻花 : 길거리의 꽃이기에 아무나 건드릴 수 있다는 뜻) 기생년에게 정을 주어 혼인까지 하고! 게다가 항상 날 믿지 못하니 말일세 허허허!"

옴 땡추가 말을 끊고 잠시 사이를 두었지만 백위길은 여전히 묵묵부답, 옴 땡추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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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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