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옛날 옛적에 부부 연을 맺은 두 거지가 있었다. 이들이 낳은 딸이 모두 셋이었는데 첫째는 은그릇으로 먹여 살려 은장 아기, 둘째는 놋그릇으로 먹여 살려 놋장 아기, 셋째는 검은 나무그릇으로 먹여 가믄장 아기라고 불렀다.

가믄장 아기가 복덩이인지라 거지 부부는 곧 부자가 되었다. 거만해진 거지 대감(가믄장의 아버지)이 딸들을 차례로 불러내 묻는다.

"너는 누게 덕에 살암서?"

부모님 덕이라고 말한 다른 두 딸과는 달리 가믄장 아기는 "이 뱃또롱 아래 자궁 덕, 하늘님 자궁 덕"이라고 답한다. 이에 노한 대감은 가믄장 아기를 쫓아내 버린다.


▲ 혼례를 올리는 가믄장 아기와 막내 마퉁이
ⓒ 북새통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맹랑한 배꼽들, 놀까? 놀자 놀자!'의 첫 번째 공연작 <가믄장 아기>(극단 북새통·작가 고순덕·연출 남인우)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믄장 아기(삼공신)의 삶을 노래한 제주도 굿 <삼공본풀이(삼공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가믄장 아기의 탄생부터 집에서 쫓겨난 그가 겪는 고난들, 그 역경의 극복 과정을 담아낸다.

이렇게 해서 집을 나온 가믄장 아기는 우연히 마를 캐는 마퉁이 형제를 만나 막내 마퉁이와 사랑에 빠진다. 여느 동화 속 주인공과 달리 가믄장 아기는 막내 마퉁이에게 당당히 청혼을 한다(이 청혼의 대사가 정말이지 기막히다!).

둘은 마퉁이 형들에게서도 쫓겨나 거칠고 물기 없는 제주도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다. 마침내 이들은 수확을 거두고 그 곡식으로 하늘에 제를 지내며 자신들을 버리고 욕한 부모와 형제를 위해 기도를 한다.


▲ "하늘님아 하늘님아 나 갈 길 알려줍서!"
ⓒ 북새통
이것이 <가믄장 아기>의 대략적인 이야기다. 줄거리만 본다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어찌 보면 심심할 듯도 하다. 그러나 이를 극화한 <가믄장 아기>는 결코 심심하지 않다.

우선 감칠맛 나는 제주 언어를 사용한 대사(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와 역시 제주의 민요를 바탕으로 한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한다.

예를 들어 가믄장 아기와 막내 마퉁이의 혼례식에 나오는 노래는 제주도의 절경을 노래한 민요 '영주십경'의 가락을 이용했다.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인물의 현란한 변화(한 사람이 네 인물을 연기하는데 그 변신이 무척 익살스럽다)와 극의 색깔을 드러내는 재미난 소품들이다.

입도 가만있을 수 없다. 굿을 연극의 형식으로 바꾸면서 등장한 두 악사가 관객들의 입을 극에 적극 활용한다(연극이 과연 관객들의 입을 어떻게 필요로 하는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것은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면서 관객의 참여를 끊임없이 유도하는 <가믄장 아기>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첫 공연이라 그런지 소소한 실수들이 이어졌지만 진행을 해칠 수준은 아니었다. 아동극으로 제작되어 보는 이에 따라서는 유치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필자의 경우 '이건 아동극이군'하는 생각은 극 중 한 번도 들지 않았지만).

그러나 노는 것에 유치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일단 어우러지면 그것이 재미고 흥인 것을.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축제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No.0'(이하 페스티벌)는 26일(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 소극장에서 열리며 <가믄장 아기>는 15일(수), 18일(토), 19일(일) 공연한다.

관련
기사
맹랑한 배꼽들, 대학로에 모여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