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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튼튼해야 한다. 사람의 걷는 다리는 물론이고, 교량 역할을 하는 다리까지 튼튼할 때 더욱 존재 가치가 높다. 여행에 빠져들고부터는 튼튼한 내 다리가 더욱 고맙다. 물론 한때는 나도 미니스커트를 자신 있게 입을 수 있는 멋진 각선미를 선망했지만 이젠 튼튼하게 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튼튼함을 택할 것이다.

▲ 파리의 알렉산더 3세 다리
ⓒ 조미영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다리를 이 두 다리로 꼭꼭 밟으며 걸어 다녔다. 우리가 익히 아는 런던, 파리 같은 도시는 물론이고 조그만 시골마을에서도 쉬이 다리를 만날 수 있다.

그때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걸어서 건너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큼이나 유유히 걸으며 온갖 사색에 잠겨보기도 하고 다리 정중앙에 멈춰 서서 다리의 시작과 끝을 쳐다보기도 한다.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함께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때론 내가 지나온 곳과 가야할 곳을 한 눈에 내다보며 가슴 설레기도 했다. 다리 위에서 만나는 남다른 감성 탓이리라.

▲ 프라하의 카를교는 연인들의 다리로 유명하다.
ⓒ 조미영

▲ 헝가리 랑키드교의 화려한 야경
ⓒ 조미영
그래서일까? 다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시, 노래, 그림은 물론이고 소설, 영화에서도 종종 다리에서 만나고 이별하는 이야기를 한다. 작품에 따라 다리를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워털루 다리에서 영화 <애수>의 비비안 리를 떠올린다. 유명세로 홍역을 치르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퐁 네프 다리는 그 평범함으로 또 한번 관광객의 입에 오르내린다.

▲ 세느강변의 이 목조다리는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다. 다리 위에서 노래하고 술마시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 조미영

▲ 네델란드에는 다리가 많다.
ⓒ 조미영

▲ 운하를 연결해 주는 수많은 다리
ⓒ 조미영
하지만, 다리에 대한 내 기억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어릴 적 내 친구는 비가 오는 날이면 우울해진다. 친구네 집을 따라 가다 만난 '배고픈 다리' 때문이다. 며칠 굶은 듯 푹 꺼진 다리는 비가 조금만 와도 금세 넘쳐 동네 아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사춘기 소녀시절에는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있는 다리가 무서웠다. 그 근처에서 귀신이 나온다 하여 접근을 꺼려했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쉬쉬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좌우 이념분쟁으로 대량학살이 일어난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도 있다. 상판이 툭 잘려나간 허망한 모습을 TV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10년이다. 한동안 한강다리를 건널 때면 조마조마하던 마음도 무심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잊혀졌겠지만 유족들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은 아직껏 메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까지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다.

▲ 아비뇽 론강의 오래된 다리
ⓒ 조미영

▲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해주는 다리(헝가리)
ⓒ 조미영
널찍하고 화려한 다리도 좋지만 무엇보다 튼튼하고 믿음직한 다리를 원한다.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에서 불신과 이별 대신 신뢰와 만남을 떠올리고 싶다.

원래는 우리에게도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제, 이를 되찾자.

▲ 조그만 개울가 다리에서
ⓒ 조미영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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