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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하신 등기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대법원(registry.scourt.go.kr) 등기부 열람을 통해 다음 3곳 주소지의 건물 등기부를 확인하면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 부산 진구 부전동 503-15 번지
- 부산 사하구 장림동 1033-2번지
- 부산 북구 화명동 2274번지


위 주소 3곳은 모두 롯데그룹과 관련이 있는 주소지다.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과 부산롯데호텔(2곳 주소지는 부산 진구 부전동 503-15 번지), 그리고 롯데마트 사하점과 화명점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은 지난 95년 12월, 부산롯데호텔은 97년 3월, 롯데마트 사하점과 화명점은 2000년 9월, 2001년 3월에 각각 문을 열었다. 결국 이 건물(점포)들은 많게는 9년에서 적게는 3년6개월 동안 미등기 상태로 영업을 해온 셈이다.

법의 맹점 이용... 등기 강제할 방법 없어

▲ 부산 진구 부전동 503-15 번지에 위치한 부산 롯데호텔. 이 건물은 7년 넘게 영업을 해오고 있지만 미등기 상태다.
ⓒ 부산롯데호텔
그렇다면 건물이 버젓이 서서 영업을 하고 있는 이곳의 등기부는 왜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이유는 현행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제2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는 경우 취득 후 60일 이내에 반드시 등기를 내야 하지만, 최초 보존등기에 관해서는 등록기일을 특별히 정해놓고 있지 않다. 따라서 최초 보존등기를 내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문제는 법의 맹점을 이용해 보존등기를 내지 않을 경우 지방세인 등록세와 지방교육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있다. 보존등기의 경우 과세표준액의 0.8%를 등록세로 납부해야 하며, 등록세액의 20%는 지방교육세로 부과된다.

행정자치부 지방세제국의 한 관계자는 "등록세는 등기를 내야 부과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성격이 강해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면서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보존등기를 강제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 강주만(사상2.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 10월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9월 현재 (주)부산롯데호텔과 (주)롯데쇼핑의 부산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2곳 등 4곳의 미등기로 인해 등록세 및 지방교육세를 합쳐 약 46억 원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주)부산롯데호텔과 (주)롯데쇼핑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46억 원의 세금을 아낀 셈이 됐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들어올 세수 46억 원을 고스란히 날린 꼴이 됐다.

부산시는 강주만 의원이 문제를 지적하자 "현행법이 보존등기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자발적 등기를 권유는 하겠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

롯데측의 처사에 대해 부산시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부산 남구에 살고있는 김아무개(47)씨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이 미등기 상태라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결국 부산시민들에게서 돈을 벌어서 세금도 내지 않고 자신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고 롯데측을 비판했다.

부산시는 이런 상황에서도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주)롯데건설과 (주)롯데기공에 2000년 이후 모두 6곳에 1657억원 상당의 관급공사를 발주했다. 지방세를 미납하고 있는 업체를 오히려 성심성의껏 도와줬다고 볼 수 있다.

▲ 역시 미등기 상태인 부산 롯데백화점 본점.
ⓒ 윤성효
롯데측 "등기,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다"

이 밖에도 강주만 의원은 부산 중구 중앙동 옛 시청사에 건설 중인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또 미등기 상태로 지방세인 등록세와 지방교육세 약 100억원(예상 공사금액 1조 5000억 원 기준)을 납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부산시가 나서 시공사 발주제한 또는 설계변경허가 불허 등 사전조치가 필요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강주만 의원은 "롯데가 등록세와 교육세를 내지 않기 위해 미등기 상태를 유지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만큼 죄질이 나쁘다"면서 "국회에서 보존등기를 의무화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법안 개정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부산롯데호텔의 한 관계자는 미등기로 인해 결과적으로 지방세와 교육세를 내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강제조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등기를 하지 않은 것이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일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고경영자가 (밀린) 세금을 내겠다고 의지를 밝힌 만큼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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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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