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 첫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띤다.
“우리말이 아파요!, 외래어, 외국어를 마구 써서 우리말이 위태로워요, 이젠 우리가 직접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어 봐요, 요즘 어디에 가든지 온통 눈에 띄는 것은 외래어, 외국어뿐입니다. 세계화시대, 국제화시대라서 그런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말이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이 누리집에 보면 먼저 “내가 다듬고 싶은 말”을 통해 누리꾼(네티즌)들이 평소 우리의 말글생활에서 우리말로 바꾸어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외래어와 외국어를 소개하고, 그 외국어를 대신할 만한 적절한 말을 제안하게 된다.
그런 다음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관리자가 그 중 선택하여 “어떻게 바꿀까요?”에 올리고, 누리꾼들에게 대신하여 쓸 수 있는 우리말을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올려 주기를 기대한다. 그 중 “‘네티즌(netizen)’을 대신할 우리말을 찾아 주세요!”를 한번 보자.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실제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구분하기 위하여 새로운 말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네티즌(netizen)’입니다. 이 말은 통신망을 뜻하는 ‘네트워트(network)’와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citizen)’이 합쳐진 말입니다. 곧, 정보 통신망이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마치 그 세계의 시민처럼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 말은 낯선 영어들로 만들어진 말인데다가, 이 말이 널리 퍼지면서 ‘네티켓(netiquette)’이니 ‘안티즌(antizen)’이니 ‘색티즌(色tizen)’이니 ‘노티즌(老tizen)’이니 하는 말들까지 마구 쓰이고 있습니다. 어떤 외국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발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그 말이 이렇게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씨앗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경우라 할 만합니다.
이미 너무 널리 퍼져 있어 때늦은 감이 있으나 여러분들이라면 아름다운 우리말로 ‘네티즌’을 다듬어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네티즌’을 어떻게 바꿀까요?”
이렇게 주문하면 누리꾼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제안한다. ‘네티즌’을 대신할 말로 제안된 것들은 통신꾼, 누리동무, 정보통신족, 누리손님, 누리내, 통신둥이, 누리백성, 두레벗, 손가락시민, 누리랑 따위의 다양한 제안이 쏟아진다.
그러면 이 중 4~5개를 뽑아서 “이 말에 한 표!”에 올리고, 일주일간 투표를 하도록 한다. 투표가 마감되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말을 “이렇게 바꿨어요!”에 올리며, 이렇게 당부한다.
“여러분의 제안과 투표로 이렇게 ‘다듬은 말’이 선정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려운 외국어 대신 여러분이 직접 뽑은 ‘다듬은 말’을 쓰도록 합시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다듬은 말’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네티즌”은 40%의 지지로 “누리꾼”이 뽑혔다. 이밖에도 현재까지 바꾼 말에는 ‘어울통신’을 ‘로밍(roaming)’, ‘퀵서비스’는 ‘늘찬배달’, ‘올인’은 ‘다걸기’, ‘이모티콘’은 ‘그림말’, ‘스팸 메일’은 ‘쓰레기편지’로 따위가 있다.
이 밖에 “우리말 속의 통신어”는 온라인상에서 우리말 어법이나 맞춤법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표준어가 아닌 말, 새로이 만들어 쓴 말, 외계어처럼 보이는 말, 심한 욕설이나 저속한 말 따위가 다량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통신어의 실태에 관하여 유형별로 자세히 살펴보고 바람직한 통신어를 확립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는 마당이다.
또 “아름다운 우리말”은 우리말 가운데에는 아름답고 정겨운 고유어가 아주 많은데 이런 우리말을 찾아내 되살려 써 보자는 제안을 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너나들이 :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라고 풀이한 다음 문학작품의 예를 들어준다. “(예) 익삼씨는 벼르고 별렀던 으름장을 놓았다. 지서장하고 너나들이로 지내는 처지임을 은근히 과시하는 소리였다. 〈윤흥길의 “완장”에서〉”
이 누리집에서는 많은 누리꾼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뽑힌 우리말을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뽑힌 말을 만든 사람에게는 30만원짜리 상품권을, 투표한 사람 중 4명을 뽑아 3만원짜리 도서상품권을 주기도 한다.
이런 누리집을 만든 데는 어떤 계기가 있을 터이고, 누리집을 만든 뒤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국어연구원 박용찬 학예연구관과 인터뷰했다.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를 만든 계기는?
"그동안 국어연구원에서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일본어투, 어려운 한자말들을 우리말로 고치는 국어순화를 해왔습니다. 국어연구원이 생긴 1990년 이후 무려 2만2000개의 말을 고쳐냈지만 일반인들이 아는 말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전문가 무리의 작업이 일반인들의 언어습관과 동떨어진 데다 제대로 알려내지 못한 탓일 것입니다. 국어순화는 일반인들이 써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에 많은 일반인 특히 네티즌들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일본어투나 어려운 한자말보다 외래어가 더 심각한 것이었고, 일반인들의 언어의식을 바꿔야만 할 것이었습니다. 최선이 아니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2~3년씩 기다리더라도 오랫동안 작업을 해내면서 누적이 되면 국민들이 공감해 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누리집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누리집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토박이말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없습니다. 바꿀 바에야 한자말도 모두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자말을 모두 떨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 한계이기도 합니다. 한자말 문제와 함께 영어권 나라들과는 다른 쓰임새의 외래어에 대한 것도 반발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조화롭게 풀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말에 한 표!”에 올리는 말은 어떻게 뽑는가?
"제안되는 말들은 참 다양합니다. 그 중에는 전혀 어법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고, 또 다른 외래어인 것들도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어법에 좀 벗어나더라도 용인 가능한 것, 무리가 없는 것들 중에서 학예연구관들이 고릅니다."
-담당자로서 더 하실 말씀은?
"지금 이 작업들은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며, 최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차선을 고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작업으로 인해 일반인들의 언어의식이 바뀌기를 기대하며, 만일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재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찬용 학예연구관의 말에는 분명한 의지가 실려있는 듯했다. 박 학예연구관의 말처럼 우리 국민 모두가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다져지고, 외래어 따위에 의해 우리말이 병드는 일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누리꾼들은 틈나는 대로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에 들어가 투표하고 상품도 타자. 그 작은 몸짓이 우리말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