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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최남선씨. 그는 "정규직처럼 집회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신한 최남선씨. 그는 "정규직처럼 집회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지난 22일 오전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분신을 기도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최남선(29)씨. 그는 분신 장소로 정규직 노조 사무실을 택했다. 정규직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원청과 하청의 공동투쟁이 퇴색되는 것 같아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쓰러지면서 노조 당직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숫자가 많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제발 연대좀 해달라."

지난해 12월 현대자동차 전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예외가 없었다. 세계 TOP 5위 안에 들어가겠다는 현대자동차가 불법으로 지난 4년을 지탱해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노동부 사내하도급 점검 지침에 따르면, 불법파견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거나 완전도급으로 변경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제출한 '고용안정에 대한 개선 계획서'에는 직접고용계획은 없없다. 현대자동차는 엄연히 불법을 저질렀지만, 정부는 대기업인 현대차 눈치를 보고 있었으며, 회사는 사법부로 사건을 끌고 가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불법 파견은 반드시 잡겠다"는 노동부의 의지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들은 절박할 수 밖에 없었다. 온 몸을 던져서 저항했다. 비정규직들의 저항에 부담을 느낀 울산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 노조 핵심간부 18명을 대상으로 '집회 및 시위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문제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미온적이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는 최남선씨 분신 이후 공동투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한 달 동안 외로이 싸운 비정규직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최씨가 쓰러지면서 "현대차 본관 앞에서 정규직처럼 집회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것도 그런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97년 정리해고 이후 회사와 '완전고용보장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공장 전체의 비정규직 투입비율을 16.9%로 정했다. 16.9%는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양산하는 '악수'였지만 정규직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16.9%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회사는 1만여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사이는 멀어져만 갔다. 불법을 고쳐보겠다고 비정규직은 두드려 맞고 분신했지만, 정규직 노조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아차 노조 채용 비리로 대기업노조의 비난 여론이 비등한 시점에서, 회사는 25일 언론을 통해 완전도급화를 골자로 하는 '사내협력사 운영개선 계획서'를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내협력사 운영개선 계획서는 지난 12일 제출한 것으로, 지난해 노동부에 낸 계획서와 동일하다.

이 계획서는 노동부로부터 이미 퇴짜를 맞은 것. 회사가 대기업 노조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이용해 퇴짜맞은 계획서를 이용해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를 공격한 셈이다.

# 장면 2 - 고개 숙인 노조 위원장

고개숙인 노조위원장 박홍귀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이 24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노조 긴급 대의원대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의 뜻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다.
고개숙인 노조위원장 박홍귀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이 24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노조 긴급 대의원대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의 뜻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다. ⓒ 한겨레신문/연합뉴스
24일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서 열린 기아차 노조 긴급 대의원대회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단위노조 대의원대회에 대한 이례적인 관심이었다. 긴급 대의원대회는 보도진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진행됐고, 박홍귀 기아차 노조 위원장은 대의원대회를 마친 뒤 사죄의 뜻으로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박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광주공장 지부장을 통해 생산계약직 채용과 관련해 금품수수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도덕적 양심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을 주도해야 할 노조위원장과 지부장의 관리소홀로 이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데 대해 전후 사정을 불문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이어 "대다수의 구직자들을 들러리 역할을 하게 만드는 이 땅의 대기업과 노조 모두 철저히 파헤쳐줄 것을 언론 종사자들께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간 채용비리와 관련해 8명으로부터 2000만원씩 1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정아무개(44)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 지부장은 검찰에 출두해 수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정씨에 대해 25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보수언론은 노동조합의 도덕성을 공격하며 보도를 쏟아내고 있으며, 채용비리와 관련된 기아차는 모든 잘못을 노조로 돌리고 있다.

노조 죽이기 음모?

위기의 민주노총 기아자동차 채용비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25일 오후 영등포 민주노총에서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현상황이 다양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며 말문을 열고 있다.
위기의 민주노총 기아자동차 채용비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25일 오후 영등포 민주노총에서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현상황이 다양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며 말문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위의 두가지 장면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비정규직 노조 문제에 미온적인 노조와 비리의 온상이 된 노조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산별연맹들은 기아차노조 사태가 어디까지 확전될까 여론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담하다. 대기업 노조의 한 관계자는 쏟아지는 비난에 곤혹스럽다고 밝혔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다. 지금 노조는 완전히 비도덕적 집단의 대명사처럼 됐지 않느냐?"

일부 노조 간부들은 "대기업 노조 죽이기 위한 음모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이 왜 이 시점에서 급하게 수사를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조 간부들이 채용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역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지난해 10월 기아차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간부가 생산계약직을 채용하는 과정에 대가로 3천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글의 요지는 부적격자가 3000만원을 노조 간부에 상납 후 채용됐다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지난해 10월 광주지역인터넷신문 <시민의소리> 칼럼에서 이병훈 노무사는 '투명한 인력 채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글을 통해 기아차의 채용 비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는 직원 채용과 관련하여 내부인의 추천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그리고 이번 채용자들도 내부 직원의 추천을 통하여 채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누가 추천한 사람은 되었는데 누가 추천한 사람은 되지 않아 항의가 이만저만 아니어서 인사부서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확대되어 직원 채용과 관련하여 금품수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을 한다. 실제 필자도 자신의 친지가 2천만원을 주고 입사하였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다. 검찰이 입사자의 추천자를 확인하고 추천자의 계좌추적을 확인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대기업 노조에 분노하는 이유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아차 노조 사태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어떤 노조라도 특히 비리나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처리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징계까지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대응에 대해 안일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은 25일 중앙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홈페이지에 사과광고문조차 게재하지 않았다. 21일 논평을 통해 "이런 일에 노조간부가 연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민주노총은 해당연맹과 더불어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문제점을 분명히 밝혀낼 것"이라고 입장을 표한 것이 전부다.

일부 언론이 '노조=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물론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노조에 쏟아지는 국민들의 배신감의 실체에 대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너무 안일하게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의 분노는 바로 약자들과 연대하겠다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외쳤던 노조가 약자들과 연대하기보다는 권력화된 힘을 이용해 취업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약자들의 등을 쳤다는데 있다. 또한 이 사실을 오랫동안 내부적으로 묵인했다는데 있다. 민주노총이 외쳤던 구호들이 민망하고,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한 네티즌은 민주노총 열린세상 자유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민주노총, 상대적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심정적으로 민노총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신뢰하는 민노당 의원들을 배출한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위태롭게 민노총을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기아차노조 취업장사 만행은 민노총의 존립근거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그렇지않아도 노동조합이 귀족화 권력화되어 내부저항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합원을 채용하면서 그들의 호주머니를 갈취한 사건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합리화 되지 못한다.

그 상급단체인 민노총은 지금 즉시 사즉생의 각오로 조합자체를 원점에서 전면 재정비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국민에게 재신임을 받어야한다. 그렇게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또다른 상급단체와 같은 부류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민노총에 대한 도덕적 요구 수준은 상상외로 가혹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노조는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똑바로 보고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쏟아지는 비난과 냉소를 떨쳐낼 수 없다. 민주노총은 독재정권의 온갖 탄압을 뚫고 세워낸 민주노조가 아닌가. 처음 민주노조 운동을 시작할 때 던졌던 화두를 다시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민주노조운동, 과연 약자들과 연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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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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