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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칼국수를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는 지인이 점심 때 "칼국수나 먹으러 갈까요?"하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눈이라도 내릴 듯 어두컴컴하고 몸도 찌뿌드드한데 잘 되었다 싶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칼국수 집에는 손님들로 가득한데 특히 여자 분들이 많습니다. 해물을 넣어 칼칼한 칼국수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이야기 보따리를 풉니다.

그 자리에는 며느리 본 지 석 달도 안 된 분, 딸 시집보낸 지 몇 달 안 된 분, 보름만 있으면 딸을 시집보내야 해서 한창 바쁜 분, 딸이 없는 저 이렇게 넷이 모였습니다.

며느리를 본 분이 "오늘이 우리 며느리 생일이라 꽃을 보냈다"고 하십니다. 저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어머! 새 며느리의 첫 생일이면 서울 가셔서 미역국을 끓여 주셔야지요?"라고 했더니 직장 다니는 며느리라 선물과 꽃 배달로 대신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서 "나 같으면 직장까지 가서 축하해 줄 것 같아요. 얼마나 감동할까요"하고 했습니다. 모두 이 다음에 우리 집 며느리에게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며 웃었습니다.

며느리도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말도 하더라구요.

며느리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시집살이 한 이야기며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이야기입니다. 시집살이 하면 먼저 생각나는 제 친구가 있습니다.

명문 대학을 나온 팔순의 친정 어머니와는 달리 시어머님은 여느 어머니들처럼 일에 파묻혀 지내 온 분이십니다. 사는 형편도 다르고 단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친구는 만날 때마다 친정 어머니와 너무나 다른 시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유복자로 키운 아들 내외 침실 방문 앞에서 주무시는 이야기를 할 때는 저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니 친구는 나날이 비쩍 마르고 위염까지 달고 삽니다. 저보고 '네가 부럽다'고 합니다.

낮잠 한 번 마음 놓고 자 본 적 없다며 어른을 모시면서부터 그냥 깜짝깜짝 놀라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친구가 딱하기는 하지만 저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시어머님을 가끔 뵈니 더 반갑고 그립고 했거든요.

어쩌다 작은 선물이라도 사가면 형님께 "얘야, 이것 좀 봐라. 작은애가 이렇게 좋은걸 사왔다"며 자랑을 하셨습니다. 원래 모시는 분은 아무리 잘해도 표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저만 그런가하고 같이 근무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르지 않더군요. "(시어머니와) 엄마처럼 친한 것은 좋지만 같이 사는건 싫어요"라고 합니다.

시집살이라는 말이 옛날에만 존재했지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인자하시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분이십니다. 늘 웃음 띤 얼굴에 인정도 많으시고 제 친구들에게도 어찌나 다정하게 대하시는지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우리 엄마에게는 왜 무서운 시어머니 노릇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며느리 길들이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긴 이야길 다 할 수는 없지만 깨끗이 빨아놓은 옷가지며 이불을 다시 빨아야겠다며 담가 놓는 장면도 본 적이 있습니다.

손녀딸인 저에게 "너, 시집가는 거 보고 죽어야 되는데" 하시던 할머니는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막 친정에 들어서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 엄마가 데굴데굴 구르며 서럽게 우는 게 아닙니까? 나 같으면 남의 이목이 두려워 덩실덩실 춤을 추지는 못하겠지만 저토록 서럽게 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장례를 모시고 엄마에게 "엄마는 속도 없수? 그렇게 시집살이 시킨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뭐 그리 서러워 울고불고 야단이에요?" 했더니 "백년 이백년 사실 것도 아니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저절로 눈물이 난다, 딱한 양반"하시지 않겠어요.

팔십이 넘어 돌아가신 할머니보다 예순을 바라보는 엄마가 더 나이 들어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한 평생을 홀 시어머니 모시는데 다 바치셨지요.

옛날 분이라서 그런지 뻔히 당신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하시는 아버지, 가장으로서 위엄을 지키시느라 그러셨나 봅니다. 아니면 고부 간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중심에 서겠다는 생각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의 시어머니는 옛날과 사뭇 다릅니다. 옛날에는 고작해야 육체적인 노동으로 며느리를 힘들게 했지만 현대의 며느리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습니다. 막무가내식 길들이기가 아니라 첫째는 어떻고 둘째는 어떻고 하며 조목조목 따져가며 이야기 한답니다.

시집보낼 딸에게 집안의 화목이 첫째라며 "네가 할 몫이다"라고 교육 중이라는 지인. 새 며느리에게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우리 식구들과 스스럼없이 보낼까 궁리하는 나이 드신 시어머니. 며느리와 영화며 음악회를 한 달에 몇 번씩 가는 멋쟁이 시어머니가 제 주변에 있습니다.

▲ 시어머니 미니홈피에 며느리가 올린 글
ⓒ 허선행
그런가하면 시어머니께 메일로 안부를 묻고 미니홈피에 글을 올리고 함께 디지털라이프를 즐기는 애교만점의 며느리. 사위도 좋지만 사돈이 좋아서 그 댁으로 시집보냈다고 합니다.

찜질방에서 젊은 새댁들이 각자 시댁식구들 흉보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며느리를 볼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그 새댁들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여럿이 있는 찜질방에서 큰소리로 게다가 배가 부른 새댁도 있던데 시어머니 흉을 그렇게 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심합니다. 듣기가 싫어 그 자리를 피하려는데 한 새댁의 "시어머니도 길을 들여다 돼"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나왔습니다. 시어머니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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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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