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손영종, 허종호 등 북한 유명한 역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펴낸 책이었습니다. 금강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인 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옛 문헌을 통해 금강산의 유래와 이름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옛 문헌을 찾아보기가 쉬운 편입니다. 많은 대학이 전자도서관을 운영하고 학생들에게는 아이디를 주어 이용하게 합니다. 전자도서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문헌비고> <고려사> 등 대부분의 자료가 번역되어 본문 검색이 가능합니다.
예전 같으면 <실록>을 찾아보는 일은 불가능했지요. 번역도 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색인이 되어 있지 않으니 일일이 뒤져가며 찾아야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니 연구 환경이 많이 좋아졌음을 느낍니다. 저 같은 아마추어도 옛 문헌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진짜 금강산, 가짜 금강산
먼저 정사인 <삼국사기>에서 금강산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삼국유사>, 모두 네 건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금강산은 모두 지금의 금강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의 금강산과 영천의 금강산이 각각 2건씩이었습니다.
경주의 금강산은 신라 법흥왕 때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의 기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차돈의 목을 치자 목이 금강산에 날아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자추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자추사는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조그마한 절이지만 이차돈 순교를 기념해서 세운 절이어서인지, 근래에는 이 절의 종에 이차돈의 순교 모습을 새겨놓고 있습니다.
영천의 금강산에 대해서는 "신라에 네 곳의 신령한 땅이 있어 나라의 큰일을 의논할 때는 대신들은 그곳에 모여서 모의하면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졌다"라고 하여 신라의 신령한 네 땅 중의 하나로 영천의 금강산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모두 지금의 금강산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삼국시대까지는 지금의 금강산의 이름이 금강산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