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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을 넘어 차창 밖으로 눈을 고정한 채 북한 땅을 살펴보는 사이에, 어느덧 차는 장전항 근처에 있는 북측 출입국 관리소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을 통과하면 이제 정식으로 북한에 입국하게 됩니다.
남측이나 북측이나 출입국 업무는 인천공항에서와 별반 다름이 없었습니다. 여권과 비자를 신분증과 금강산 관광증으로 대신한다는 것이 다를 뿐 다른 나라에 출입국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복잡한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한 민족 두 나라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아쉬움입니다.
금강산 관광객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
출입국사무소 앞에는 ‘금강산 관광객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큰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출입국 관리소가 있는 장전항 근처는 북한의 군사시설이 있는 곳이어서 일체의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가슴 깊게 다가온 이 환영 문구를 촬영하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용기를 내어 북한의 세관 직원에게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다소 계급이 낮아 보이는 이 사람은 갑작스런 남측 사람의 요구에 당황해 하며 대꾸를 하지 않더군요. 이번에는 책임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부탁해 보았습니다.
“죄송하지만, 밖에 저 환영 문구가 정말 마음에 드는데 사진 한장 찍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거요. 온정리에 가면 많이 있을 걸요. 거기서 찍으세요.”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일단 포기했으나 뒤에 보니 온정리에는 그런 글귀가 없었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현대에서 세운 환영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천하의 명산 금강산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커다란 광고판에 ‘현대아산’ 표시와 함께 쓰여 있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이 세운 것은 존대어가 아닌 반말 투의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북한의 대부분의 구호가 그렇기는 하지만 ‘환영한다’로 마치는 반말 투의 환영인사는 왠지 생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표현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갈 기회가 있어서 언어 표현에 소양이 있는 북한 사람을 만나면 꼭 알아보고 싶습니다. 50여년이 넘는 분단 세월이 우리의 언어 표현에 많은 변화를 주었지만 이런 식의 구호도 큰 차이의 하나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구호로라도 큰 환영을 받으며 이제 정식으로 북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전항 뒤편의 마치 천기의 불상이 앉아 있는 모양의 천불봉, 스님의 바리를 엎어 놓은 듯한 바리봉 등 금강산의 일부를 바라보며 숙소가 있는 온정리에 도착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의 ‘본부’ 온정리
온정리는 예로부터 글자 그대로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조선 세조 때 이곳의 온천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때에도 온천으로 이름이 났으며 세조도 이곳에 다녀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곳에는 금강산 관광의 본부격인 온정각을 중심으로, 장전항에 떠있는 해금강 호텔을 비롯해 금강산 호텔, 그리고 금강산 온천 근처의 온천 빌리지 등의 숙소가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습니다. 온정각에서 각각의 숙소로는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어서 버스를 타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에는 북한의 관광객들이 묵었을 온정각 앞의 ‘김정숙 휴양소’는 현재 수리 중이었는데, 앞으로 보수하면 이곳 역시 남한 관광객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외 온정리에는 여러 곳에서 숙소 및 식당을 세우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곳 금강산 관광 특구의 중심에 있는 온정각에는 식당을 비롯해 면세점과 기념품 가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로 식사를 했던 온정각의 식당은 뷔페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여행상품에 따라 식비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상품도 있어서 식권을 구입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식비가 포함되어 있는 상품의 경우에는 어느 곳에서나 관광증을 보여주면 출입하여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온정각의 기념품 가게와 면세점은 여느 관광지의 상품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특산물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 남쪽에서 제작된 것에 금강산 표시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제가 구입한 기념 볼펜도 밖에는 금강산 관광 기념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볼펜심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금강산에 대한 책자를 구입하고 싶었으나 북한에서 제작한 것은 <나뭇꾼과 선녀>에 관한 그림책 한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금강산 사진집 같은 것도 모두 남쪽의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으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현대 측 직원과 현대와 계약을 맺은 인력회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연변의 조선족들이 많아 처음에는 이들이 북한을 통해 고용된 줄로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아 보니 이들은 모두 남한을 통해 고용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래도 이들에게서는 북한의 분위기가 풍겨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평양에서 온 포장마차 ‘온정봉사소’
온정각에서 식사를 마친 후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은 곳은 온정각 바로 앞의 포장마차인 ‘온정봉사소’였습니다. 북한에서 직접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간이 천막 건물을 지어 놓고 마치 우리의 포장마차와 다를 것이 없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소주와 맥주, 들쭉술을 비롯한 주류와 포장마차식 안주인 구이류, 간단한 탕류, 두부 등 여러 가지 안주가 있었으나 우리와는 요리 방법이 달라서인지 생각보다 입맛에 맞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는 우리의 것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아서 가장 손이 많이 갔습니다.
온정봉사소는 평양에서 온 사람들이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주방장과 관리인 및 세명의 일하는 여성들은 모두 평양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주방장은 현재 이곳에 신축중인 북한 식당인 옥류관이 완성되면 그곳의 주방장을 할 거라며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남남북녀'라고 하더니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측에서는 보통 아가씨라고 하는 데, 여기서는 어떻게 불러야 하죠?”
“봉사원 동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다소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 졌고 이후 모두들 그렇게 불렀습니다. 금강산에 와서 처음 만난 북한 여성이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눠보려 했습니다.
“평양에 사셨으면 학교도 거기도 다녔겠네요. 어느 학교 졸업했어요?”
“평양 상업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물어본 두 여성 봉사원은 모두 평양 상업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미모의 대졸 여성과 포장마차, 그것도 작은 포장마차에 세명씩이나 일을 한다는 것이 왠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다 일하는 중이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온정봉사소는 저녁 9시면 문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외화 벌이가 경제 살리기의 큰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런 정도의 소규모 포장마차로 어느 정도 외화를 벌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비슷한 소규모 노점은 금강산 중산 중간에도 있었습니다. 북한 여성 2, 3명이 좌판을 벌이고 간단한 북한 과자류를 팔고 있었습니다. 이 역시 외화 벌이를 위한 것이겠지만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정각을 비롯한 이곳 ‘관광촌’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화폐는 달러입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우리 돈을 달러로 환산한 카드를 구입하여 사용이 가능하였고, 비자카드 등 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도 사용이 가능하였습니다. 때로는 원화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온정봉사소에서는 오로지 달러와 환산 카드만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관광객은 모두 남한 사람들뿐인데 왜 원화 사용이 제한이 되는지 불편했습니다.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없었고 기념품은 비자카드로 결제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수중에 달러가 없으니 음료수를 마시거나 할 때에는 다소 불편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직접 환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현대 측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대부분인데 모두 원화로 사용하고, 북측 시설의 경우에는 나중에 현대 측에서 달러로 환전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다섯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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