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람에 날리어 물안개를 피울 때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하여 비봉(飛鳳)폭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아래 쪽 계곡의 봉황담으로 들어가기까지 폭포수는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연의 신비를 모두 보여줄 것 같습니다.
이미 사진으로 본 다른 계절의 비봉폭포는 수량이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름처럼 바람에 날리는 물줄기가 신비감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의 비봉폭포는 물줄기가 차곡차곡 얼어붙어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고 있습니다. 봉황이 나는 것 같은 신비감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보다는 웅장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겨울 비봉폭포입니다.
아마 겨울이기에 그 모습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폭포일 것입니다. 옥류동이나 연주담은 얼어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한껏 드러내지 못했다면, 오히려 얼어서 더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이 비봉폭포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비봉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계곡의 봉황담 바로 위쪽에는 무봉폭포라고 이름 지은 또 하나의 폭포가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계곡의 폭포입니다.
비봉폭포의 뛰어남 때문에 그리 눈길을 받지 못하는 폭포지만, 이곳 역시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혀 거품을 내는 모습이 봉황이 춤을 추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무봉(舞鳳)폭포라 한다고 합니다. 두꺼운 얼음만으로도 그 모습이 대략 짐작이 됩니다.
이 두 폭포에서 비록 봉황이 날아오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모습이 충분히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동안 임금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새인 봉황의 모습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드디어 이곳에서 봉황을 그려보았습니다.
과연 금강산은 신선이 된 관광객을 봉황이 맞이하는 신비스런 산임이 틀림 없습니다.
아홉 마리 용이 만들어낸 구룡폭포
봉황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연과 구룡폭포를 향했습니다.
구룡폭포로 가는 길은 금강산에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길가에는 약 1m가 넘는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현대 측 안내원에 의하면 눈이 처음 왔을 때는 계곡의 난간 손잡이까지 차올라 그 위를 걸어갔다고 합니다.
계곡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구룡폭포를 감상하기 위해 지어 놓은 관폭정입니다. 말 그대로 폭포를 감상하기 위한 정자란 이름입니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 정자는 일제시기에 없어졌다가 1961년 북한에서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명승이라 이를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놓여 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시를 지어 가며 감상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관폭정은 여러 정자들 중에서도 감상을 위한 용도로 보자면 가장 잘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구룡폭포의 전모를 감상하기에는 아주 좋은 위치인 이 정자에 서면, 마치 '아이맥스 영화관'과 같은 느낌으로 폭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폭포수가 떨어져 소용돌이 치는 아래쪽 구룡연이란 못은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에서 붙은 이름이고 그래서 폭포도 구룡폭포라 한다고 합니다. 물론 겨울철에는 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구룡폭포는 사방이 막힌 골짜기의 마지막 지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높이만 74m나 되는 데다 수량이 풍부하여 그 위용이 짐작이 가고 남습니다. 얼어 있는 모습만으로도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굉음이 골짜기를 뒤덮었을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어떤 이는 '귀를 먹게 하는 소리', '사람을 위협하는 소리'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 겨울 구룡폭포 영화관에는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침묵하는 폭포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오히려 고요하게 겨울잠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그리고 그 폭포에는 기약할 수 있는 내일이 있습니다. 눈이 녹는 봄철이 되면 다시 그 위용을 뽐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은 침묵하나 기약하는 내일이 있기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폭포'라고 스스로 겨울 구룡폭포의 멋을 정리해 봅니다.
앞의 비봉폭포는 수량이 많지 않아 오히려 계곡의 물소리에 폭포소리가 묻혀 버려, 시각으로만 흩날리는 물줄기를 감상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구룡폭포는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마치 달리는 기관차 엔진 굉음 소리처럼 들릴 것 같습니다. 물줄기 소리가 계곡을 덮는 장면을, 오감을 동원하여 감상하면 그 진면목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름처럼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 눈과 귀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기약해 봅니다.
전에 보았던 백두산의 장백폭포가 엄청난 규모와 천지의 물이 떨어진다는 상징성으로 이름 높다면, 구룡폭포는 거기에 바위산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뒷받침하고 있어서 더 경이롭게 생각되었습니다.
구룡폭포에 심취해 하마터면 놓칠 뻔 했던 관폭정(觀瀑亭)의 현판글씨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글씨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저로서도 폭포를 감상하기 위한 정자의 글씨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폭(瀑)자를 폭포란 느낌이 들도록 흘려 쓴 지혜를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폭포 곁에는 '미륵불(彌勒佛)'이란 거대한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여러 사찰의 현판을 쓴 근대의 명필 혜강 김규진이 금강산 주변 불교 신자들의 부탁을 받고 썼다고 합니다.
글씨의 크기만 무려 19m나 된다는 이 글씨는 폭포와 어우러져 폭포의 비경을 빛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폭포를 구성하는 일부분이 되어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소 엉뚱하지만 왜 다른 내용도 아닌 '미륵불'이라고 썼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로 기독교로 말하자면 메시아와 같은 존재입니다. 식민지 시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기대하는 민중들의 마음을 새긴 것은 아닌가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비약일 것 같습니다.
예전 이곳을 찾았던 이광수는 금강산 기행기에서 이 글씨를 보고 큰 죄를 범했다고 꾸짖었다고 합니다만, 친일로 이름을 더럽힌 그가 다른 사람을 꾸짖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명승지에 새긴 옛 선현들의 글씨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이야깃거리를 남겨 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열 번째입니다.
이 내용은 제 개인 홈페이지('백유선의 고구려 유적답사기', http://noza.pe.k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