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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에서 5년 동안 길쌈 시연을 하고 있는 이옥례 할머니, 삼을 입으로 잘게 찢어 한 가닥 한 가닥 곱게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낙안읍성에서 5년 동안 길쌈 시연을 하고 있는 이옥례 할머니, 삼을 입으로 잘게 찢어 한 가닥 한 가닥 곱게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서정일
다섯 평 정도의 자그마한 방에서 전지다리 마주 쌍쌍 삼가래를 걸어놓고 무릎을 걷어부치고 삼을 꼬고 있는 이옥례 할머니는 낙안민속마을로 5년 전에 우연찮게 들어왔다. 마을 행사 때 길쌈시연을 위해 방문했다가 보여줄 거리를 찾고 있던 관리사무소의 눈에 띈 것. 그래서 그대로 눌러 앉은 게 할머니의 또 다른 터전이 되었다.

왜 옛날 부모님들은 여성의 교육에 관해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을까? '여자를 가르쳐서 뭐해'라고 말하면서 입학통지서가 나왔는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은 부모님을 원망하는 이 할머니는 늙고나니 그게 그렇게 서글프다면서 길쌈 틈틈이 글자 하나라도 읽어보려고 하지만 말처럼 잘 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물어볼 게 있으면 말로 해달라면서 자신은 '까막눈'이라고 애써 낮춘다.

사진 가까이 받침대에 대나무가 꼽혀져 있는 것을 '전지다리'라고 한다. 3대째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니 200여년쯤 된 유서 깊은 할머니만의 문화재인 셈이다
사진 가까이 받침대에 대나무가 꼽혀져 있는 것을 '전지다리'라고 한다. 3대째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니 200여년쯤 된 유서 깊은 할머니만의 문화재인 셈이다 ⓒ 서정일
"집에 안갈 거여?" 길쌈하는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더니 설명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면서 대뜸 소리친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보여준다. 뭉툭한 손마디, 짤막하고 두툼한 손톱이 길쌈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또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옛날에는 삼을 찔 때 부뚜막같이 생긴 곳에 돌을 쌓아놓고 하루 종일 장작불을 지펴 달구었다고 한다. 돌이 빨갛게 달아올라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때 꺼내서 물을 끼얹어 그 열기로 삼을 쪘다고 하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물지게로 물을 져나르는 모습하며 돌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이 볼 만했다고 한다.

다섯 평 정도의 작은방은 베틀등 길쌈하는 도구와 살림살이로 꽉 차있다. 좁은 장소임에도 이리 밀고 저리 밀고 자리를 만들어 작업을 하는 이옥례 할머니가 애처러워 보인다
다섯 평 정도의 작은방은 베틀등 길쌈하는 도구와 살림살이로 꽉 차있다. 좁은 장소임에도 이리 밀고 저리 밀고 자리를 만들어 작업을 하는 이옥례 할머니가 애처러워 보인다 ⓒ 서정일
"쪄지면 삼의 껍질을 벗긴다. 벗기면 널찍하다. 그러면 묶어서 볕에 말린다. 대가리 묶은 곳이 완전히 바싹 말려질 때까지 그리고 째서…."

안 해준다던 길쌈 얘기를 보따리 풀 듯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내 보인다. "집에 안 갈 거냐"는 할머니의 우스개 소리가 사실로 증명된 셈. 오랜 시간 길쌈 얘기는 계속되었다.

"코쟁이들도 오는데 신기한지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한다니까" 민속마을이라 그런지 세계 각국 사람들이 다 찾아온다면서 '꼬부랑 글'도 알아야겠다고 웃는 이옥례 할머니. 하지만 웃음 속엔 힘겨운 모습들이 감춰져 있다. 비좁고 힘든 방 한 칸에서 모두가 힘들어 마다하는 길쌈을 하는 칠십 노인의 모습에 약간의 그늘이 있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그것을 '가치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때다. 좀더 좋은 장소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마음 편하게 길쌈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를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전통을 사랑하는 곳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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